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현 Jun 04. 2019

아침을 걷다가, 터져버린 울음

물냄새가 가져다준 어떤 찰나


 좀처럼 운동할 짬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해가 비추면 바람이 거셌고 바람이 없으면 비가 내렸다. 체력이 좋지 못한 걸 알면서 무리했기에 몸이 무겁기도 하였다. 그래도 오늘은 걷고 싶었다. 바람이 없는 아침이었다.
 
 요가매트를 펼쳤다. 굳어있는 몸을 조금이라도 풀어줘야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간단한 스트레칭이 끝난 후 바라본 창 밖.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그래 오늘이다.
 
여느 때처럼 핸드폰은 집에 두고 열쇠 주머니만 하나 매고서 집 근처 강가를 향하였다. 강 옆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걸을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상쾌해졌다. 차분한 녹빛이 감도는 강가. 그새 훌쩍 커버린 풀들. 바람에 물냄새가 실려왔다. 아. 얼마 만인지.
 
 나는 물냄새를 참 좋아한다. 물가에 서서 물냄새를 맡고 있으면 마치 내가 그 물이 된 것처럼 편안해진다. 물소리도 그러하다. 모든 물소리가 좋지만 특히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는 더없는 온기로 나를 감싸 안아준다. 모든 자연이 그러하지만 물이 주는 원초적인 힘은 깊고 넓다.
 
 조깅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다들 뛰고 있고 나만 걷고 있었다. 형편없는 체력으로 뛰는 거 자체가 불가능한 내게는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장면. 꾸준히 걷다 보면 언젠가 뛸 수 있는 날도 오겠지.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곰처럼이나 큰 개들이 옆에서 마구 뛰어다닐 땐 사실 좀 겁이 나지만 침착하게 그 옆을 지나왔다. 다음에도 도망가지 않을 것이다.

 한참을 걸으니 막혀있던 땀방울들이 조금씩 열리는 듯하였다. 겉옷을 벗어 허리에 묶고 조금 더 좁게 난 길을 따라 걸었다. 키가 큰 풀들과 나뭇잎이 우거진 나무들이 나타났다. 조금 더 진한 풀냄새가 올라왔다. 언제 맡아도 좋은 이 냄새.

  

녹빛이 가득한 물가를 걷는 건 언제라도 좋다


 그렇게 조금만 더 걷다가 집에 들어갈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안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순간 나는 어리석음이 남겼던 오래된 회한이 내게, 다른 시간 다른 형태로 찾아왔었음을 알았다. 내가 잉태했어야 할 생명을 잉태하지 않았던 대가로 나는, 출산의 고통과 같은 고통의 계절을 지나야 했었다는 것을.


 지난겨울 나를 찾아와 나를 산산이 무너뜨렸던 고통의 의미가 또 다른 의미로 내게 안겼다. 이제야 그것이 가슴 깊이 받아들여졌다.


 그 '앎'이 스치자 내 안에서는 통곡에 가까운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더 빨리 걸었다. 걸음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깊은 곳에서 용솟음쳐 나온 울음은 아이의 그것이 되어 강가를 물들였다. 사람들은 여전히 내 옆을 걷거나 뛰고 있었고, 그 옆을 나는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목 놓아 울며 걸었다.


 터져 나온 울음에 실컷 길을 터주고 싶었다. 그동안 나오지 못해 애썼다며 격려해주고 싶었다. 나는 더 크게 울었고 계속 걸었다. 그리고 겨우 한 팔로 입을 막은 채 큰길을 건너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다 울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러니 아직은 좀 더 나를 울게 놔둬야겠다. 아니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가벼워져야지.  


  울음  나올 때까지. 계속 걸어야지. 오늘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