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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주황 Sep 23. 2021

노란 유치원 버스

봄, 여름, 가을




이지수는 눈물범벅인 채로 말들을 엄마품에서 쏟아냈었다. 말하고 싶었어. 정말 잘하고 있었다고 이미  자릴 뛰어 거쳐간 친구들이 보는 중에도 나는 기를 쓰고 기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고.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고 싶었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서야   있는 일이었다.

그러고서 다시 어딘가로 끌려가는것이 시작되었다. 이지수가 대학에서 학점에 매달리고 방학  아르바이트에 끌려 다닐 때에도 이미 먼저 지나간 친구들은 다른 계획을 갖고 사는지 알지 못했다. 손꼽아 직장에 들어가 돈을 벌기 시작하고서야 작은 오피스텔을 간신히 월세로 얻고서야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생각할  있었다. 경제에 관련된 교양을 꾸준히 들었지만 막상 손에 쥐어진 것을 보기 전까지 이지수는 깨닫지 못했다. 언제나 가난하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달마다 밀리지 않고 내는 월세가 누군가에게는 투자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는 것이 이지수를 힘들게 했다.


차갑게만 생각했던 이곳으로 다시 온 이유를 생각해 보지만 적당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빌라 지하에 살다 안전한 오피스텔로 들어가는 것이 이지수에게 더 나은 곳으로 가고 있다는 위안을 줬을 때가 잠시 었지만 분명 있었다. 그렇게 지하철 계단을 오르고 내리 고를 반복하는 이지수는 지쳐갔다.

오피스텔 월세를 계약하는 날 중개사 그리고 집주인과 한번 더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확인했고 이지수는 그제야 한 참 어린 사람의 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사무실에 와서 이지수와 마주 앉은 것은 건 집주인의 가족이었다. 그 사람은 이지수가 살기로 한 오피스텔 주변으로 여러 개의 부동산을 가족들 명의로 가지고 있었고 그중 하나에 이지수가 세 들어 살게 되었다. 계약한 날은 아무 생각 없이 이사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 이후로 기억하지 않고 지내다가 월세와 카드값이 번갈아 나가는 통장을 보면서 하루는 배부른 사람들의 배를 채워주는 것이 가난한 자신이라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할머니처럼 영영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잠에 들지 않는 날이 늘어났다.


이지수가 이사 갔던 때는 가을이었지만 짐을 뺐을 때는 여름이었다. 35도가 넘어가는 한낮에는 찜질방에 있는 것처럼 세상이 뜨거웠다. 반면 회사에서는 긴팔을 입어야 지낼 수 있었다. 끝에 앉아있는 팀장은 바깥도 안도 찜통이라며 에어컨 온도를 내렸고 이지수는 시간이 갈수록 손가락이 시려오는 것을 느꼈다. 서큘레이터와  선풍기 그리고 에어컨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아갔다. 이제는 바깥 온도에 손이 시린 날씨로 돌아와 있었고 이지수는 회사에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회사와는 다르게 검역소의 일에는 큰 스트레스가 없어서 이지수는 좋았다. 집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공간에서 지냈고 더 적게 벌었지만 대신 더 적게 소비했다. 김윤경이 궁금한 표정의 이지수를 확인하더니 가까이 다가와서 경비원이 해주고 간 이야기를 전달한다.


아까 경비원 아저씨들이 정자세로 경례하고 있었던 거 보셨죠?

네.

여기 총장 자동차가 들어오는 무전을 미리 받고 인사하는 거라고 아까 경비원 아저씨가 말씀해주고 가셨어요.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총장이랑 부총장 자동차 번호 문진표 뒤에 적어 놓을게요. 경비원 아저씨들도 긴장해서 확인하는 거 또 확인하시고 그러는데 검역소도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요.

고마워요.


이지수는 김윤경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는다. 궁금한 표정을 알아채고는 친절하게 이것저것 설명해 주는 김윤경에게 이지수는 고마움을 느낀다. 김윤경은 고맙다는 말이 조금 어색했는지 뒷말을 작은 소리로 뭉그러뜨리고 자리로 돌아가 서서 문진 하는 사람이 오기를 기다린다. 오후로 접어드는 시간이 되면 캠퍼스에 들어오는 자동차는 거의 없다. 두 사람은 서다 앉았다를 반복하면서 QR코드를 확인하고 요일별로 색이 다른 문진 띠지를 창문 너머로 전해주었다.


추가 합격되기 전 모든 대학에서 오라는 연락을 받지 못했을 때도 이지수는 울지 않았다. 병마개가 막혀 있는 것처럼 높은 압력으로 눈물샘을 누르고 있는 것처럼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눈물은 이상하게도 멀리서 달려오는 아이들 목소리를 들었을 때 터져 나왔다. 유치원 등원 버스가 멈추고 반자동 문을 여는 소리가 둔탁하게 난 뒤에 내리는 아이들 소리에. 엄마하고 달려오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이지수는 참을 수 없이 눈물이 났다. 대학의 실패로 이제 엄마에게는 영영 달려가서 안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아무도 없는 집에서 이지수는 소리를 내면서 울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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