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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주황 Sep 13. 2021

청통 쓰레기통

가을





슬퍼만 하다가 끝날 것 같은 두려움을 이지수는 느낀 적이 있었다. 수업에 늦을까 봐. 성적이 좋지 않을까 봐. 초조하거나 슬퍼했던 시간을 기억한다. 초조함을 지우기 위해서 이지수는 모든 것이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대학 생활을 했었다. 부지런한 태도로 흐트러지지 않고 이 과정을 끝내면 원하는 것을 다시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한 없이 자책하면서 4년의 시간을 보냈다. 자책했던 시간 동안 이지수는 발표에 대한 교수의 칭찬에는 부담스러움이 앞섰고 성실하다는 칭찬에는 재미없는 사람처럼 비치는 것 같아 기분이 상했었다. 학점에 매달리는 자신이 싫었지만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그때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인정받아야 된다는 생각에 다른 세계의 문을 닫아 버린 자신이. 분리수거를 하고도 아무 말도 못 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왜 분리수거를 하면 안 되는지 묻지 않은 자신이.


웃기면서 서글펐다. 가 어이없이 오르는 순간이 있긴 해도 감정적으로 대응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질문을 하는 게 좋을까 생각한 끝에 분리수거를 해달라고 했던 청소 아주머니를 찾았다. 이번에는 물어볼 상대를 찾을  있다는  다행이었다. 아주머니는 분명 알고 있다고 이지수는 생각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청소 아주머니를 만났던 곳으로 가서 가능한 기다렸다. 생각보다 더 빨리 그곳에 나타난 아주머니를 향해 이지수는 망설이지 않고 다가간다.


안녕하세요. 저 입구 검역소에서 일하는 이지수라고 합니다.

예.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시죠? 저번에 기숙사 앞에서 만나서 잠깐 이야기했었던.

왜요?

제가 컨테이너 안에 쓰레기통에 있는 것을 분리수거해서 주변정리를 한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다른 검역소 사람이 와서 어떤 설명도 없이 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런지 혹시 이유를 알고 계시나 해서요.

 사람하고 내가 싸웠어요.

아.

내가 청소하는 구역이 입구 아래쪽까지인데, 갑자기 컨테이너가 들어와서 거기까지 청소하려면 시간이 너무 걸려요.  구역이 특히 오래 걸리는 구역이에요. 여기 주변부터 컨테이너 넘어서까지 전부 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서. 요즘에 낙엽 떨어지는 게 손이 많이 가요. 그래서 쓰레기 신경 써달라고 했더니.  치가 자기가 청소하러 여기 왔냐면서  화를 내서는. 그래서 다른 사람이 왔길래, 저번에 분리수거라도 해달라고  거였어요. 소리 지르고 갔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 제가 생각하기에는 분리수거는 제가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다른 조는 몰라도 제가 입구 검역소 담당할 때는 분리수거를 하겠습니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안해요. 앞 뒤 없이 내 말만 해서.

아니에요. 이야기해 볼 수도 있는 일이죠. 소리 지른 일이 예상 밖에 일이었죠. 그럼 다음에  오다가다 하면서 뵙겠습니다.


이지수는 분리수거를 그냥 하기로 마음먹는다.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다면   없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고 분리수거를 하는 표시만  놓으면 사람들이 으레 종이가 모여 있는 곳에는 종이를 플라스틱이 있는 곳에는 플라스틱을 놓았다. 이지수는 그렇지만 아무 일도 아닌 것에 김윤경이 귀띔을 해주지 않은 것은 서운하다고 느낀다. 다른 것은 묻기 전에 척척 알려주면서 아무 말도 해주지 않은 것이 못내 걸린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김윤경과 같이 일하는 다른  사람들도 분리수거에 대해서 다른 언질을  적이 없었고, 하다못해 안전관리팀 팀장도 분리수거하는 일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는 않았다. 관여하지 않겠다는 김윤경의 태도와 청소 아주머니의 벼르고 있던 표정으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쓰레기통 관리를 두고 갈등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이지수는 생각한다. 피하려고 하는 김윤경에게 물어보는 것이 이지수도 편하지 않다. 안전관리팀 팀장의 명함을 꺼내서 잠깐 고민해보지만 이내 다시 명함을 주머니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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