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산책 Sep 04. 2019

프랑스에서
우유 아닌 두유 먹는 아이

'우유'라는 권위에 대하여


 유제품의 천국이라는 프랑스. 그 나라에 살면서 우리 아이는 '우유를 먹지 않고' 자란다. 무엇보다 내가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지 않게 된 데에는 나름의 가슴 아픈 서사가 있었기에.

 
 나는 출산을 수술로 하기도 하였었거니와 가족력에 따라 젖양이 턱없이 부족한 엄마였다. 그래서 아이는 처음부터 혼합수유를 했었다. 그런데 2개월이된 어느 날부터 아기는 분유를 다 뱉어내고 종일 빈 젖만 빨아대었고 먹은 게 없으니 잠을 이루지 못하였었다. 그렇게 낮잠도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상태로 내 품에 딱 붙어 젖만 빨아대기를 한 달 여. 안 그래도 몸이 회복되지 않아 힘든 터에 한 달간 잠을 못 자게 되니 나는 말 그대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일단 살고봐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단호하게 굶겨야 한다'는 맘카페 엄마들의 말을 보았고 그렇게 했다. 그러나 당시 3개월이었던 아기는 분유를 계속 뱉어내며 '단식투쟁'을 하였었다, 온종일 온 힘을 다해 울어대면서... 그렇게 사흘간 겨우 물만 마시며 말라갔던 아기는 누렇게 뜬 채로 핼쑥해있었는데 무엇보다 그 눈빛이 너무도 슬퍼 보였기에 나는 미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그저 옆에서 같이 줄줄 울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돌아보니 참으로 무지했고 무식했었다. 그때 아이에게 너무 큰 상처를 안겨준 것만 같아 오래도록 죄책감을 안고 살았었다. 어쨌거나 눈물의 젖떼기 이후로 분유를 먹긴 하였으나, 아이는 2살이 넘도록 분유를 먹고 잠든 밤마다 거의 매일 토를 하였다. 프랑스어 학원 숙제가 끝나고 눈 좀 붙이려 하면 이내 기침 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토사물 범벅이 된 이불을 거의 매일 밤마다 자다 일어나서 빨아대었다.
 시간이 지나 '우유'를 마시는 아이가 되었지만 아이는 우유를 마실 때마다 "엄마 배 아파"라는 말을 자주 하였다. 무언가 아니다 싶어 나는 우유에 대한 정보들을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우유에 대해 알아갈수록 우유에 관한 꽤 심각한 사실들을 많이 맞닥뜨리게 되었었다. 하지만 나는 '세상이 그렇다'하는 것들일수록 더 '의심'을 가지고 바라봐서인지 그 말들이 터무니없어 보이지는 않았다. 더 파고 들어가 보았다. 점점 그것들이 '진실'에 가까울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의 전통음식 '타락죽'은 원래 '낙타의 젖'으로 만든 음식이었다


 나도 원래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살아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따라 세상에서 '어른들 말씀' 따라 착하게 공부 열심히 하며 모범생 아이로 살아보았으나, 세상은 '책에서' 말하여진 것처럼 또는 '그들이' 말했던 것처럼 돌아가지도 않아 보였고 오히려 그 누구도 '진짜 얘기'는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였달까.
 
  '배운 대로 인식했던' 것들이 실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거나 '우물 안에 가둬놓는 것'에 가까웠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순간부터 나는, 모든 '권위적인' 지식과 앎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언제나 '의문을 가지고' 바라보게 되었던 거 같다.
 그 권위라 함은, 학교, 선생님, 책, 유명하다는 사람들의 말, 병원, 의사들의 진단, 어른들의 충고, 종교인들의 입, 교리, 세상의 함의, '신'을 말하는 것들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것을 포함하였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말 잘 듣는 모범생'도 아니었고 '착한 아이'는 더더욱 될 수 없었다. 모든 당연하다는 그 어떤 훌륭하고 고매하다는 '권위'도 내게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중요한 가치를 가르는 판단은 스스로 접근한 '실체적 정보'와 그것들로부터 오는 나의 '직감'이면 되었었기에.

