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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주황 Sep 01. 2021

파란 컨테이너

가을




오래전에 머물렀던 곳에 다시 찾아오는 것은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한다. 이지수는 떼인 돈을 받아주겠다는 광고를 걸고 달리는 버스가 정문에서 나오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복잡한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어울리지 않는 컨테이너가 정문 가까이에 놓여있다. 갈라지고 오래된 차도와는 상반되게 파란색 컨테이너는 광이 돌았다. 이지수는 이끌리듯이 컨테이너 쪽으로 걸어간다. 발바닥으로 안내 표시된 곳에 서서 한글과 중국어로 적혀있는 내용을 읽는다. 컨테이너는 내부가 훤히 보이는 양개형 문이 양쪽에 설치되어 있다. 이지수는 무의식 중에 가까이 다가가 문을 밀어 본다. 가을이었지만 아침은 무척 추웠고 내부는 따뜻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나 보다. 열리지 않는 문 가까이에 얼굴을 대고 내부를 둘러본다. 카메라와 모니터, 작은 책상과 의자로 조촐하게 구성되어있는 내부 집기들을 천천히 눈으로 익힌다.

너무 일찍 온 것은 아닌가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본다. 멀지 않은 곳에 경비실이 있지만, 갑자기 찾아가서 처음 오는 사람이 문을 열어 달라고 하는 것이 통할 것 같지는 않다. 학생 한 명이 경비실을 지나서 컨터에너 쪽으로 걸어온다.


안녕하세요. 혹시 검역 담당 일하러 오셨나요?

네. 담당자가 여기로 오면 된다고만 했는데 닫혀 있어서요.

제가 열쇠를 갖고 왔어요. 아침에 방역담당이라고 말하고 경비실에서 찾아오면 돼요. 들어가서 설명드릴게요.


능숙하게 문을 열고 내부의 온풍기 스위치를 켜는 것을 이지수는 그저 구경한다. 경비실에서 찾아온 상자에는 월요일이라고 적힌 종이 띠지가 있었고 체온계와 컨테이너 열쇠, 노란색 고무줄 여러 개가 있다.


저는 김윤경이라고 하고요. 아침에는 출근 차량이 많아서 정신이 없으실 수도 있어요. 한 조가 더 올 텐데. 그렇게 같이 출근 시간을 맡고 출근 시간 지나면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일하고 조 별로 30분 휴식시간이 있어요. 단체 톡에 근무 조표 받으셨죠?

네, 봤어요. 저는 이지수라고 합니다. 이해가 잘 안 가서 그러는데 어떤 일인지 다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이 검역소는 학교로 들어오는 자동차를 검역하는 곳이고요. 차에 탄 사람들의 체온을 재고, 학교 홈페이지에서 전자 문진표를 통해 인증하고 있는 QR코드를 확인하고 띠지를 나눠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말로 설명하면 여려운데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에요.


김윤경은 이지수에게 스마트폰으로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QR 코드를 받는 것을 보여준다. 전화번호와 지역을 입력하고 간단한 문진표를 작성한 후에 이지수도  QR 코드를 받는다. 그러고 보니 컨테이너에 붙여 있는 안내문의 내용과 김윤경의 말이 같다. 김윤경은 학교에 출근하는 사람들은 이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데 반해서 가끔 학교 내부에 은행이나 다른 업무를 보러 오는 사람들의 불만 때문에 왕왕 힘든 일이 일어나고는 한다고 말하면서 표정이 조금 어두워진다.


걱정 마세요. 오늘은 첫날이니까. 제가 많이 도와드릴게요.

윤경 씨 고마워요.

다른 조도 같이 시작하니까 30분 정도만 바쁘면 또 괜찮을 거예요. 만약에 QR 코드를 이해시켜야 하는데 어려움이 생기거나 폰이 고장 났다고 하면 종이 문진표를 주시면 돼요. 학교 측에서는 되도록이면 쓰지 말라고 하는데… 필요할 때가 생기더라고요.


김윤경의 말대로 최소 인력만 학교로 출근하는데도 출근 시간에는 차들이 많이 들어왔다. 대학생들은 집에서 강의를 들었고 실습이 필요한 학과와 대학원생을 제외하고는 학교에 학생은 거의 없었다. 이지수는 새로운 일에 적응하는 것에 활력을 느꼈다. 집에 있는 동안에는 의지가 생기는 날이 줄어들었다. 다짐은 기억나지 않았고 억울한 감정이 우물에서 차 오르는 듯했다. 팬데믹의 위험으로 나갈 일은 더 적어졌고 산책하는 일도 줄어들면서 선택한 것이 아르바이트를 찾는 것이었다. 시작해 보니 생각보다 더 좋다고 이지수는 느꼈다. 반복되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곳으로 다시 소속되어야 하는 압박을 유예시킬 수 있어서 무엇보다 안전함을 느꼈다.

김윤경은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자 형광색 조끼를 벗고 이지수에게 손짓을 한다. 쉬는 시간에 머무르는 관사로 가거나 아니면 현재 학교 안에 운영하는 식당 위치를 설명해 준다.


운동장 뒤 쪽에 있는 학식은 현재 운영하지 않고요. 뒤쪽으로 좀 더 걸어가시면 작은 편의점 하고 샌드위치 파는 가게가 나오긴 하는데 생각보다 학교 관계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점심시간이 빠듯할 수 있어요.

혹시 추천해 준다면 어디가 좋을까요?

저는 사실 거의 도시락을 싸와서. 추천한다면 가까운 곳으로요. 이쪽 우체국 옆에 식당이 가격도 싸고 맛도 그만하면 괜찮아요.  저는 주로 관사에서 먹거나  날씨 좋은 날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조용한 곳에서 느긋하게 먹거든요.


김윤경은 도시락을 먹는다면서 먼저 앞으로 나아갔고 이지수는 식당으로 들어와 주문한 라면 국물을 먹는다. 외관은 거의 변한 것이 없는데 내부는 이지수가 대학을 다닐 때와는 다른 구조로 되어있다. 주로 나무로 되어있던 식당이 대부분 스테인리스로 바뀌어 있었다. 바뀌지 않은  있다면 라면이 담겨 있는 양철 냄비 정도라고. 어쩌면 바뀌었지만 본인이 알아보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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