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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Sep 24. 2020

다다익선? 아니 소소익선

유방이 중국 한나라를 통일한 데는 한신의 공이 컸다. 유방은 한신의 뛰어남은 인정했지만 늘 경계했다. 그런 유방이 어느 날 한신에게 물었다.

“자네가 보기에 나는 얼마나 많은 군사를 거느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신은 답했다. 

“십만 명쯤 거느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방은 다시 물었다. 

“그럼 자네는 얼마나 거느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신이 답했다. 

“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여기서 유래된 말이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이후의 이야기를 마저 하자면, 한신의 말에 기분이 언짢아진 유방은 한신에게 그럼 왜 나의 부하로 있냐고 되물었고 한신은 “폐하께서는 많은 병사를 거느릴 수는 없지만, 장수를 지휘하는 능력이 뛰어나십니다. 하여 제가 폐하의 부하가 된 것입니다.”라는 아부성 짙은 멘트를 날렸다고 한다.     

   

이처럼 다다익선은 군사를 통솔하는 능력에 대한 얘기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여러 상황에서 두루두루 사용되고 있다. 그와 더불어 뭐가 됐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인식도 강하게 자리 잡았다. 물건도, 주변에 사람도, 아는 것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게다가 좋은 거면 뭐든 많이 갖고, 많이 먹고, 많이 넣으면 좋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졌다. ‘다다익선이지’라면서 말이다.     


이에 반대되는 개념이 미니멀리즘이다. 미니멀리즘은 처음에 예술 분야에서 시작됐는데 불필요한 장식, 기교 등을 없애고 사물의 본질만을 남기는 것을 추구했던 운동이다. 이것이 점차 여러 방면으로 확산되었고 이젠 생활 곳곳에서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클린 라벨’이란 것이 있다. 합성첨가물 무첨가, 간결한 원료 리스트와 최소한의 가공, 천연재료 사용 등의 필수요건을 만족시키는 식품에 붙여지는 라벨이다. 유럽 및 북미에서 시작되었는데 이젠 많은 사람들이 이 클린 라벨이 붙은 제품을 선호한다고 한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그 바람이 일고 있는 듯하다. 종종 보이는 ‘○○ 외의 첨가물은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라는 광고 문구만 봐도 알 수 있다. 제품 뒤에 빼곡히 적혀 있는 알 수 없는 성분들에 사람들은 이미 많이 지쳐있다. 이젠 제품에 뭐가 들어가 있느냐보다 뭘 얼마나 뺐느냐에 관심을 둔다.     

 

<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만 남기기로 했다>의 저자 에리카 라인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좋은 것만 곁에 두라고 한다. 만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진이 빠지고, 내가 부족하게 느껴지게 하는 사람이라면 멀리하거나 아예 관계를 단절할 것을 권한다. 이 외 여러 에세이에서도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 무례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단호하게 정리하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런 말에 크게 공감하며 때론 속이 시원하다는 말까지도 한다. 이처럼 이젠 주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두느냐보다 어떤 관계를 끊어야 하느냐에 관심을 더 갖는다.

      

요즘은 인터넷과 각종 SNS로 인해 각종 정보가 넘쳐난다. ‘정보의 홍수’라고도 표현하지만 전혀 과장된 말은 아닌 듯하다. 특히 이번 코로나 사태 때는 정보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어떤 게 맞고 어떤 게 틀린 것인지 알려주는 정보마저 생겨났다. 이런 넘쳐나는 정보는 오히려 사람들을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게 만들고 과도하게 불안하게 했다.  

     

얼마 전 한 유명 연예인이 TV 프로그램에 나와 화려한 집을 소개했다. 혼자 사는데 3층까지 있었고, 집 안 곳곳에는 멋진 장식, 값비싼 옷이며 신발들이 가득했다. 보는 이들이 다 감탄을 했지만 그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다. “예전에는 좋은 물건을 사면 잘살고 있다고, 이 정도면 훌륭하게 사는 거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물건을 하나씩 살 때마다 기뻤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것들이 내 인생을 말해주는 듯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뭘 사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냥 나일 뿐인데...” 그러면서 그는 이사도 갈 거고, 짐도 줄이려 한다고 했다. 유명 연예인은 아니지만 나 역시 복잡한 집을 보면서 매일 고민한다. 뭘 버릴까, 뭘 정리할까.  

     

이젠 다다익선보다는 소소익선(少少益善)을 외쳐야 하는 시대가 아닌가 한다. 지금은 채움보다 비움을, 보태기보다 덜어냄을 생각해야 하는 때인 듯하다. 많으면 많을수록 짐이 된다. 소소익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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