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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준 Apr 22. 2022

후회된다 말할 용기, 직시하고 응시할 용기

 나의 무릎 이야기



스무살을 기점으로 내 인생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그 즈음 무릎을 다쳤다. 수능이 끝나고 고깃집에서 서빙 알바를 하다 탁자 모서리에 아주 세게 무릎을 박았다. 병원에 가니 큰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뼈에는 아무 이상이 없고 인대, 관절 쪽에 상처가 생긴건데 약 먹고 물리치료 받으면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며칠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그러고 얼마 이따 대학이란 곳에 입학을 했고 정신 없는 3월을 보냈다. 바쁘다는 핑계, 또 며칠 치료 받고나니 차츰 좋아진 것 같아 병원을 잘 안 갔다. 당시 시급 3000원을 벌기 위해 다친 무릎을 물리치료하는데 3~4000원 정도가 들었다. 학창시절부터 우리집은 기울기 시작했고 스스로 알바해서 차비, 휴대폰값, 밥값을 충당하는 대학생에겐 그 3000원 가량의 병원비도 부담이었다.

그렇게 나 스스로 치료를 중단해버리고 병원을 가지 않았다. 그러고 몇 달 지나니 무릎이 서서히 아파왔다. 조금만 오래 걸어도 무릎에 통증이 찾아왔다. 그때부터 많이 아플 때마다 간간히 물리치료를 받으며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그때 나는 몰랐다. 삼십대후반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까지 그렇게 지내게 될 줄은.



아픈 무릎은 많은 것을 바뀌게 했다. 조금만 무게가 나가는 걸 들면 바로 통증이 오기에 가방을 사도, 지갑을 사도, 다이어리를 사도 디자인보다 가벼운가 아닌가를 우선으로 생각한다. 좋아하는 사람과 선선한 밤에 오래도록 걷고 싶어 집을 나서도 고작 10분 정도 걸으면 무릎이 아파 자주 집으로 돌아간다. 다치기 전엔 운동도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어서 다들 싫어하는 체육시간까지 좋아했던 나였다. 이젠 나지막한 동네 뒷산도 나의 무릎엔 무리다. 내 두 다리로 걷는 반경은 가까운 마트 정도가 고작이다. 술을 꽤 잘 먹지만 술 생각하면 무릎의 염증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라 술자리는 웬만하면 피한다. 몸에 제약이 있다보니 동적인 활동보단 정적인 활동 위주로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바뀐건지 아픈 무릎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십대 초반부터 주변 사람들에게서 많이 얌전해지고 어두워졌다는 얘기를 밥먹듯이 많이 들었다. 몸의 한 부분이 제 기능을 온전히 잘 하지 못할 때 한 사람의 일상은 아주 많이, 많이 달라진다.



예전 <방구석 1열> 홍콩영화 특집 때 왕가위 감독의 <해피투게더>를 보며 변영주 감독이 말하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오래 전에 보아 정확한 멘션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이야기였다. 동성애 소재이지만 이 영화에선 장국영도 양조위도 그 어느 누구도 우리 사랑을 있는 그대로 봐달라, 인정해달라, 하는 뉘앙스나 메시지 같은 게 없다고. 그냥 사랑 이야기라고. 왕가위 감독은 변명, 설득, 호소 같은 거 따위에 관심 없이 흔히 사랑하고 싸우고 그리워하는 한 연인의 모습을 연출했다고.



무릎이 시큰해 올 때 쌩뚱맞게도 이따금 변영주 감독의 말이, 영화 속 양조위와 장국영의 모습이 생각난다. 아마도 나는 스스로에게 그렇지 못하기에. 나는 그들처럼 가뿐하게 뛰어넘지 못한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무릎을 생각하고, 또 무릎이 신경이 쓰인다. 17년 동안 거의 그렇게 지내왔다. 병을 병이 아닌 것처럼 마치 병이 없는 것처럼 긍정으로 똘똘 뭉쳐 일상을 살아가는 어느 한 베스트셀러 작가처럼도 하지 못한다.



