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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연 Sep 05. 2022

새로운 취미

제빵을 좋아하는 이유


  나는 종종 빵을 굽는다. 제빵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그저 빵이 좋아서였다. 빵, 떡, 케이크, 구움 과자 등등 식사 외 디저트까지도 엄청나게 좋아하는 나다. 빵돌이 아빠 빵순이 엄마 딸이니, 집안 내력일 수도 있겠다. 워낙 좋아하다 보니 문득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다 보니 꼭 필요하다고 느낀 최소한의 장비들을 갖추고 유튜브를 스승 삼아 이것저것 요리조리 만들어보곤 했다. 성공할 때도 있었고, 때론 망작이 나오기도 했다. 방방곡곡 맛있다는 빵집 빵들에 길들여진 입맛 때문인지, 한껏 높아진 눈에는 성에 찰 리가 없는 망작일 때가 더 많았지만. 성공적이었던 몇 가지들을 잠시 나열해보자면, 얼그레이 마들렌, 녹차 파운드케이크, 황치즈 파운드케이크. 그리고 망작이었던 것 중 최고는 단연 빅토리아 케이크. 케이크 시트는 돌덩이 마냥 딱딱했고, 사이에 크림을 바르기 위해 반으로 가를 때 수평을 못 맞춰서 한껏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 케이크가 되어버렸다. 생일 케이크로 만든 케이크였어서 생일 주인공은 괜찮다고 했지만 내가 더 속상했던 기억이 있다. 제빵은 대체로 시간과 손, 그리고 돈까지 꽤 드는 취미활동이다. 그래서 기대한 만큼의 결과가 아닐 때 드는 그 허망함이란.. 다신 안 하겠다고 선언하고 또다시 하게 되는 마성의 취미이기도 하다. 공들인 무언가가 실패했을 때 잠깐 울적해하다 결국 또 재도전을 하는 나를 보며 제빵도 인생수업의 일종이 아닐까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게 된다(ㅋㅋ). 어쩌다 한번 운 좋게 올바른 반죽 과정, 딱 맞는 오븐의 온도, 적절한 시간 조절의 삼박자가 딱 맞아 맛있고 예쁜 빵이 탄생하면 마치 가슴으로 낳은 자식처럼 이리저리 돌려가며 사진을 찍고 한동안은 뿌듯함에 잠긴다. 그 짜릿한 성공의 맛에 실패를 해도 또다시 계량기를 집어 드는 것 같다. 이 정도면 제빵을 인생에 빗대는 거창한 비유도 어느 정도 가능하지 않나?



  최근엔 좀 더 제대로 배워보고자, 그리고 집에서 제빵 할 때 실패 확률을 조금이나마 줄여보고자 제빵 클래스를 듣기 시작했다. 나의 가볍디 가벼운 지갑 사정을 생각하면 비싼 취미지만, 클래스를 다 듣고 나면 여러 메뉴를 섭렵한 어엿한 취미 제빵사로 거듭나 있을 나를 상상하며 끊었다. 가장 최근에 들은 클래스는 메이플 단호박 브리오슈. 버터가 많이 들어가 리치하고 부드러운 빵이다. 브리오슈는 생각보다 만드는 과정이 많아서 손이 많이 가는 빵이라고 하는데, 만들면서 '이런 빵을 누군가에게 선물하려고 만들면 그건 보통 애정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빵은 보통 1인분만 나오는 게 아니라서 나눠먹기도 하고, 선물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더더욱 만들면서 먹어줄 대상을 생각하며 '좋아하려나? 좋아하겠지?'생각하게 된다. 하고 나면 나만 좋고 끝나버리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정성을 담아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이 제빵의 또 다른 매력인 것 같다. 정성을 들여 만든 따끈따끈한 빵을 따뜻한 차 한잔과 곁들여 옆 사람들과 같이 먹는 그 순간의 행복이 그 모든 시간, 손, 돈을 투자하는 이유 같다.



  그날 만든 단호박 브리오슈는 예쁜 접시를 꺼내와 담고, 좋아하는 브랜드의 차를 타서 가족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주말 아침으로 먹었다. 그냥 빵을 먹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뭔가 나에게 아주 좋은 것을 선물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주 넉넉하고 풍요로운 시간과 충만함을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것 같았다. 제빵을 하며 느끼는 희로애락과 마침내 탄생했을 때의 기쁨, 누군가가 맛있게 먹어줄 상상을 하며 만드는 시간 그리고 다 만든 빵을 먹는 동안 만끽하는 여유와 충만함까지! 내가 제빵을 좋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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