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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Sep 26. 2019

딱딱하고 차가운 학교.
순종을 배우는 아이들  

엄격한 통제로 훈육되는 프랑스 아이들. 4편


 이렇듯 그들의 '과한 엄격함'이 내 눈에는 오히려 아이들 마음을 '위축되게' 하고 아이들을 '주눅 들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그런 '냉정함'은 정서적으로 좋을 리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것들은 자유롭고자 하는 아이들을 '부자유 속으로 구겨 넣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안에서 아이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 사는 다른 한국 엄마들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한국 엄마들과 학교 얘기를 할 때면 늘 하는 말이 "여기 학교 분위기 너무 딱딱하고 차갑다" 였으니까.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프랑스 엄마들의 로망인 '명문 음대'의 음악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진 적이 있었다. 명문 음대 교수들이 직접 어린 초등학생들을 지도하는 프로그램으로 경쟁이 치열하기에 아무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부푼 마음을 안고 수업을 데려다주었고 많은 기대를 안고 아이의 반응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이는 '수업이 재미없다'며 '가기 싫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 말로는 '선생님들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거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들은 그 '고고하신 교수님들' 얼굴도 몰랐다. 늘 학교 입구에 아이들을 데려다주면 비서들이 나와 아이들을 인솔해갔고 엄마들은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얼굴조차 '알 권리가 없는' 시스템이었던 것이 그제야 이상하게 느껴졌다. 
   
 몇 년 과정을 더 할 수 있었음에도 아이는 매번 '가기 싫다'는 말을 반복하였고, 나 역시 재미도 없으면서 차가운 권위만을 내세우는 선생님과 아이가 함께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우리 아이는 1년 과정을 겨우 마치고 곧바로 그만두었다. 다른 프랑스 엄마들이 옆에서 아깝다고 난리였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설령 거기서 고급 기술들을 배울 수는 있을지언정 '아이들의 눈높이가 될 마음이 없는' 그들에게 내 아이를 맡기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그보다, 충분히 따뜻하고 부드러운 선생님과 함께할 권리가 있으니까.  
 

아이들에게 손가락질하는 그 자체가 나는, 마음이 아프다


 이 동네에서 명망이 높은 한 '발레 학교'에 다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학교 역시 수준 높은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전통 깊은 발레 학교'였다. 더구나 한 프랑스 엄마 소개로 간 곳이었기에 잔뜩 기대를 했었다. '우아하고 기품이 흐르는 선생님'과 무언가 '정돈된 고고함'이 흐르던 학교 분위기. 하지만 아이는 즐거워하지 않았다. 이유는 같았다. '선생님이 잘 웃지 않고 무섭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매번 볼 때마다 미소 한번 짓는 것을 본 적이 없던 게 생각났다. 그리고 드디어 '멋진 극장'에서 올려진 학교 작품발표회. 나는 아이가 속한 반의 작품 발표를 보고 실망한 걸 넘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작품 자체의 수준도 실망스러웠지만 무엇보다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아무런 애정도 갖고 있지 않기에' 나타나는 산만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1년 과정을 다 마치려면 몇 달을 더 기다려야 했지만 작품 발표회 이후로 아이는 발레를 바로 그만두었다. 저런 선생님과 끝까지 함께 할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전통이 깊고 클래식하다는 두 학교'를 겪으며 비로소 나는
 
 이 사람들이 말하는 '클래식'이라는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된 듯하였다. '차갑고 권위적인 울타리' 그 권위가 싫으면 편입될 수 없는 세계. 그 오래된 방식을 따라야만 득할 수 있는 선별된 이름표.
 
 다수의 프랑스 엄마들과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딱딱하고 차가운 분위기'가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었다. 아무리 훌륭한 것을 가르쳐준다 해도 '아이를 대하는 마음'이 먼저 따뜻하게 열려있지 않다면 좋은 학교도 좋은 선생님도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도 지금도 우리 아이는, 따뜻하고 인상이 좋은 선생님과 포근한 분위기의 공간에서만 과외활동을 한다. 나의 기준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배우고 가르치는 행위는 '기술의 습득'에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마음의 소통'이라 믿기 때문이다.

 
 또 하나, 프랑스인들은 '고분고분하지 않은 아이'를 따로 부르는 말이 있다. 틀'을 잘 따르지 않거나 그에 저항하는 아이는 보통 '힘든 아이'(enfant difficile), 유독 고집이 센 아이는 '
caractère'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사용하여 '고집불통 아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변덕, 이라는 단어는 설명 할 수 없고 당혹스런 아이의 행동에 대한 성인의 잘못된 판단입니다" - 프랑스 소아과 의사


 그렇게 '이 아이는 힘든 아이' '저 아이는 고집불통 아이'라며 어른들만의 대화에서 아이들을 종종 '쉽게' 얘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그러한 '명찰'을 달아 준 사람들이 누구인 걸까? 누구의 관점에서 그 아이들은 '그러한 이름'으로 불려지게 된 것일까? 
 
 그것은 사실 '그들 편리한 대로' 아이들을 '분류한 것'이 아닐까? 혹시 '권위자'의 관점으로 보기에 '순종하지 않는 아이'는 그렇게 불러서라도 순종하도록 하고 싶은 건 아니었을까? 

 아이들의 행복이 그들이 '정해놓은 틀' 안에서만 허용되는 것이라면, 그것이 과연 진정한 자율성과 독립심으로 연결되는 거라 말할 수 있을까? 우리 존재는 어떠한 '틀' 안에 구겨 넣을 수 없는 존재가 아니었나?
 
 교육이란 궁극적으로, 우리 삶에는 우리를 규정짓는 어떠한 '틀'도 없음을 가르쳐주어야 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프랑스식 교육을 보며 내가 당도한 질문들은 이것이었다.

 이처럼 반짝반짝 생기 넘치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 '차분하고 얌전한 아이'로 변해있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며칠 전 길에서 우리 아이의 어릴 적 친구를 마주쳤던 것처럼. '천방지축 말괄량이'였던 친구는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너무도 차분한 소녀가 되어있어 깜짝 놀랐는데, 그를 본 우리 아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 왠진 모르겠는데 옛날의 아녜스가 더 좋았어" "그렇지? 엄마도 그래"
 
 그랬다. 그것들은 어린아이조차 '알아볼 수 있는' 어떤 안타까움 같은 무엇이었다.






딱딱하게 굳어진 사고가 가져오는 것


겉모습이 아름다운 파리의 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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