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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주황 Sep 02. 2021

주황 해돋이

봄. 가을.





차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한 어둠 속에서 발은 얼고 긴 한 숨이 나올 참이었다. 빨간 점멸 신호가 번쩍이는 빈 도로를  가로질러 불빛이 나오는 쪽으로 걸어간다. 이른 새벽이었다. 이지수는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서 전자레인지 주변을 서성거린다. 유리창 너머의 해는 주황빛으로 편의점 유리를 물들이고 발을 녹인다. 이지수가 의자에 앉아서 해가 오르는 것을 본다.

눈물이 났을 것으로 기억한다. 이지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찬란한 순간이라는 게. 실패가 발 등을 찍어내리고 다시 그 자릴 찍어내는 오늘 같은 날에도 오는구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버스에 올라탄다. 캠퍼스 앞을 지나는 고속버스가 맞는지 이지수는  한번 더 확인 후에  버스에 올라탄다. 이른 시간에 버스를 타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것도, 버스정류장이 여기에 있는 것도 이지수는 비현실적이라고 느낀다. 한 시간 내내 맨 앞자리에서 긴장한 채로 풍경을 바라보던 이지수는 학교에 도착해서야 안심한다. 정문을 지나 조금 비탈진 길을 걷고 나자 오른쪽에 작은 운동장이 보인다. 이지수는 작은 운동장을 따라서 더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오래 걸려 도착한 대학에 첫 수업은 십 분 만에 끝이 났다. 강의실에 있는 사람들은 일제히 일어나 약속이 있는 사람들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어떻게 할지 잠깐 망설이다가 인쇄해서 책상에 놓았던 강의계획서를 가방에 넣고 이지수도 강의실 밖을 나온다.

이지수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타협하는 것과 포기하는 것을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을 그리고 견딜 수 없는 것을 그만두는 것을 포기했었다고, 숱하게 그래 왔었다고 생각했었다. 원하는 것들이 좌절되면서 이지수는 먼저 포기할 것들을 정했다. 다 포기하고 나서는 잘했는지 의심이 들었다. 핸드폰을 없애고 중고 아이팟을 산 것도 그런 일 중에 하나라고 여겼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너무 멀리 앞서가는 것 같아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고 가장 친한 친구에게 조차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힘들어지고 있던 차였다. 생각했던 세계와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대학에 다니지 않는 것은 무척 부끄러운 일이라고 누군가 규칙을 정해놓은 것이라고 이지수는 여겼다. 대학의 입학을 두고는 잘했다거나 수고했다는 말보다 어른들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위로하거나 걱정스러워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는 표정으로 대게는 놀라는 것을 먼저 했다.


이지수가 이곳에 처음 온 것은 9년 전이었다. 수능을 마침 망쳤고 원하던 대학에 모두 불합격이 된 이유로 추가 합격한 한 곳이 바로 이 학교였다. 이지수는 굳게 다짐했었다. 편입을 할 것인지 아니면 수능을 다시 준비할 것인지. 학교에 입학한 것은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나은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거리가 있는 집에서 한 시간 반이 넘는 편도를 통학길로 선택한 것은 학교에 적응하지 않겠다는 이지수의 의지에 따른 결정이었다. 졸업 후에 학교를 다시 찾아온 적은 없었다.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이지수에게 대학은 추억의 대상이라고 하기에는 차갑고 추웠던 장소였다.


점심을 먹고 컨테이너로 돌아가는 길에서야 형광색 조끼를 입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학교에 사람이 없어서 그랬는지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쳐다봤다면 알아챘을 텐데 어이가 없어진 이지수가 실없이 웃는다. 멀리서부터 송풍기 소리가 들리기 더니 곧 꺼진다. 낙엽을 송풍기로 밀고 있던 청소 아주머니가 이지수를 바라보면서 걸어온다. 이지수가 ‘수고하십니다.’ 인사하고 지나가려는데 아주머니가 이지수를 돌려세운다.


저기서 일하는 사람이지요?

네?

저기 저 파란 데서 일하는 사람이지요? 아침에 차 타고 오면서 봤어요.

네, 맞아요.

컨테이너 안에 쓰레기통 분리수거 좀 잘해주세요.

…아,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다짜고짜 시비 거는 듯한 어조로 아주머니가 말하는 통에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쓰레기통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이지수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주머니의 표정은 무엇을 벼르던 사람처럼 진지하다. 이지수는 컨테이너에 들어가자마자 쓰레기통 주변을 확인한다. 아주머니가 화가 날 만한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분리수거 팻말을 놓기에는 덩그러니 쓰레기통 하나뿐이었고 다른 것을 놓기에도 공간이 협소했다. 마시다 버린 음료수며 편의점에서 먹은 도시락까지 원형 쓰레기통 안에 쌓여있었다. 이지수는 지금이라도 정리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종이류와 플라스틱 정도만이라도 구별해서 정리한다. 이지수가 정신없이 쓰레기를 치우고 있을 때 안전관리팀 직원이 나와서 안전관리팀 팀장이라며 명함을 이지수에게 건넨다.


안녕하세요. 안전관리팀 팀장 김상범이라고 합니다. 혹시 문제 생기면 여기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불편하시거나 필요한 물건 생기시면 연락 주세요. 화상 카메라나 다른 기기들은 잘 작동하죠?

네. 실외 난로 기도 잘 작동하고 온풍기도 잘 돌아갑니다.

마스크 가져오는 걸 깜빡했는데, 가져다 드릴게요.


안전관리팀장이 나가고 김윤경이 컨테이너 내부로 들어온다. 이지수는 아직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탓에 김윤경에게 묻고 싶은 말이  가지 있었다. 친절하게 이것저것 먼저 알려줬던 김윤경은 아침과는 다르게 쓰레기통 주변을 보고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고 안전관리팀이나 다른 부서에서 물과 핫팩 등의 물품을 제공한다는 것과 기본 조직에 관해서 알려주었다. 이지수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을 김윤경에게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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