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준 Apr 22. 2022

내가 만든 틀 속에서

이방인이면 어때


대학 1학년, 그해 봄 나는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다. 그때 나는 적응을 잘 못했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 왔지만 도무지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 탓에 학과생활에 마음을 붙이지도 못하고 얼마간 방황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내게 있어 대학생활은 과생활의 기억은 거의 없고, 동아리가 거의 전부였다. 밴드에 가입해 대학생활 내내 연습실에서 기타치고 합주하고 밥먹고 술마시고.. 그 기억이 대부분인 듯 하다. 대학 안에서 맘 둘 곳 없는 내게 밴드연습실은 꼭 집처럼 편안한 곳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동아리 위주의 대학생활을 했지만 그래도 학점은 따야했기에 수업을 듣긴했는데, 사회대에 소속 되어 있으면서 필수과목 외엔 인문대를 주로 드나들며 국문과, 교육학과 수업을 자주 듣고 지냈다.

그때 즈음 부터였을까. 이방인, 비정착인같은 삶을 살게 된 것이.

<미디어영상학>, <커뮤니케이션이론의 이해> 같은 전공 수업들을 어쩔 수 없이 듣지만 재미도 관심도 없어 괴로운 시간을 보내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인문대 건물로 뛰어가 <한국문학의 이해>, <현대소설개론>같은 수업들을 듣던 나날들.

나의 상황과 원하는 것이 달라 마음은 괴로웠지만 결국 그때도 나는 내가 하고픈 것들을 하는 사람이었다.

문제는 나의 태도였다. 타과생이 국문과 수업을 주로 듣는 일, 눈에 띄는 일이긴 했지만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내가 하고싶은대로 하면서도 마음이 불편해했다.

스스로 규정해버렸던 것 같다. 나는 이 곳 소속이 아니야, 나는 이 과 학생들에게 타인이고 이방인이야. 그러면서 최대한 튀지 않게 지내야지 하는 맘을 품고 움츠러든 채 지냈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3학년 때 편입시험을 쳐 국문학과에 다시 입학을 했다. 수업듣고 과제하고 시험치는 것이 힘들지만 이상하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만큼 재밌고 적성에 맞아 너무 행복한 시간들이었고, 지금까지도 이어지며 평생 갈 좋은 친구들, 동생들을 만나는 행운도 누렸다. 그런데, 그렇게 배우고 싶고 공부하고프던 국문학, 또 그 학과의 학생이 되었는데 나는 그곳에서도 이상하게 또 뭐가 그렇게 신경 쓰는 게 많은지 2년 내내 또 적당히 튀지 않게 지내려 노력하곤 했다. 스스로가 편입생이라는, 이방인이라는 생각에.


졸업 후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계약직을 전전하며 직장생활을 했다. 계약직이라는 타이틀은 늘 마음 한켠에 불안함, 조급함을 갖게 했다. 또 나는 이 곳 직원분들과는 다르니까, 언젠가 떠날 사람이니까, 직원분들 중에도 먼저 그러는 분이 있기도 했지만 나 스스로도 마찬가지로 마음 안에서 선을 긋고 지낸 것도 같다. 스스로 규정지어버리고마는 습관,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습관, 나는 그 습관들을 떨쳐내지 못했던 것이다.


타과 수업을 듣고, 타학교로부터 편입학을 하고, 유효기한이 있는 직장을 다니는.. 그 시간들에 저만치 멀리 와 있는 지금.. 조금 더 어렸던 그때의 나를 떠올려본다.

다른 것 맞고, 외부인, 이방인이라는 단어가 어쩌면 어울리는 위치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뭐 어떻다고, 왜 그리 눈치를 보며 지냈을까. 눈치보고 자주 의기소침해지고 움츠러들려하는 그 습관. 지금도 불쑥 나오려할 때가 많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온 지금, 지금의 내가.. 스무살의 나를, 스물셋의 나를, 스물 여덟.. 그때의 나를 꼬옥 안아주고 싶다.


여전히 가진 것 많이 없고, 세상의, 남들의 기준에 못 미치는, 기준과 다른 삶일지도 모른다. 남들이 판단해버릴까 내가 먼저 나를 판단해버리려는 오랜 습관, 그 습관이 또 나오려할때마다 떠올릴 것이다.

내가 틀을 만들지 않으면, 내가 틀을 가뿐히 넘어버리고 말면, 세상 틀이 아무리 견고하더라도 적어도 나는 '틀'에 갇히지 않는다고.



21.6.3

이전 04화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