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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주황 Sep 14. 2022

말의 흔적

언어의 자국을 따라갑니다.


말이 되지 못한 생각은 어디로 가버린 건지, 잎이 되지 못한 씨앗은 어디에서 다시 흙으로 변한 것인지 까무룩 시간이 흐릅니다. 글의 개념이 아직은 없었을 무렵에는 음성언어인 말로 어쩌면 노래로 어쩌면 울음이나 소리로 다른 사람들의 몸속에 정보를 저장해서 다른 시간으로 전달했다고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말은 기억을 돕고 어디로든 전달되어서 독이 되거나 삶이 됩니다.

의미를 되짚어 보면 독이 든 말이라도 그 안에는 다른 것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독배를 마신 사람에게 그 의미에 대해서 묻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다시 그 잔을 들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그 말 안에 들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왜일까요. 나는 그래서 그 말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독이 되었던 말이나 삶이 되었던 말들을 생각하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잎을 봅니다. 계절마다 부는 가을바람에 마른 나뭇잎이 떨어질 때에도 봄에 새순을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의 흔적을 따라서 걷습니다.

말하지 못한 마음이 어디로 가는지, 마음에 없는 말들이 어딘가로 도달하기는 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자국을 남기는 언어에는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흔적은 단순히 흔적으로만 남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잎이 되지 못한 씨앗은 씨앗호떡으로 나의 입으로 들어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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