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산책 Sep 25. 2019

프랑스 교육은 정말
'아이가 행복한' 것일까?

엄격한 통제로 훈육되는 프랑스 아이들. 3편 


 프랑스인들의 엄격한 훈육은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더 단호하게 행해진다. 
프랑스 부모들은 거의 모든 것에서 '꺄드흐'(cadre:)와 그에 대한 '리미뜨'(limite: 한계)를 함께 정해주며 그것을 '엄격히 지킬 것을' 아이들에게 교육시키는데, 그것들은 먹는 것, 자는 것, 노는 것, 공부하는 것, 사람을 대하는 예절 등 세세한 항목에까지 적용되기에 

 프랑스 
아이들은 '매우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웬만하면 '선을 넘지 않는 착한 아이'로 자라난다. 

 
 예를 들어 아무 때나 간식거리를 먹는 것은 '올바르지 않으므로' 대부분의 프랑스 아이들은 오후 4시에서 4시 반 사이에 간식을 먹는다. 식사 시간에 자신의 접시를 깨끗이 비우지 않는 것은 '예절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아무리 먹기 싫은 음식이라도 아이는 입이 한주먹 나온 채로 꾸역꾸역 접시를 비운다. 
  
  잘 알려졌다시피 프랑스 아이들은 영아 때부터 부모와 다른 방에서 혼자 자는데, 밤중에 아기가 깨어나 울어도 부모들은 바로 달려가거나 안아주지 않고 '기다리거나' '지켜본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매우 엄격하게 지켜지기에, 프랑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보통 8시에서 8시 반에 잠자리에 들고 초등학생들도 9시에는 모두 침대로 '가야만' 한다. 

 것들이 설령 싫다 하여도 '모두가' 그렇게 하기에, 아이들은 불평보다는 '사회적 규칙엄수하는' 개인으로 일찍부터 성장하게 된다.

 아이들이 잠들 때에도 
엄마가 옆에서 '재워주는 것'은 없다. '두두'라 불리는 애착인형을 쥐어주고 '혼자 스스로 잠들 것'을 훈련시킨다. 그렇게 프랑스 아이들은 혼자 남겨진 깜깜한 방에서 '인형에 의지하여 혼자 잠드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행동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길러주고 스스로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독립심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프랑스인들은 말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의 틀'은, 너무도 자주 아이들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처럼' 보였고, 때론 아이들을 '차갑게 방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차가운 권위자의 손가락질. 프랑스 아이들의 흔한 일상이다


 특히 이들의 '예의에 대한 훈육'은 거의 '집착 수준'으로 보일만큼 타인에 대한 배려를 단단히 교육시키는데, 만약 아이들이 그 규칙을 어길 시에는 '즉각적 수정'을 요구하며 때로는 고압적인 자세로 끊임없는 반복 학습을 시킨다. 타인에 대한 고마움 표시하기, 타인에게 작은 피해도 주지 않기, 공공장소에서 절대적으로 조용히 하기, 큰 소리로 말하지 않기, 실내에서 뛰지 않기, 음식을 소리 내어 먹지 않기...
 
 프랑스인들은 어릴 때부터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도 '메흐씨' (merci: 고맙다)라는 말을 '표현'하도록 훈련받는데, 일상에서 일어나는 '당연한 일들'에 끊임없이 '고맙다'는 말을 하도록 학습시킨다. 엄마가 밥을 차려주었을 때에도, 아빠가 물을 따라 주었을 때에도, 할머니가 사탕을 주었을 때에도, 누군가가 문을 열어주었을 때에도. '고맙다'는 말을 하게 함으로써 고마운 마음이 생겨나게 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고맙다'는 말을 잊고 안 했을 경우, 끝까지 그 말을 하도록 부추기는 모습은 옆에서 보기에 '교육'이라기보다 차라리 '압박'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또한 프랑스인들은 길거리나 버스 안에서 누군가와 몸이 살짝만 부딪혀도 '빠흐동'(pardon: 죄송합니다)이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데, 그렇게 반응할 수 있음은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훈련시킨 결과이다. 아주 사소한 행동이라도 그것이 타인을 불편하게 하는 거면 '반드시' 미안하다는 말을 하도록 교육받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큰 소리로 말하거나 뛰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행동'이기에 프랑스 부모들은 곧바로 '차가운 권위자가 되어' 아이들을 나무라고, 아이들은 엄마의 그 모습이 무서워서라도 바로 얌전한 아이가 된다. 
 
 특히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행동, 예를 들어 친구와 놀다가 다른 친구에게 어떤 것을 양보하지 않고 떼를 쓰거나 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시에는, 가차 없이 아이를 한쪽 구석으로 끌고 가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을 낸다. 그 모습은 '아이를 사랑해서 교육시키는 모습'에 가깝다기보다 '스스로의 생각에 함몰되어' 화가 나있는 모습에 더 가까워 보이곤 하였다. 
 
 
그렇게 사소한 일로도 아이를 다그치는 모습을 보면 '저게 뭐라고, 저렇게까지 애를 잡을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니오, 어린이는 순종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프랑스인들이 아이들에게 자주 쓰는 다른 말 중에 '말폴리'(예의 없는)라는 말이 있다. 인사를 안 해도, 음식을 남겨도, 고맙다는 말을 안 해도,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해도, 이들은 아이들에게 '예의가 없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이 놀다 보면, 먹다 보면, 쉬다 보면 그 말을 안 할 수도 있고 생각이 안 날 수도 있지 않을까? 프랑스인들은 아이들에게 'Non'(아니오)라는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어떤 권위 앞에서도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이 아이들에게 가장 자주 쓰는 말이 'Non'이다. 이처럼 이미 사회적 함의로 굳어져버린 '커다란 약속' 앞에서 아이들이 'Non'라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렇듯 나에게 그들이 말하는 '예의'란 언제나 '주객 전도가 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하였다. 
 
 '아이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 '예의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그들의 '생각'에 무게중심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틀'을 안지키면 꾸짖음이 따라오지만 '틀'을 지키기만 하면 '모든 보상'이 따라오는 것. 차가운 얼굴을 거두고 한없이 따뜻한 부모가 되어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 그렇다면 그 가치의 기준은 '아이의 마음'이 아니라 '그들이 정해놓은 틀'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헤아리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진정한 '아이 중심 교육'이고 아이가 행복한 교육 아닐까? 
 
 그렇게 끊임없이 '아이를 부모가 지켜보고 있고 지지하고 있으며 믿어주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 그것이 아이로 하여금 진정한 자율성과 독립성을 획득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프랑스인들은 어쩌면, '틀을 지켜야 한다'는 그들의 생각 속에 '강박적으로 묶여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의 '과한 엄격함'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 물론 모든 프랑스인들이 다 엄격하지만은 않으며 모든 가정의 훈육 또한 그렇지는 않습니다. 본 글은, 본인이 직접 겪고 파악한 '다수의 프랑스인들'에 대한 생각과 느낌으로 작성된 글임을 말씀드립니다. 


이성에 치우쳐있는 프랑스 교육의 폐해




이전 13화 프랑스 아이들, '틀' 안에서만 허용되는 행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