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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연 Feb 17. 2023

사장님과 함께 카페 오픈



밤새 충전해둔 아이패드와 카메라를 소중하게 백팩에 담아 아침부터 집을 나섰다. 오전 일과는 출사를 가장한 엄마의 떡 심부름. 이런 작고 하찮은 것이 하루 첫 일과라는 사실에 자유인임을 한번 더 만끽한다.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떡 사러 짐싸고 결연하게 나가는 내 모습이 웃기기는 하다만, 그 핑계로 사랑해 마지않는 나의 학교도 오랜만에 보고, 사진촬영 연습도 실컷 할 계획으로 서둘러 집을 나섰다. 익숙한 지하철역에 내려 매일 같이 올랐던 계단을 걸어나와보니 날씨가 심상치 않다. 먹구름이 잔뜩 껴서 비오려나, 하고 있는데 눈발까지 날린다. 예쁜 학교가 괜히 쓸쓸하고 황량하게만 보인다. 방학 중이라 학생들은 보이지 않고, 지나가는 행인 몇명과 비둘기들이 전부. 아직 이런 날씨에서도 멋진 사진을 척척 찍어내는 실력이 아니라 사진은 몇장 못 찍었다. 아쉽지만 갓 쪄서 따끈한 떡들이 등을 뎁혀주는 백팩을 매고 미리 생각해둔 카페로 걸음을 옮겼다.





애초에 너무 서둘러 집에서 나온 탓인지, 카페가 연 지 1분도 지나지 않아 딱 맞춰 들어갔다. 

딸랑, 하는 종소리를 청아하게 울리며 조심스럽게 들어가 쭈뼛쭈뼛하게 “오픈하셨나요?” 여쭤본 뒤 가장 좋은 창가자리로 자리를 잡았다. 찬찬히 메뉴를 보다가 고른 아이스 살구티. 추워서 얼른 실내로 들어왔지만 상큼한 살구를 따뜻하게 먹는건 왠지 재료를 죽이는 느낌이다. “살구티 아이스로 한 잔 주세요.” 카페를 여신지 1주년이라 기념으로 오시는 분들께 연필 선물을 하고 있다며, 하나 골라가시라고 너무 친절하게도 너무 딱딱하지도 않게 무심하게 말하시곤, 후다닥 내 음료수를 만들어주신 뒤, 사장님은 다시 오픈 준비에 돌입하셨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보니 작년 2월 4일에 오픈하신듯하다. 나는 이 카페 아예 처음 와보는데, 뭔가 단골들에게나 주셔야할 작은 선물을 받으니 연필 한 자루인데도 괜히 다시 와드려야겠다고 다짐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눈발은 짧게 날리다 그치고, 먹구름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중인지 중간 중간에 햇빛이 자리를 살포시 덮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잔잔한 배경 음악만 흘러나오는 고요한 공간에서 나는 내 할 일을, 사장님은 사장님이 해야할 일을 각자 조용히 했다. 서로 전혀 신경쓰지 않고 같은 공간에서 각자 바삐 손을 움직이고 있으니 마치 이곳을 늘상 아침마다 오는 단골 손님이 된 것만 같은 익숙함, 기시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메뉴를 시키고 그렇게 조용히 머물다 가는 나. 그런 나를 크게 아는 체도, 구태여 개인적인 대화를 거는 것도 없이 그저 말없이 매번 같은 메뉴를 정성껏 만들어 내어주시는 사장님. 지루할만큼 평화로워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 

타닥타닥 내 타자 소리에 맞춰 사장님도 착착착 뭔가를 썰으신다. 틀어놓은 노래에 각자 소리를 하나씩 보태어 얹듯이 타닥타닥 착착착 타닥타닥 샥샥샥. 야채 매운내가 나는 것도 같다. 그러다 기름에 야채 볶는 고소한 냄새가 풍긴다. 이 냄새는 양파 볶는 냄새인데. 파스타 소스 넣기 전에 재료부터 먼저 볶을 때 딱 그 냄새다. 여기 식사 메뉴도 파나? 아, 샌드위치랑 스프도 파시는구나. 미리 재료를 볶아놓는건가보다. 아니면 사장님 점심용으로 만들고 계시나? 맛있는 냄새를 맡으며 타자를 치고 있으니 부엌에서 저녁 준비하던 엄마 옆에서 식탁에 앉아 몸을 배배 꼬며 숙제를 하던 초등학교 때의 기억도 스쳐지나간다. 갑자기 오븐이 삐비빅 거리는 소리가 난다. 이번엔 빵을 구울려고 오븐을 예열하셨나보군. 카페가 열자마자 첫 손님으로 들어가는 경험이 익숙지 않아, 카페 사장님은 이렇게 하루를 여시는나,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 고요함은 이렇구나, 내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이 시간까지 사장님은 혼자 손님을 기다리고 계셨겠구나, 이 적막함 속에서 그럴 땐 무슨 생각을 하실까, 보통 언제 첫 손님이 들어오지, 그러다 하루에 손님이 거의 없다시피 한 날엔 어떤 마음으로 뒷정리를 하실까, 등의 잡다하고 오지랖 넓은 생각들이 차례대로 머리를 빠르게 지나갔다. 물소리가 나면서 뭔가를 씻으신다. 잔 부딪히는 가벼운 소리가 거슬리지 않게 난다. 나는 창밖을 잠깐 보다가 다시 키보드를 두들기고, 살구티 한모금 이 시리게 머금었다가 다시 화면에 집중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 감자 스프 끓는 구수한 향이 솔솔 맴돈다. 냄비 바닥을 긁지 않으면서 묵직한 스프를 천천히 저으시는 소리가 뭉툭하게 난다. 사장님이 나의 뜨거운 시선을 부담스러워하실까봐 차마 대놓고 관찰하진 못하고, 눈과 손을 내 할 일에 고정한 채 소리를 수집하는 음향 감독 마냥 귀가 쫑긋 세웠다. 혼자 이게 무슨 소리인지 오감을 모두 소리에 집중해서 상상하다 가끔씩 컨닝하듯이 힐긋힐긋 쳐다도 보면서. 딸랑, 하고 카페가 오픈한지 1시간이 지나 두번째 손님이 들어왔다. 아, 다행이다. 사장도 아니면서 괜히 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요란한 커피원두 가는 소리가 나더니 두번째 손님의 드립 커피를 뽀글뽀글 내리신다. 얼마 안돼 손님 두분이 나란히 들어오신다. 소리를 수집하는 귀를 이제 슬슬 닫아야겠다. 모든 소리가 기분 좋은 백색소음으로 한 단계씩 음량이 낮춰진다. 할 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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