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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주황 Sep 14. 2021

손 끝이 회색인 갈색 장갑

가을



정제된 것 사이에서는 성취할 수 없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서 가는 동안 이지수는 질문하지 않았다. 왜 이 길에 서야 하는지, 왜  걸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멈추고 싶지 않았고 만들어진 시선의 타깃이 되고 싶지 않았다.

열린 컨테이너 문 사이로 새로운 조 사람들과 김윤경과 인사하는 모습을 멀리서 이지수가 본다. 김윤경이 상대에게 말하는 것이 이지수가 있는 곳까지 뭉개져 들려온다. 좋지 않은 예감에 이지수는 빠른 걸음으로 컨테이너 쪽으로 걸어간다. 거의 도착했을 때 이지수는 분주하게 준비하는 김윤경의 표정부터 살핀다. 역시 어딘가 불편한 감정이 석인 기류가 감지된다. 김윤경은 이지수의 도착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는 일에 집중하고 이와는 상반되게 이 번주부터 같이 일하게 될 조 사람들은 반갑게 이지수에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네. 안녕하세요.

지수 씨? 나는 강진경 36살이고 이쪽은 33살 김인수.

아, 네 이지수라고 합니다.

내가 한 살 더 많은 걸로 아는데 맞죠? 편하게 언니라고 불러요. 우리 잘 지내봐요.


김윤경이 이지수의 체온계와 핫팩을 한쪽에 정리해 두고 이지수를 향해서 오늘은 우리 조가 먼저 앞 쪽으로 나가는 날이라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이지수는 형광색 조끼를 입고 핫팩과 체온계를 주머니에 넣으면서 밖으로 나온다. 어쩐지 김윤경은 화가 난 것 같다. 컨테이너에 나오면서 이지수는 아직 준비 중인 두 사람이 김윤경을 보면서 계속해서 무슨 말을 주고받는 것을 본다. 컨테이너 안의 사람들보다 이지수가 신경 쓰이는 것은 아침의 날씨다. 이지수는 일교차가 큰 날씨에 단단히 무장을 하고 온 반면에 김윤경은 얇은 겉옷을 입고 있다.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서 김윤경에게 주고 싶은 마음을 이지수가 고민한다.


차들은 어제와 다르지 않게 들어오고 창문을 내리고 폰을 내민다. 두 개의 차선으로 되어있는 자동차 검역소는 길게 두줄로 늘어서 있다. 기다리는 자동차들은 앞 차가 검역을 끝내기를 기다린다.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은 오래 걸려서 뒤에 있는 차들이 불만을 토로하기도 또 당사자가 불편을 말하기도 한다. 이지수의 차선은 규칙적으로 차들이 학교 정문으로 들어서고 있다. 오늘 같이 일하기 시작한 새로 온 사람들은 늘어선 자동차 대기줄을 안내한다. 규칙적으로 짧아지고 있는 이지수의 줄에 비해 김윤경은 일 분이 넘도록 멈춰있다. 대기줄을 안내하는 사람들은 이지수 쪽으로 유도하고 멈춰있는 차 뒤에 있는 차가 경적을 울린다. 이지수는 경적을 울린 차로 걸어간다.


제가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앱으로 문진 진행하신 것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네. 어? 아까 다 했는데 잠시만요 새로고침 하면 돼요.

확인되셨습니다. 많이 바쁘신가요?

학교에 중요한 손님이 오시기로 했어요. 약속시간이 거의. 네 바빠요.

제가 옆 쪽에 라바콘 빼 드릴 테니까 이 쪽 차선으로 들어가시겠어요?


불만과 불편은 검역소를 담당하는 사람이 온전히 감내해야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교수가 입구로 들어간 뒤에 김윤경도 평소의 속도를 되찾았고 바쁜 아침시간에만 시행하는 차량 안내도 무리 없이 지나갔다. 출근시간이 지나고는 두 차선이 밀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신호가 바뀔 때 들어오는 차들은 다음 신호가 되기 전에 모두 정문을 지나간다. 한산한 시간을 틈타 이지수가 김윤경에게 다가간다.



아까는 교수분이 약속 시각에 늦어서 경적을 울린 거래요.

아… 네.

화가 나거나 불쾌해 보이지는 않았어요. 조금 급하다는 느낌이었어요. 괜찮아요?

집중이 잘 안되네요.


김윤경의 얼굴이 좋지 않았다. 표정은 굳고 기운이 없는 것이 눈을 깜빡일 때마다 드러났다. 이지수는 주머니 속에 갈색 장갑을 떠올리면서 김윤경에게 컨테이너에서 쉬는  어떠냐고 말했지만 김윤경은   쉬는 시간이니 그때 쉬겠다며 조금 인상을 찌푸렸다. 김윤경에게 장갑을 빌려주기에는 바깥 온도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이지수는 김윤경의 불편함이 경적을 울린 사람이나 자신을 향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걸리는 것이 있다면 분리수거를 하는 것에 대해서 아직도 김윤경은 아무것도 묻지도 말하지도 않았고 이지수 자신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오늘 같이 추운 아침에 김윤경에게 장갑을 건네면서 넌지시 분리수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볼수도 있겠다고 이지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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