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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준 Apr 20. 2020

좋아하는 일이 밥벌이가 되지 않더라도

꿈, 적성, 진로, 직업으로 고민하고 있다면.




꽤 많은 시간, 꿈과 직업으로 방황한 시간이 있었다. 특히 이십대 때가 그랬다. 꿈이 없으면 왠지 불행한 것만 같았고 없는 꿈이라도 억지로 만들어야 할 것 같았던, 마음은 조급한 반면에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몰라 답답하게 시간은 흘러가던 때였다.




뭐라도 목표를 세워야겠다는 생각에 그 대상은 방송작가였다가 PD였다가 국어선생님이었다가... 마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 인위적으로 만들어가곤 했던 꿈들은 결국 신방과에 가고 나서야, 또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직접 해보고서야 결국 그 길의 끝에 가서야, 내 길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시행착오 혹은 경험이라 부를만한 시간들은 내게 비싼 기회비용을 치르게 했으며 더 많이 돌아가게 했지만 진짜 원하는 것, 내게 잘 맞는 것이 뭔지 조금은 더 알게 해주었다. 어쩌면 내가 진심으로 원한 것이 아닌, 멋져 보이고 탐났던 삶에 도전해봤기에 미련도 접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십대 때 내가 그렇게 방황했던 데엔 두 가지 생각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하나는 밥벌이와 좋아하는 것(또는 적성, 꿈)을 일치시켜야한다는 생각.
또 다른 하나는 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또 그것을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을 얼마만큼 존중하며 살고 있을까.




사실 그때도 책과 글이 좋았다. 도서관에 가면 마음이 편했다. 오래된 나무 책장 사이 수많은 소설책들 속을 걸을 때, 거긴 학교 안에서 가장 조용한 공간임에도 이상하게 쓸쓸하지 않았다. 때론 창밖의 오후 햇살과 연둣잎 나무, 푸른 하늘도 책 속 페이지 한켠에 예쁜 그림자가 되어주곤 했다.


 읽으면 쓰고 싶어졌다. 주로 나의 마음을 토로하는 일기를 많이 썼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이야기, 그렇지만 털어내고픈 이야기, 어릴 때부터 써 온 나의 다이어리는 그런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었다.


<작은 아씨들> 중, 글쓰기에 매진하는 조.



 좋아하는 것이 있었다.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것들로 먹고 살 용기와 자신은 없다 재빨리 단정 짓고 그들을 마음 안에 작게, 아주 작게 만들어 놓고 살았던 것 같다. 그것들을 내 직업으로 삼지는 않을 것이기에, 그걸로 돈을 벌진 않을 것이기에. 밥벌이와 좋아하는 것이 일치되지 않았으므로 좋아하는 것은 뒤로, 돈 버는 일에, 돈 버는 것에 도움 되는 일에 더 신경을 써야한다는 마음으로, 살았던 것 같다.



이제는 안다. 좋아하는 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 직업이 천직인 사람, 하고 있는 일을 진정으로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 그런 이들은 극히 소수의 운 좋은 사람들이란 걸.


내게 비록 그런 행운은 없지만 적어도 좋아하는 것이 뭔지를 아는 행운은 있다.
 다른 어떤 직업이나 조건과 연결 짓지 않고, 했을 때 즐겁고, 힘들고 귀찮아도, 그래도 끝내.. 해내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졸업 후 책 안의 텍스트가 아닌 책등과 판권지를 주로 보고 또 책으로 남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내 것’을 쓰고픈 갈증에 목말라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책 근처에, 글쓰기 근처에 난 늘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도 참 소중했다. 좋아하는 책 안에 둘러싸여 일하는 것도 실은 참 좋았다.


 이런 마음들을 알게 되기까지 나는 꽤 많이 돌아왔다.


<카모메 식당>이라는 영화를 보면 한 친구가 주인공 사치에에게 원하는 일을 하고 사는 게 부럽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치에는 대답한다. 그렇지 않다고, 자신은 단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을 뿐이라고.

나 또한 이제는 최고로 좋아하는 일이 내 직업이 되지 않더라도 어릴 때처럼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그러니 나의 ‘파랑새’를 계속 찾아야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더불어 꿈이란 것이 꼭 있어야한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다. 꿈은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나지는’ 거였다. 그 만남엔 ‘경험’과 ‘시행착오’라는 노력이 필요할 뿐이었다. 또 조금 더 돌아가지 않기 위해 한가지 더 필요한 게 있다면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질 용기 정도가 될까.



 몇 년 후 다시 일터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주어진 나의 일을 열심히 하고 저녁엔 좋아하는 글도 쓰고 책도 읽는 삶이라면.
최고로 좋아하는 것이 내 밥벌이는 아니더라도 하루가 그런 그림이라면 나는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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