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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연 Jun 29. 2023

좋은 소비

이달의 소비



이 작은 버섯 조명은 자그마치 4만원이다. 사진에서도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여자 주먹만한 아주 작은 사이즈다. 요즘은 다 디자인값, 감성값이라고는 한들, 비싼 가격에 한번 더 놀랐지만 딱 한번의 사용으로 단번에 이달의 좋은 소비로 선정되었다. 그만큼 마음에 아주 쏙 든다.



해가 일찍 뜨고 늦게 지는 여름이라 아침만의 고요함을 느끼려면 해가 창문으로 쨍하게 들어오기 전에 일어나야 한다. 요즘은 흐린 날씨라서 조금 늦게 일어나도 괜찮지만. 버섯 조명과 아이패드를 들고 거실 테이블에 앉아 불은 끄고 조명은 킨다. 그럼 거실이 나만의 작은 책바로 변신한다. 카페라기엔 어딘가 적적한 무드가 있고 바라기엔 아침 대낮이라 술이 있는게 아니지만 아무리봐도 책바같은 분위기가 연출된다. 작고 귀여운 버섯 조명의 조도나 힘이 생각보다 더 강력해서 가격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아이패드 화면에 손가락을 대고 슥슥 넘기면서 책을 읽는 그 짧은 시간이 하루를 더할나위없이 근사하게 시작해준다.



어제는 좋은 기회로 시향 클래스를 들었다. 최근 클래스 가격을 인상했다는 대표님의 말을 들으며 조향도 아니고 시향 클래스인데 조금 비싼 감이 있네, 속으로 생각하며 시작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났을 땐 내가 누군가가 다년간 갈고 닦은 전문성으로 촘촘하게 만든 2시간반 가량의 과정을 이 가격에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했다. 향수 시장과 브랜드들의 재밌는 이야기들을 개괄하며 향수의 오랜 역사를 자유자재로 종횡무진하는 대표님을 보며 단순히 향수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누군가는 이렇게도 살아가는구나, 어쩌다 이런 취향을 갖게 됐을까, 하나를 미친듯이 좋아한다는건 정말 멋지고 매력적이다, 등등 평소에는 들지 않는 생각의 조각들이 스파크처럼 머릿 속에서 튀어올라왔다. 향수에 대해서도 평소에 사치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좋아하는 옷 브랜드, 식당 등 취향을 나타낼 수 있는 것들 중 어찌보면 가장 광활한 사막에서 진주를 찾는 것같은 영역이다. 수만가지 종류의 향 중 아무리 친한 친구와도, 연인과도, 가족과도 겹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향수가 어려우면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본업은 디자이너인 사장님이 아내분과 이런 것을 기획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사람은 정말 다양하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멋지게 살아가는구나. 분명 들인 시간과 돈 그 이상의 좋은 자극을 얻은 시간이었다.



가격으로 재단할 수 없는, 그 가격 훨씬 그 이상의 값어치를 하는 소비들이 있다. 물건이라면 오랫동안 쓸 만한, 경험이라면 두고 두고 기억하거나 혹은 그 순간에 감각이 살아나는 몰입을 하는. 좋은 소비를 차곡차곡 쌓다보면 그것들로 둘러싸인 내 일상도 얼마나 충만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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