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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준 Apr 08. 2020

힘내라는 말,

진짜 위로하는 법, 진짜 위로받았던 때.




스물넷, 스물다섯 즈음이었을까. 그 즈음 볼 때마다 늘 내게 힘내라고 말해주시던 분이 한 분 있었다. 처음엔 별 생각이 없었다. 평소 여러 사람들을 세심히 잘 챙기고 다정하신 분이라 그냥 그러려니 했었다.
 그러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두 번 세 번 자꾸 듣다보니 기분이 조금 묘했다.
때로는 여러 명이 둘러앉은 모임자리에서도 유독 내 이름을 콕 집어 “ㅇㅇ야, 힘내~”라고 하시기도, 또 어느 날은 친구들과 건물 밖을 나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누가 내 이름을 불러 돌아보았는데 그 분이 내게 “ㅇㅇ 힘내!”라며 크게 말하던 적도 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힘내라는 말이 힘을 빠지게 할 수도 있다는 걸.


늘 삶이 쉽지는 않았다. 주변에 보면 크게 굴곡 없이 마음의 큰 요동 없이 사는 친구들도 분명 있었다. 무엇이 그들과 나 같은 사람의 삶을 다르게 하는 건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쉽게 갈 것도 돌아가기도 잘했고, 늘 겪어봐야 깨닫는 쪽이었다. 그런 내 삶이 버겁고 스스로 질릴 때도 있었다. 그치만 그냥 그게 나니까, 내 선택의 결과들을 하나하나 책임지며 뚜벅뚜벅 살아갈 뿐이었다. 한번도 그 분께 힘들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그 분은 자꾸 내게 힘을 내라고 하셨다.



 내가 진짜 힘든 사람이었기에 힘내라는 말이 싫었을 것이다. 힘들다, 말만 하지 않을 뿐 웃고 있어도 온 몸으로 힘든 기운이 느껴졌기에 그런 말을 자꾸 건네셨을 것이다.
사실 그 당시 너무 힘들어 애써 없는 힘, 내어 보려 아슬아슬하게 버텨내고 있었던건지도 모른다. 힘들면서도 내가 힘든 걸 다른 이들이 알아채는 게 싫어, 티내지 않으려고 부단히도 애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혼자서 힘겹게 힘을 내고 있던 때였다. 그리고 그런 내게 누군가는 쉽게, 자꾸만 더 힘을 내라고 했다.


‘저 사람은 나를 힘든 사람으로,

 알아서 판단해버렸구나, 저 사람 보기엔 내가 힘들어 보이는구나.’
내가 힘들다 토로하지도 않았던 상대가 내게 힘내라는 말을 자꾸만 할 때, 나는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보단 저런 생각이 먼저 들곤 했다.


내 마음이 그늘져 있어 좋은 뜻으로 한 가벼운 위로에도 그 마음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분명 나쁜 의도는 아니셨음을 안다. 그치만 세상 모든 좋은 의도로 한 말들이 다 상대방에게 가닿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살면서 진정으로 위로받았던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시간이 지나 오랜 세월이 흘러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힘이 날 정도로 위로되고 치유되던 기억은 아픈 마음 곁에 조용히 머물러 주는 기억들이었다. 같이 시간을 보내주던 이들, 너 힘들지, 아프지, 힘내, 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냥 말없이 느껴지던 마음들.


힘들 수 있으니까. 인생의 어느 한 시절 힘든 시간 있을 수도 있으니까. 나지 않는 힘, 굳이 내지 않으면서 충분히 힘들어하는 시간도 필요한 거니까. 그저 힘내라는 손쉬운 말로는 진심으로 마음이 움직였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진짜 위로받았던 때는, 진짜 누군가를 위로하는 법은,  때론 말이 아니라 진심어린 마음 그리고 곁을 내어주는 시간이었음을.


쉽게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지 않다. 쉽게 누군가의 상황을 판단하고 싶지 않다. 안쓰럽게, 안타깝게 보는 시선은 거두고 아프면 아픈대로, 힘들면 힘든대로, 있는 그대로  소중한 사람들을 그냥 바라봐주고 싶다. 마음으로 깊이 응원하고 진심으로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고민하고 싶다. 어설프고 손쉬운 위로가 오히려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단 걸 알기에, 더 고민하고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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