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주황 Oct 17. 2021

어둠 속에 붉은 경광등 하나

가을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따지자면 마음이 움직인 것은 이지수 었다. 이지수는  수치스러워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인지를 잃어버렸던 자신을 기억했다. 김윤경이 이지수에게  것은 어떤  수치스러워하고  부끄러워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었고 이지수는 말해야   같았다. 김윤경에게 자신이 처했던 상실에 대해 알려주어야   같았다. 자신을 조금씩 잃고 나서는  발을 서고 있는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그러면서 점점 약해지고 편견이 몸에 붙을 때에는 자신이 제일 약할 , 그래서 누군가를 비난함으로  뒤에 숨어있을 때라는 것을 알지 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강진경이라는 사람이 컨테이너에 들어와 이지수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이름보다 나이가  중요한 것처럼 말하는 강진경은 언니가 라는 말로 오늘 하루도 시작한다. 강진경은 이름보다는 언니라는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고 이지수는 생각했다. 한두  차이 나는 사이지만 언니가  강진경은 비가 오는 날이나 유독 추운 아침에는 컨테이너에서 되도록이면 늦게 나온다.

오전에는 안 온다 더니 아침부터 비가 오네.

아무래도 우비를 입고 나가야 할 것 같아요.

그렇지. 으슬으슬 추운데 나는 좀 이따가 차들 많이 오면 나가도 되지?

경광봉도 들고 가야지. 챙겨주는 건 언니밖에 없지? 그리고 저번에 여기 왔던 애 있지?

네?

그 너한테 뭐라고 했다면서 분리수거한다고. 그 애 너랑 동갑이야. 그리고 다른 건물에서 일하는 언니들한테도 내가 말했는데 너 그런 애 아니라고. 좋게 좋게 끝냈으면 좋겠다고 언니들도 그러더라.


변해야 할 것이라면 분리수거를 한 일로 언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에게 분리수거를 잘하도록 유도하거나 분리수거가 가능하도록 하는 환경을 같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이지수는 생각했다. 이 학교에서 같이 일하는 구역 청소노동자와 검역소 단기 노동자들 간의 다툼도 사실은 서로에게 이해를 구하면 될 일이고 그로 인한 이지수와 그리고 이지수를 찾아와 소리 지른 그 사람과의 일도 서로 이야기를 통해서 해결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지수는 좋게 좋게 끝냈으면 좋겠다는 말을 생각했다. 우비를 입고 우비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면서 그 일의 시작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끝을 내라는 강진경의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김윤경은 이미 밖으로 나와서 차를 맞을 준비를 했다.

김윤경은 강진경을 드러나게 피했다. 컨테이너에 강진경이 들어오면 어느새 밖으로 나갔고 강진경이 밖으로 나가면 컨테이너에 들어와 필요한 것들을 찾아가는 식이었다. 이 둘의 관계에서 이지수는 중립을 유지했는데 어느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고 되도록이면 말을 아꼈다. 더군다나 이지수는 그 일이 있는 후로부터는 황당한 요구나 앞 뒤가 맞지 않는 일에도 되도록이면 토를 달지 않고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강진경을 제외한 우비를 쓴 사람 셋이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 속에서 차들을 맞는다. 위 쪽에서는 문진표를 확인하고 아래에 한 사람이 안내봉으로 차들이 밀리지 않도록 차선을 나눈다. 교대 시간이 되고 먼저 쉬는 조가 컨테이너로 다 젖은 신발과 양말을 끌고 들어간다.


왜 안 나오셨어요?

오늘은 언니가 쉬었으니까 다음은 지수가 쉬면 되겠다. 네 명 다 나가 있으면 뭐해 오늘 비도 오고 차도 생각보다 안 와서 상황 보니까 안 나가도 되겠어서. 문제가 생겼으면 나갔지 당연히.

다 같이 나가서 일하는 시간이면 다 나가서 해야죠. 뒤에는 시야도 잘 안 보이는데 조끼랑 경광봉 불빛 말고는 차들한테 신호 주는 게 없는데 안전도 문제고요. 같이하는 사람이 힘들 거라는 생각은 안 하시는 거예요?

허! 다 되니까 그렇게 한 거잖아. 문제 생겼어? 쟤가 뭐라고 해? 왜 네가 난리야. 야 내일은 나만 나가면 되지 그럼.

강진경 씨 오늘 일은 제가 인사 관리하시는 분한테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강진경 씨도 할 말 있으시면 다른 언니들께 말씀하세요.


김윤경은 다른 날과는 달랐다. 차들은 평소보다는 천천히 움직였지만 생각보다 더 많이 내린 비로 바지와 양말까지 모두 젖었고 시야가 좁아져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김윤경은 격양되어 있었지만 충동적인 것 같지는 않았다. 이지수가 의견을 보태야 하나 생각해야 할 때 김윤경은 선전 포고하듯 강진경에게 인사 관리하는 사람에게 오늘 일을 문제 삼겠다고 말했고 강진경은 얼굴이 일그러진 채로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이지수는 아직도 비가 뚝뚝 떨어지는 우비를 입고 다시 밖으로 나가서 강진경이 채우지 않는 자리로 찾아갔다.

이전 08화 노랑과 주황 사이의 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