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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주황 Oct 24. 2021

주황 귤

가을




어떤 말들을 주고받았는지는 중요하지가 않을까. 말들이 지워진다. 감정만 남아서 불편하게 한다. 다시 어떤 공간에서 만나도 불편할 것 같기도 하다. 미워할 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사람에게는 어떤 대우가 필요할까. 이지수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어떻게 응대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이미 덧난 곳에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전에 상처를 같이 느끼게 되는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어디에 사과해야 할까. 자신에 대해 사과해야 할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들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이지수는 자신이 얼마나 자만 속에 사는지 모르는 것 같다고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어느 곳에서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 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지나간 사람들이 이지수에게 돌아와 묻지 않으니 어떤 말이 진짜인지 알지 못하겠다. 이지수는 가끔 자신이 갑자기 부끄러워지는 날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용해진다. 싫다고 말하는 것 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감정이 많아진다. 방법을 알지 못해 다시 조용하다.


김윤경이 강진경에게 한 말 때문에 그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김윤경과 이지수는 그 자리에 없었다. 한적한 오후에 일어난 일이었고 운이 좋지 않은 것도 한 몫했다고 이지수는 생각했다. 강진경이 속한 조가 일한 시간에 총장이 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고 아마 강진경은 주변 상황을 크게 살피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은 총장의 동승자에게 문진표를 확인하지 않았고 띠지 역시 주지 않았다고 이지수는 나중에 이유를 전해 들었다.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나기는 했었다. 강진경이 대학 내 은행에 기계를 고치러 온 사람들은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고 산책하러 온 외부인은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런 작은 일들을 경비실 사람들과 구역 청소 노동자들이 보고 있다는 것도 강진경은 생각하지 않았다. 코로나 확진자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대학은 방학이 가까워지는 시기에도 방역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등록금을 반환해 달라는 학생들의 요구와 온라인 강의가 질적으로 떨어진다는 학생들의 불만에도 부담을 느꼈다. 그런 시기에 총장에게 강진경이 방역에 빈틈을 보인 것이 더 이상 강진경이 컨테이너에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되었다. 이지수는 강진경에게 좋은 감정이 거의 없었지만 비가 갠 다음날 갑작스럽게 출근하지 않은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다.


네 사람이 하던 일을 세 명이서 하게 되었지만 세 사람 모두 부담을 느끼지는 않는다. 강진경 없이도 세 사람은 시간을 나눠서 쉬는 시간을 다르게 계산한다. 두 명씩 컨테이너를 지키고 한 사람이 차례대로 번갈아 가면서 쉬는 것으로 정리를 한다. 세명 중에 첫 번째로 점심을 먹고 이지수가 돌아온다.


윤경 씨가 마지막으로 먹으러 가는데 배고프지 않아요?

괜찮아요. 내일에 제가 제일 먼저 먹으러 가잖아요.

맞다. 우리 돌아가면서 먹어보기로 했죠. 잘한 것 같아요. 돌아가서면서 먹기로 한 거.

그것보다는 둘이 함께 쉬었는데 밥을 제대로 같이 먹지 못한 게 아쉬워요. 그럴 기회가 있었는데…

윤경 씨 도시락이 항상 궁금했는데 나도. 이제는 한 명씩 먹어야 하니까.

자동차 검역소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배정되면 우리 시간 맞춰서 한 번 점심시간에 만나요. 처음 이곳으로 배정된 게 좀 속상한 적도 있었는데 윤경 씨를 만나서 다 괜찮아졌어요. 고마워요.


김윤경은 웃음기를 머금은 채로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같이 이지수를 봤다.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자동차 검역소로 오고 있었으므로  대화는 나누지 못했지만  사람은 알고 있었다. 오늘은 조금 다른 날이라고. 어떤 강박이 머리를 찍어내리는 듯한 순간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지났고 그런 날이 다시  수는 있지만 오늘 같은 날도 또다시   있다고.

이지수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생각했던 사회의 자리가 다른 것들로 변하기까지 너무 짧은 시간이 걸렸고 자신은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모두 허상이라는 것을 느꼈을 때 이지수가 설 자리는 없었다. 한 꺼풀 드러내고 실제를 보고 나서는 어떤 규칙으로 살아가야 할지 정하기가 어려워졌고 잃어버렸던 것을 다시 찾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이지수에게 김윤경은 과거의 자신을 상기시켰고 찾아야 할 것이 있다고 믿을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이지수는 김윤경에게 점심 먹고 입가심에 좋다면서 주머니에서 귤 하나를 건넨다. 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지수는 귤이 먹고 싶어서  슈퍼마켓을 두 곳이나 들러 맛있는 귤을 찾았다. 주머니 속에 귤을 넣고 김윤경에게 나눠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김윤경은 잘 먹겠다면서 두 손에 귤을 꼭 쥐면서 말했다. 두 번째로 점심을 먹고 돌아온 사람이 김윤경과 교대하기 위해서 컨테이너 쪽으로 돌아오고 있었고 이지수는 맛있게 귤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후로 김윤경과 이지수는  번의 점심을 같이 했다. 방학이 되고는 방역에 참여했던 사람이 모두 학교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방학  방역은 교내의 인력이 맡기로 했고 다음 학기에는 새롭게 사람들을 뽑는다고 했다.  달이 조금  되는 시간 동안  사람은  번의 점심을 같이 했고  번의 간식을 주고받았다. 남은 것은 나아질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자신 말고도 분명히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지만 불안하기만 했던 마음이 변했고 다른 것을 시도할  있는 마음이 들어왔다. 정말로 믿고 싶었던 것이 여기에 있었다고 이지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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