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처럼 으깨어져 곤죽이 된 나에게 다가온

이거야말로 나의 그림자를 자극하는 분이시네

by 이아

https://youtu.be/pY43U1NhvMU

Enjoy the silence - Carla Bruni

어느 늦가을이었던가? 한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을 때였던 것 같다. 사람이 이렇게도 두부처럼 으깨어져 곤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경험했던 즈음이었던 것 같다. 두부처럼 뭉개어진 나를 누군가가 카페로 불러내었고, 그 자리가 몹시 불편했지만, 그냥 뭉개고 앉아있었을 즈음에 이 음악이 흘러나왔다.


어디서 들었던 곡인데, 도대체 기억이 안나는 곡인데, 뭐더라? 한 창 우울의 바닥을 헤매고 있어서 머리도 안 돌아가고, 집으로 몸을 질질 끌고 돌아와서 기억을 더듬더듬.. 아~ 맞다. Tori Amos였는데, 토리 언니가 Depeche Mode의 Enjoy the silence를 커버했는데, 카페에서 들었던 목소리는 토리가 아닌 발음이 좀 더 이국적인 느낌이었다. 마지막 음을 소리 낼 때 특이한 바이브레이션도 느껴지고, 궁금했다. 누구일까?


영어를 모국어로 말하지 않는 사람이 말하는 이국적인 느낌, 검색하여 보니 무려 칼라 부르니, 프랑스 샹송 가수이자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와 결혼하여 지금껏 별 잡음 없이 잘 살고 있는 모델. 와~ 이거야말로 나의 그림자가 무지하게 자극되는 분이시네!


지금 같으면 뭐, 그깟 그림자.. 하고 일상의 부잡스러움으로 곧 잊어버렸을 수도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상당히 취약했던 때라서 더 많이 이 분을 부러워했던 것 같다. 이런 삶은 과연 어떤 삶일까? 노래도 잘해, 얼굴도 예뻐, 게다가 모델이라니, 게다가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까지.. 모든 걸 가진 이 삶을 내가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노래는 상당히 음울하고 냉소적인데 뭔가 가슴을 후벼 파는 느낌으로 한동안 이 노래를 들었다. 노래 가사가 내 마음을 상당히 반영해주고 있었다. 언어를 잃어버리고 싶었던 때였으니까.


지금도 나는 상담을 하고 돌아오면 침묵을 즐기고 싶어 진다. 때로는 침묵, 내담자와 침묵을 함께하고 싶다. 음악치료나 미술치료, 춤 치료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글을 쓰는 일은 침묵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직업으로 하다 보면 철저한 침묵 속에서 글을 쓰고 싶어 진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깊은 우울의 늪에서 인지 기능도 떨어지고, 언어 기능도 떨어지던 상태에서 회복되는 과정에서 원래 우울하기 전보다 더 선명하게 들리고, 보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인간의 감각의 세계란 3차원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없는 4차원의 무엇인가가 관여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카페에서, 함께 만났던 두 명의 사람, 그리고 그 카페, 그리고 이 노래,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 카페는 아직 거기에 있을까?


#enjoy the silence

#carla br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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