내가 서른 때 아버지에게 뇌경색이 왔다. 뇌출혈까지도 아니고 겉으로 봐선 다리를 저시지도도 손이 뻣뻣해지신 것도 입이 많이 삐뚤어지신 것도 아니었다. 그냥 봐선 티나지 않지만 손과 다리, 온몸 한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속으로 많이 힘들어하셨다. 아픈 당사자가 아닌 자식인 내가 봤을 땐 다른 심한 중풍환자들에 비해 아빠는 그래도 좀 덜하신 편이라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었다. 당연히 불편하고 힘든 것이 많지만 평생 잘 관리하고 치료받으며 그렇게 지내시면 되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한번은 중풍환자들을 용하게 완치 잘한다는 한의원을 수소문해 찾아가려하셨다. 차도가 크게 없자 당시 다니던 신경과 치료 외에 자꾸 다른 걸 해보고 싶어하시는 것 같았다. 그때는 이해가 잘 안 갔다. 완치가 어려운 병이기에, 힘들지만 그 병을 평생 친하게 지내가야 할 친구처럼 생각하고 받아들이시면 마음이 편하실텐데..하고. 내가 보기에 아빠는 병이 찾아오고 1년이 지나도 아픈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그 마음을 아주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한 해 한해 무릎이 조금씩 더 안 좋아지는 걸 느낀다. 예전에는 걷거나 무리하거나 할 때만 아팠다면 몇 년전부터는 가만히 있어도 통증이 있을 때가 많다. 사람 마음이, 오히려 이런 상황이면 ‘그냥 예전만큼의 통증만 있어도 좋겠다, 여기서 더 나빠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할 것 같은데 참 이상하게도, 미련스럽게도 무릎 속 오래된 염증들이 싹 다 사라지고 깨끗하게 완치되었으면, 하고 아직도 기적을 바란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유년시절 교회를 잘 다니다 학창시절엔 신앙생활을 아예 접고 살았는데 스물셋에 다시 신앙을, 스스로 자발적으로, 마음으로 품게 된 이유 또한 무릎 때문이었다. 너무 절실했기에.



큰 병원에도 가고, MRI도 찍어보고, 침이 용하다는 한의원도 가보았지만 뾰족한 방도 없이 벌써 십 몇 년이 흘렀다. 가는 곳마다 비슷한 얘기를 듣는다. 수술할 정도는 아니고 계속 관리 잘해서 지내는 게 최선인 것 같다고. 아파 떼굴떼굴 구를 정도는 아니지만 미세하게 짜증이 일도록 만드는 이 통증들과 남은 생을 함께 살아갈 시간들이 아득하다.



무릎을 내려다보며 어떤 마음을 품어야 되는가, 자주 생각한다. 통증이 적은 날은 그럭저럭 지내고 심한 날은 마음과 정신까지 통증에 말려버릴 때가 많다. 현실적으로 낫기도 힘들고, 나의 아버지가 그러하였듯 완전히 낫고 싶은 이 마음 또한 내려놓지도 못한 채 시간이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다.

시급 3000원을 벌려다 평생의 신체의 아킬레스 건을 얻은 나. 괜찮겠지, 괜찮겠지 하며 초반의 치료 시기를 놓쳐, 별 것 아닌 상처를 만성적인 병으로 만든 나의 안일함이 참 많이 후회된다. 후회라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살면서 딱 두 가지를 후회한다. 다친 당시 새내기 대학생활이고 뭐고 의사가 오지 말라할 때까지 매일 야무지게 치료를 받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 치료비를 어디서든 손벌려서든 건강을 1순위로 두지 못한 것. 두 번 째는 살아계실 때 아빠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내지 못하고 더 많이 사랑을 표현해드리지 못한 것.



모두 되돌릴 수 없는 것들.

한번 잃은 건강, 살아서 다시 볼 수 없는 사무치도록 보고픈 사람.

‘~할 걸. ~ 할 걸.’ 제일 의미 없고 쓸 데 없는 말이다. 치료 잘 할 걸, 열심히 다닐 걸, 이 말이 하기가 참 속이 상해.. 한때는 괜찮아, 나 좋아질거야,하고 자주 긍정의 말을 빌려와 살았다. 후회된다 말하기까지, 꽤 용기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후회된다. 많이 후회한다.

무릎이 성한 사람이었다면 보다 동적인 직업을 가졌을텐데, 내 두 다리로 더 멀리 자주 세계여행을 다닐 수 있을텐데, 좀 더 활발한 성격이 되었을텐데, 그런 생각들을 자주 하며 살았다. 그, 하지 못한 일들이 무릎때문이 아닐수도 있는 것과 별개로, 그런 생각들을 하며 살았다.



후회되는 마음.. 후회하는 채로 둔 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려한다. 스스로에 대한 연민, 근거 없는 희망에 빠진 채 지내기보다 내 상황을 그저 있는 그대로 직시한 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땀흘리는 운동을 할 수 없으면 누워서 하늘달리기라도 조금씩 할거고 오래 산책을 할 수 없으면 조금씩 자주라도 나가볼거고 걷는 여행이 안되면 대중교통과 차를 최대한 이용해볼것이다. 아가를 많이 업어주지는 못하지만 눈으로 마음으로 사랑으로 듬뿍 키워낼 것이다. 무릎 주변의 근육을 단단히 키우기 위해 스트레칭을 꾸준히 하고, 치료도 자주 다니고, 더 잘하는 병원, 의사 만나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며, 그리고 또 매일 기도하려 한다. 낫게 해달라고. 내가 백프로 해낼 수 없는 일이기에 나는 나의 무릎을 나의 신에게 맡긴 채 나의 할 일을 한다. 두 번의 후회는 없다. 건강을 잃을 때 모든 것이 무너진다. 남은 삶 동안 몸을 방치하지 않을 거고, 내게 허락된 신체로 내게 주어진 나름의 삶을 뚜벅뚜벅 살아가려한다.



​2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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