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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준 Jun 26. 2022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사람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까, 하기 싫은 것도 해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나는 대체적으로 하고싶은 것만 하며 살았다. 정확히 말하면 하기 싫은 걸 하는 걸 못 견디는 사람인 것 같다. 학교 공부도, 취업도 그랬다. 가고 싶었던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지만 입학하고서야 이곳은 내 길이 아니구나 깨달았다. 적성에 맞지 않는 과를 다니면서 내가 한 선택은, 꼭 들어야하는 필수과목을 빼고는 그냥 내가 듣고 싶은 타과 수업을 듣는 것이었다. 사회대에 적을 두고 대책도 없이 국문과 수업만 주구장창 듣는 아이, 그게 나였다. 전과제도가 있었지만 시기를 놓쳤고, 복수전공이라는 카드가 남았지만 듣기 싫은 신방과 수업을 듣는 게 싫어 결국엔 타대학 국문과로 편입을 했다.

취업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흔한 토익시험을 본 적이 없다. 열심히 자소서를 준비하고, 토익점수를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주변 이들을 보며 불안했지만 불안과 별개로 그 노력들을 통해 주변 친구들이 가고자하는 기업들, 최종 목적지에 나는 관심이 없고 어떠어떠한 기업 안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애초부터 들지 않았다. 취업에 관심이 없었기에 스펙도 학점도 변변찮았던 나, 그래도 밥벌이는 해야했기에 내가 했던 선택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졸업 후 제대로 된 나의 첫 직장은 대학 모교의 전화 안내실이었다. 다른 동료 한 명과 1시간씩 번갈아가며 전화를 받으며 간단한 액셀작업을 하는 게 주업무였다. 사무실이 분리되어 있는데다 팀장님이 본인 업무타임 아닐 땐 하고 싶은 공부를 해도 되고, 소파에 누워 쉬어도 된다고 할 만큼 편한 직장이었다. 아주 하고 싶은 일은 아니지만 일이 간단했고 그 간단함에서 오는 남은 에너지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어 좋았다. 그 남은 에너지로 나는 무얼했나.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알고 싶어 그걸 찾는 궁리를 하는데 많이 썼던 것 같다.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정말 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좋아하지도, 원치도 않는 쪽에 에너지를 많이 쓰는 일은 본능적으로 줄이면서. 어떤 이들은 말한다. 간절히 원하는 목표가 있기에 그곳에 이르는 과정이 조금 힘들어도 참고 견딘다고. 그런데 나는 목표도, 과정도 재밌어야하는 사람이었다. 원하는 목표를 몰라 그 둘 다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시간 동안, 그냥 너무 싫지 않는 것, 너무 괴롭지 않은 것, 너무 내 능력 밖의 일은 하지 않으며 살았다. 그렇게 하기 싫은 건 피하고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아 지금의 내가 되었다. 에너지를 아낄 수 있는 직장을 다닌 덕에 저녁에는 사서자격증을 따 대학안내실 퇴사 후 도서관에서 주로 일했다. 좋아하는 책이 있고 애정하는 공간에서 일하는 사서라는 직업이 좋지만 이 일도 내가 최고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많이 좋아하는 일 같다. 예전 안내실 일보다 훨씬 좋아하는 일. 그렇게 조금씩 간격을 줄여나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점점 하기 싫은 일이 싫어 하지 않는 쪽보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좋고 행복해서 하는 쪽에 서는 사람이 될까.  

도서관에 근무하며 퇴근 후 좋아하는 책을 보고 글을 쓰던 나, 임신 후 퇴사한 지금, 아기를 재우고 육퇴 후 또 뭔가를 끄적이고 읽고 있는 나. 하기 싫은 걸 하지 않은 건, 하기 싫은 걸 하지 않는 데서 얻는 에너지로 조금이라도 하고 싶은 걸 하는 건,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느리지만 어쩌면 정답에 가까운, 세상의 기준에 한참 떨어진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산다는 것, 언뜻 듣기엔 이기적이고 철없는 말처럼 들리지만 내가 걷는 이 삶에도 꽤 용기가 필요했다. 어떤 세상의 기준에 부합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그러지 못한 것, 종종 움츠려 드는 것, 어떤 선에서 밀려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 이런 것들을 감당해야했다. 그럼에도, 내겐 하기 싫은 걸 하는 괴로움보다 불안이 쉬웠다.
간단했다.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를 포기하기. 나는 괴로움보다 차라리 불안을, 남들의 시선이나 그럴싸해보이는 삶보다 내 마음 평안을 선택했다.


하고싶은 것만 주로 하고, 하고싶은 것만 하며 살고싶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해야만 할 것 같은 일을 할 때도 많음을 안다. 내가 기를 쓰고 하고싶은 것만 하며 살아야지 해도 그렇게만 살기는 쉽지 않은 게 인생이라서, 더 힘을 주어 맘을 먹어도 될 것 같다. '하고싶은 것만 하고 살자.'

사람사는 모양은 다양하고 정답도 없다. 오직 자기 자신만의 정답이 있을 뿐. 난 아마 앞으로도 이렇게 살지 않을까, 남에게 피해주는 것이 아니라면.
인생은 짧으니까, 이따금 갑자기 죽을 수도 있는 삶을 상상할 때가 있으니까. 그러면 다시금 생각한다.
'내게는 이 삶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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