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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준 Apr 17. 2021

인생은 변한다

그때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나.




성인이 되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을 가끔 본다. 반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고 존재감이 크지 않았던 친구로 기억이 남았었는데 대학생이 된 후에 180도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굉장히 적극적이고 활발한 사람이 된 몇몇을 알고 있다.

나의 경우엔 그 반대인 것 같다. 학창시절의 나는 참 말괄량이에 천방지축 소녀였다. 수업시간에 반 아이들이 수업하기 싫다고 놀자고 할 때면 앞에 나가 선생님들 성대모사를 하기도, 축제 때도 장기자랑에 나가 춤을 추던(춤도 못추면서 그랬다) 그런 애. 반에 한 두명 즈음 있을 법한, 공부를 잘하는 것도, 그렇다고 날라리도 아닌 그냥 좀 웃기고, 친구 많고, 복도 지나가면 인사 안 하는 애가 없이 발 넓은 애. 그 포지션이 나였던 것 같다.

학창시절 나를 알았던 이들이 지금의 나를, 이십대 중후반부터의 나를 만난다면 아마 적잖이 놀라지 않을까. 스물 스물하나 즈음을 기점으로 내 인생은 조금 변했으니까. (생각해보니 성인이 되어 알게 된 사람들이 학창시절의 내 이야기를 듣는 것, 그 경우가 더 놀랄 것 같다!)
아무튼 그냥 그 즈음부터 친한 친구들에게, 또 가끔 만나는 동창들에게 나는 변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너 진짜 조용해졌다.”,
“좀 어두워졌다... 예전엔 진짜 밝았었는데...”
처음에 그런 얘길 들었을땐 ‘내가 그런가? 음.. 그런가보네’ 싶었고 반복적으로 그런 얘길 많이 들을 땐 ‘그래서 뭐? 그게 왜? 그게 나쁜거야? 어쩌라는거지 나보고?’라는 생각에 한껏 예민해지던 때도 있었다. 그런 시기도 지나고 서른 중반이 넘은 지금은 어떨까. 그냥 예전엔 밝고 외향적인 면이 많았던 사람이었다면 언젠가부턴 내향적인면이, 정적인 면이 많은 사람이 되었구나, 하고 그냥 받아들인 상태가 되었다.
아,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어떤 눈에 띄게 큰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사람 안에 어떤 한가지 면만 있는 건 아니듯이 내 안에도 여러 면이 있을텐데 특정 시기에 따라 발현되는 면이 각각 달랐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반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친하게 될 기회가 많은 학창시절과 달리 사회에 나왔을 땐 내가 어떤 모임이나 무리에 들어가려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사람을 사귀는 것이 마냥 쉽지는 않은, 그 차이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두 가지 인생을 살아보았을 때 각각의 장단점이 분명 있다. 내가 밝고 활발할 땐 주변에 사람이 늘 많았다. 반대로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향이 더 크게 드러나던 때엔 주변에 사람이 확실이 점점 줄어갔다. 그러면서 외로움은 덤으로 따라왔다. 언젠가부터 이 외롭다는 감정을 마음 한 켠에 품고 지내온 것 같다. 그럴 때면 문득문득 내 학창시절이 절로 떠오르곤 한다. ‘그때와 지금,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구나.’ 하고. 그때는 외롭다는 감정을 거의 모르고 살았으니까. 늘 주변에 사람이 있었기에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의 삶이 내게 더 맞다는 것을 안다. 어릴 적 많은 사람들 앞에서 누군가를 흉내 내고 춤을 추던 때도 다른 이들을 웃게 만든다는 나름의 즐거움은 있었지만 지금이 더 맞는 옷을 입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딘가에서 사람의 성격은 변할 수 있어도 본래 가진 기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조용하고 존재감 없는 듯 했다가 나중에 사교적이고 외향적으로 변한 동창들, 친구들 속에 늘 둘러싸여 지낼만큼 사교적이고 외향적이었는데 이후에는 차분하고 내향적인 성격으로 바뀐 나. 실은 어쩌면 그 동창들은 원래부터 외향적인 사람이었고 난 원래부터 내향성이 강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단지 학창시절이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각자가 가진 기질과는 다른 면이 좀 더 두드러졌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학교 입학하기 전 유년의 내 기억 속 나는 수줍음 많고 조용한 아이였다. 내가 가진 기질을 바꿀 생각은 없다. 무엇이든 나쁘고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생긴대로, 가진 것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는 걸 알기에.

가끔 맘 통하는 몇몇 이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고 자주 혼자 까페에 가 책을 읽고 글을 끄적거리기도 하는 내가, 예전보다 훨씬 외롭기는 해도 더 마음이 편하고 나답다는 생각을 한다. 외로운 건 싫다. 그치만 외로움을 품고서라도 마음이 자유로운 것이 더 좋다.


2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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