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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준 Aug 22. 2022

지금을 살고 싶어

아기가 어린이집 하원 후 잠들 때까지의 오후 시간과 등원 후 하원할 때까지의 낮시간은 아주 다르게 흐른다. 같은 시간 개념이 맞나싶을만큼. 아기와 하원 후 놀이터에서 1~2시간, 씻기고 먹이는 저녁 시간, 또 잠들기 전 책읽어주거나 몸으로 놀아주는 밤시간, 그 시간들은 어쩜 그리 느리게 흐르는 걸까. 반면 아기 등원한 후 그 여섯 시간은 그냥 말그대로 순삭이다. 그 시간에 집안일과 반찬만들기를 하더라도 육아보다는 수월하게 느껴진다. 최소 세돌은 넘기고 어린이집 보낼거라며 남편과 투닥거리던 나는 어디로 갔나. 이 낮시간, 너무 달콤하다. 나는 마치 매일을 아기가 잠드는 육퇴의 시간을, 어린이집 가는 등원 시간만 기다리는 사람인 것만 같다. 점심을 먹고 1~2시 쯤 되면 그때부터 벌써 초조함이 밀려온다. 어쩔 수 없이 전장에 나가는 전사의 마음이 되어.

평일 낮의 여섯 시간, 그리고 아기가 잠드는 10시 즈음부터 내가 잠들기 전까지의 2~3시간 가량, 그 달콤하고 귀한 시간을 나는 어떻게 보내나. 이것저것 좋아하는 것들과 가사에 필요한 해야하는 일들을 하며 주로 보내곤한다. 드러누워 뒹굴거려도 되고 맘먹고 밀린 집안일을 해도 되고 하고싶은 공부를 해도 되는, 뭘해도 상관없을 귀한 자유의 시간.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 시간, 충만하게 행복하게 보내도 모자랄 그 시간을 늘 얼마간 '초조한 행복'의 상태로 보내는 것 같다. 밥을 먹어도 '밥만' 먹기엔 놀리는 귀와 눈이 아까워 영상이나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먹으며, 무의식적으로 시간을 아끼려는지 식사를 또 너무 오래 하지는 않으려 하는 것 같다. 청소를 해도 비질과 걸레질 하는 손길엔 늘 조금은 조급함이 있다. 얼른 끝내놓고 이거 해야지, 저거해야지 하면서. 늘 무언가에 쫓기는 것 같은 초조함, 조급함... 그렇게 자유의 시간이 있어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본다. 

아이가 미끄럼을 타고, 시소를 탈 때 감탄을 하고 눈을 맞추며 반응을 해줌과 동시에 내 안에서 매일같이 느끼는 어떤 지루함. '이 놀이터에서 내가 재밌을만한 건 없지, 그치만 아기가 이리도 좋아하니까.'. 아기 하원 전까지 까페에 들려 책을 읽어도 또다시 초조한 마음이 되어 눈은 글자를 보는데 왠지 읽히지 않을 때가 많은 날들. 무언가 꾸역꾸역 살아내는 태도 같은 게 내 안에 얕게 깔려 있는 것 같다.   

내 시간이 생기면 그 시간이 너무 귀하고 소중해서 무조건 알차게 보내야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마음은 온전히 좀 쉬어야지 싶다가도 얼마간이라도 가만히 쉬는 게 어려워 이거하려 저거하려 하다 실상은 딱히 알차게 보내지도 그렇다고 제대로 쉰 것도, 그렇게 이도 저도 아니게 된 날들이 많았다. 마음이 왜이리 나중, 다음, 미래에 가 있는 걸까. 다음 것, 나중의 것, 나중의 시간을 빌려와 현재를 보내는 가불인생. 내게 '현재'는 어디 있나. 지금의 시간을 지금 쓰면 되고, 나중의 시간은 나중에 쓰면 될텐데, 지금의 마음을 지금 느끼고, 나중의 마음은 나중에 느끼면 될텐데, 나는 왜 이리 자꾸 당겨서 생각하고 행동하려 하고 '지금, 여기'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나. 

그만큼 어려운 거겠지. 어려운 만큼 가치 있겠지. 간절하게 바란다. 밥을 먹을 땐 밥을 먹고, 청소를 할 땐 청소를 하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느끼고, 아이와 눈을 맞출 땐 그 행복만 오롯이 느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싶다고.

아기 하원 1시간 전, 오늘은 너와의 시간, 아니 나의 소중한 인생, 하루, 오롯이 순간에 집중해볼게. 어서와 우리 아가, 그리고 나의 청춘아. 

22.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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