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묘하게 비껴가면 좋았으련만 그러지 못했다. 이상고온으로 폭염이 지속되던 프랑스, 그 폭염이 정점을 찍은 날 샤를드골 공항에 갇혀버리다니.
낮 비행기였던 탓에 한국 시간으로 꼬박 밤을 새워 이미 피곤했건만, 파리가 42도를 찍은 날 통유리로 된 공항 환승 게이트는 난민 수용소가 따로 없을 만큼 강한 인내심을 요구하였다.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들. 온실 속에 서있는 것 자체가 힘든데 비행기는 무려 50분 연착.
실내 온도가 40도는 족히 되었을 공간에 에어컨이 없다는 사실이 더욱 귀국을 실감 나게 해 주었다. '프랑스에 왔구나' 빵빵한 에어컨과 쾌적한 공기가 흐르던 인천공항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곳. 귀국 액땜을 제대로 했다.
그랬다. 습도가 높지 않기에 태양은 뜨거워도 그늘은 시원하여 원래가 에어컨이 필요 없는 나라였다 프랑스는.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 되었다. 작년 여름부터 이어진 폭염과 열대야, 급기야 45도를 넘는 날들이 이어진 올여름. 프랑스도 이제 에어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나라가 된 것이다.
도착해서도 열대야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에어컨은 건강에 해로우니 필요 없다'는 관점을 고수할 프랑스인들이지만, 변해가는 지구만큼 이제는, 변해가는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이 말을 뱉고 보니 뜨끔하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아서. '흘러가는 시간만큼 이제는, 같을 수 없음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다행히 주말을 기점으로 빗줄기가 시원하게 뿌려주었다. 밤새 뿌린 비에 아침 공기는 금세 가을로 변해있었다. 아침에 눈이 떠지지 않는 나 같은 사람도 시차 덕에 도착해서 얼마간은 '아침형 인간'이 되어보는 신박함을 누린다. 그렇게 모두가 잠든 새벽. 아직 태양도 뜨지 않은 고요를 뚫고 눈을 떴다. 한 달 만에 앉아보는 책상. 작은 스탠드를 켰다.
모든 것이 그대로 놓여있는 공간. 내 손 때와 아이 손 때가 묻은 우리 가족의 손 길이 묻어있는 사물들. 그렇게 '나의 공간'으로 돌아옴은 언제나 반갑다. '집에. 왔구나'
한국의 가족들은 없지만 오랜 친구는 없지만, 이 곳은 내가 이룬 가정, 오롯이 '나'와 '우리'의 숨으로 만들어진 공간이자 그 시간들이 탄생하고 흘러간 곳이다. 먼지가 쌓인 진열장도 여전히 제법 잘 크고 있는 식물들도 모두 반가운 아침. '잘 있었니. 얘들아'
귀국하는 날을 일부러 주중으로 잡았었다. 주말로 하면 지방에 사는 엄마와 동생네까지 온 가족이 다 공항에 나오는 수고로움을 보아야 하고, 기어코 다 같이 한바탕 '눈물 바람'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한 달이라는 시간 멀리서 온 가족 '건사하느라' 밥 해주고 모셔주고 하는 것 자체가 생업에 바쁜 가족들에게는 '손님치레'와 같다는 걸 알기에. 이미 그만큼으로도 너무나 충분하기에. 그렇게 그냥 심플하게 가고 싶었다. 웃으면서.
그럼에도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목이 메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순간 나는 '나의 뿌리를 떠나' 철저하게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입자가 되어 '허공'을 향해 떠오른다.
이렇게 나는 또 영원히 어딘가를 헤매기 위해 떠나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처럼만 느껴져 좀처럼 감은 눈을 뜨고 싶지 않게 된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언젠가. 또 이 땅에 살 수 있을까. 다시. 이 곳에 뿌리를 거두어 머물 수 있을까.
손을 뻗어 만지고만 싶은 이 땅을. 나는 또 떠나는구나. 어쩌면.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에도 없을지도. 아. 나는 도망 왔었지. 그렇게. 나를 허공 속에 던져버렸었지. 이제와 뿌리를 찾다니. 그 뿌리란 것은. 무엇이었나.
언제나 돌아오고 싶은 곳. 맘처럼 쉽게 돌아올 수 없는 곳. 나를 있게 하고 이루게 한 곳. 내 모든 기쁨과 즐거움이 머물러있는 곳. 내 모든 고통과 분열이 탄생한 곳. 너무나 미워했던 곳 너무나 사랑했던 곳. 이제는 조용히 보듬어주고 싶은 곳. 그래서 더 깊이 그리운 곳.
내게 고향은 그렇다. 그렇기에 감은 눈꺼풀 속 눈물은 쉬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비행기가 이륙할 때 나는 나만의 의식을 치른다. 그 짧은 순간 고향 땅을 기림은, 내가 나고 자란 땅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자 다른 차원으로 떠나는 나에 대한 응원의 마음이 담겨있기에.
날이 밝아오고 있다. 어둠이 걷히고 사물들의 윤곽이 드러난다. 책상에 앉으면 보이는 풍경. 온통 녹빛만이 보이는 풍경. 내겐 너무 익숙한 그 풍경이 반갑다. 야트막한 작은 산과 플라타너스들 그리고 녹빛의 강물. 발코니의 작은 나무는 흐드러진 꽃들을 떨구고 진한 녹빛으로 휘날리고 있었다. 바람이 분다. 시원한.
강물이 일렁인다. 바람결에. 상쾌한 아침 공기를 담아 유유히 흘러간다. 모든 잡음을 끊고 조용히 함께 걷자 한다. 나를 포근이 감싸주던 그 강물이다. 나의 고마운 아침 산책길을 열어주는. 그렇게 나는 이미 많은 것들에게서 위로를 받고 있었음을.
아이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 배고파!" 강물의 낭만이 현실의 배꼽시계로 돌아온 순간. 그러고 보니 나도 배가 고팠음을 이제야 알아챈다. 이른 아침부터 배가 고픈 이유는 한국시간으로 지금이 점심시간이기 때문에.
그리움을 묻은 시간. 다른 땅 다른 차원. 그러나 지금 내가 딛고 섰는 땅은 여기다. 다시 시작이다.
"그래 밥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