 
 '우유에 대한 권위'를 의심하게 된 것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 아이가 아기였을 때 그렇게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이 우유에 들어있는 유당을 소화하지 못해서였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그 많은 날들 아기에게 우유를 '강요했었던' 나의 무지가 너무나 후회되었었기에. 그렇기에 나는 '그것'에 대해 우유에 대해 알아야 했다. 무엇이 아이와 나를 그토록 힘들게 했던 것이었는지.
 
 그리고 알게 되었다. 세상이 인정하는 것과는 달리, 우유는 사실 '완전식품'이기보다는 어쩌면 '인간에게 그리 필요치 않는 식품'에 가깝다는 것을. 우리는 꼭 우유가 아니어도 여타 다양한 식품들에서 칼슘이나 다른 영양분들을 다 공급받을 수가 있다는 것을. 우유가 지금의 '권위'를 얻게 된 것은 유럽과 북미 국가들의 '낙농 카르텔' 들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실제로 우리가 섭취하고있는 우유들은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생산되는 것은 맞았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우유라 함은 보통 말하는 '대량 생산된 소의 젖'을 말한다.
 

강인한 생명력만큼 '큰 기운'을 품고 있는 콩


 산양유 같은 '염소젖'은 대중화가 안되었을 뿐이지 실은 소의 젖보다 훨씬 뛰어난 식품이었고, 우리의 '타락죽'이라는 것도 소의 젖이 아닌 '낙타 젖'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온 인류가 지금처럼 소의 젖을 떠받들고 있는 현실에 더 큰 의문이 생겨났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은 우유보다 훨씬 높은 칼슘을 함유한 명이나물같은 산나물들로부터 멸치나 해초들로부터 칼슘을 충분히 섭취하였었다는 사실은 나의 의심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해주었다.
 생각해보니 옛 유목민들은 낙타나 염소, 순록의 젖을 먹었었지 소의 젖을 먹은 게 아니었다. 또한 소의 젖은 30만 년의 인류 역사 중 겨우 1만여 년 된 '정착민'의 산물이며, 그것을 우리가 완전식품으로 받들고 이토록 빠르게 지구 구석구석 전파하게 된 역사도 사실 그리 길지 않았다. 
 
 더구나 락토스가 소화가 안 되는 '유당불내증'은 유럽인들에게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나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들에게는 거의 95%에 가까운 분포를 보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유전적으로 그냥 우리 몸에 맞지 않는 거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되었다. 더구나 유목민들은 우유를 '발효'시켜서 먹었지 지금처럼 그냥 먹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든 학교에서 우유급식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처럼 우유라는 '권위'를 온 국민들에게 '강요'하는 것. 무언가 자연스럽지 않다.   

 
 우리 한국인들이 저 시베리아와 툰드라의 옛 유목민들과 무관한 사람들이 아님을 우리는 막연히라도 다 알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소의 젖이 필요한 게 아니라 '영양가 있는 어떤 것' '발효된 어떤 것'이 필요할 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고 보니 한국인들이 우유는 잘 소화시키지 못해도 치즈만큼은 거부감 없이 누구나 잘 먹고 좋아하는 것도 다 이 때문은 아닐까 싶었다. 발효 음식은 식품의 성질을 변용시키기 때문이다.
  
 문득 '막걸리'가 생각났다. 술을 못 마시는 나도 그래서 막걸리만큼은 그렇게 맛있고 꿀떡꿀떡 넘어갔던 것일까? 소화가 잘되는 쌀에 누룩으로 정성스레 발효를 시킨 것이니 그 어찌 안 맛있을 수가 있을까! 
 
 결론. 열 살이 훌쩍 넘은 우리 아이는, 우유를 먹지 않았어도 또래 친구들보다 키도 크고 잔병치레 없이 너무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그리고 우유를 마시고 안 마시고는 전적으로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 본 글은 우유에 대한 폄하가 아니며, 본인의 경험과 생각을 적은 것뿐임을 밝혀드립니다.


이전 11화 인식의 전환은, '나는 모른다'에서 출발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