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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Mar 04. 2021

프랑스 회사로 배달 간, 제육볶음

프랑스 회사에 한식 도시락 팔던 내 이야기


 6개월 된 갓난아이를 데리고 알파벳을 익히던, 독박 육아로 시작되었던 나의 프랑스 생활. 당연히 남들이 생각하는 우아함과는 아주 거리가 먼, 그야말로 하루하루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살아가야 했던 날들. 문화를 익히기도 전에 말을 먼저 익혀야 했고, 말을 채 익히기도 전에 인종차별 경험들을 겪어야 했으며, 경제력을 가질 수 있기는커녕 어디 가서 바보 소리만 안 들어도 괜찮겠다는 마음만 지니고 살아가던 날들.
 
그렇게 이 땅에서 나는 아내로서 엄마로서 며느리로서의 역할에만 익숙한 채로 오래도록 살아왔었다. 그리고 여느 전업주부들처럼, 끝없이 밀려드는 '나의 자리 없음'에 대한 공허함과 경제적 자립에 대한 갈망을 돌덩이처럼 이고 살았다.
    
 하지만 언어가 유창하지 않은 이방인 그것도 동양에서 온 이방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매우 한정되어 있었다. 아이가 있으니 풀타임 잡을 구할 수도 없고 짬짬이 할 수 있는 일로 용돈벌이를 시작했었다. 프랑스인에게 한국어 과외도 해봤고, 식당에서도 잠시 일을 해봤다.
그러다 글 쓰는 것 외에 내가 즐겁게 잘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바로 요리였다. 살림을 하면서 내가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솜씨가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 요리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에서, 한국 음식을 내놓는 것에 대한 결과는 상상을 초월할만큼 늘 엄청난 환대를 받았었기에.
 
시댁에서 한국 요리를 해줄 때에도, 프랑스 친구들을 초대하여 한국 음식을 해줄 때에도, 지금껏 어디서도 받아보지 못한 '경외에 찬 눈빛'과 '존경을 담은 마음'이 쏟아지던 순간은 내게 매번 신선하고 유쾌한 경험을 안겨주었다.


싱싱 명이나물 곁들여 먹는 집표 튀김. 언제 먹어도 맛있는 잡채

 

그렇다고 해서 나의 요리 솜씨가 수준급도 아니다. 그저 한국 주부들의 평균을 할 뿐인데도, 한국 요리를 모르는 프랑스인들에게는 그것이 색다르고 훌륭한 요리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프랑스 친구들은 집에 올 때마다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했고, 일일 요리 강습을 열어줄 것을 부탁하거나 내가 만든 김치를 사고 싶다는 요청을 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음식을 만들어 경제적 자립을 하는 것을 생각해보기도 했었다. 한국식 김밥집이나 작은 테이크아웃 도시락점 같은 것을 늘 구상하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요리를 업으로 삼는다는 것이 얼마나 강한 체력을 요구하는 일이며 엄청나게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순진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한참 후에 알았다. 더구나 체력이 좋지 않은 나로서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즈음 좋은 기회가 왔었다. 한국 음식을 도시락으로 만들어 프랑스 회사의 점심시간에 판매하는 일이었다. 매달 정기적으로 정해진 요일에만 했으므로 체력적인 큰 부담 없이 시간에 구애 받음 없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더구나 어디에 출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닌, 내 집 내 주방에서 내가 만들고 싶은 메뉴를 만들고 배달하면 되었기에 꽤 메리트가 컸다.
 
한동안 그날만 되면 전식과 후식을 포함한 50인분씩의 한국 음식을 만들어 사각 도시락통에 예쁘게 담아 점심시간에 맞춰 배달을 갔었다. 물론 아침 시간에 다 조리하여야 하므로 혼자 할 수는 없었고 함께 하던 한국인 동료가 있었다.


배달 직전, 도시락통에 담겨 있는 닭강정 덮밥과 돈까스 덮밥

 

도시락을 들고 회사 로비에 도착하면 우리 프랑스 고객들은 이미 줄을 쭉 서있다. 운이 없는 날엔 15분도 안되어 도시락이 모두 동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다른 요일에 오는 도시락 업체들은 회사 문만 나서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지만, 우리 음식은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한국 가정식 요리'기에 가장 인기가 많다고 했다.
 
 우리는 매번 네 가지 메인 메뉴에 두 가지 전식과 두 가지 후식을 준비해서 갔다. 덮밥 종류와 볶음면을 기본 형태로 매번 메뉴를 바꾸는데 반드시 들어가야 할 메뉴는 튀김 요리였다. 돈까스, 탕수육, 닭강정, 야채 튀김, 전 같은 음식은 언제나 가장 먼저 완판이 되었기에.
 
단순하고 정직한 노동. 묵묵히 혼자 하는 일. 몸은 힘들었지만 난 그 일이 좋았다. 
 
오늘은 어떤 음식이 있나 궁금한 얼굴 그리고 골라먹는 재미 앞에 잔뜩 설레어 있는 표정. 무엇보다 사람들이 언제나 만면에 미소를 띠고 다가온다는 것. 그렇게 즐겁게 도시락을 팔고 나면, 다른 곳에서 기본 시급을 받으며 일하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벌이가 되었었다.
  
 "오늘은 메뉴가 어떻게 되나요?" "닭고기를 튀겨 새콤달콤한 한국식 소스를 얹은 밥 그리고 돼지고기를 한국식 매운 양념에 볶은 밥, 닭다리살 구이에 데리야끼 소스를 얹은 면, 돼지고기를 갖은 채소와 함께 콩 발효소스에 볶은 면입니다. 전식으로는 생선살을 으깬 매콤한 튀김과 흑임자 소스를 얹은 샐러드, 후식으로는 단호박 머핀 그리고 녹차 티라미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춘장을 볶아 만든 집표 짜장밥. 고사리와 말린 나물 넣은 비빔밥

 

닭강정, 제육볶음, 닭데리야끼, 짜장면을 순서대로 설명한 것이다. 한국 음식을 찾는 프랑스인들은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제육볶음은 언제나 가장 먼저 팔리는 효자 메뉴 중 하나다. 또한 짜장면을 찾아볼 수 없는 프랑스에서 우리의 짜장면을 한번 맛본 고객들은 꼭 다시 찾곤 하였다.

 
"우리가 오늘을 끝으로 그만둡니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오 안돼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나요!"
 
 도시락 만드는 일을 그만두던 날, 단골 고객들은 모두 우리가 떠나는 것을 매우 섭섭해하였다.
하지만 함께 하던 친구도 나도 꾸준히 음식을 팔아 돈을 벌만큼의 체력이 되지 못하였고 우리는 지쳐있었다. 무엇보다 둘 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었다. 통역을 하던 친구인 나의 동료는 일정한 수입을 위해 이 일을 하다가 역시 글을 쓰기 위해 그만둔다고 했다.
 
그 친구도 나도 같은 이유였다. 글을 쓰기 위해. 진짜 하고 싶었던 것을 이제라도 하기 위해.
 
그것을 하기 위해 우리는, 짭짤했던 수입을 뒤로하고 단호하게 책상으로 돌아 앉았다. 얼마 전 만난 그 친구도 지금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브런치를 한다는 얘기는 안 했지만 나도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언젠가 그 친구에게, 도시락이 아닌 나의 글을 보여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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