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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고고 Oct 17. 2024

네모난 칸 안에 카드를 잘 대주세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한 번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한 번에!'


출근길 아침에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지하철에서 하차를 위해 카드 태깅을 하는 거예요.


지하철이 이렇게 컸나?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밀려 나오면,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키우기보다는 앞사람 발을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는 자제력을 끌어올립니다. 가끔은 자제력보다는 잠시 멈춤을 택한 사람들은 인파에서 멀어져 서있기도 해요.


아무튼, 이렇게 계단 위까지 도달하면, 이때부터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첫 번째, 무자비하게 흩어져있던 대열이 하나의 가지런한 정렬을 이루는 순간을 알아채야 합니다.

하차 카드를 찍는 기계가 서로 균등한 간격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내 옆사람과 앞사람의 간격이 갑자기 멀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계마다 보이지 않는 선울 놓아둔 것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줄을 섭니다. 이때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타야 해요. 잠을 덜 깨고 선을 밟고 서있다가는, 마치 새치기하는 사람처럼 양옆에 사람들의 눈치를 보다가 끼어들기를 해야 하거든요ㅎㅎ


두 번째, 하차 태그! 한 번에 통과해야 합니다.

이 순간이 제일 떨려요. 정신을 차리고 네모난 칸 안에 정확하게 카드를 맞춰서 올려야 합니다. 카드를 올려야 하는 때도 정해져 있어요. 앞사람의 카드가 네모난 칸 위에서 빠져나가는 때를 맞춰야 합니다. 손을 먼저 기계에 올리고, 그 손이 흘러간 길을 따라 몸이 지나가는데 그 순간 "삐"하는 소리도 흘러나와야 해요. 모두가 합의한 리듬감처럼 지켜야 하는 박자입니다. 


그럼에도 사람은 실수를 할 수 있으니, 엇박자를 만드는 순간도 있어요. 카드를 올렸다 내렸다 2번이나 했는데, 기계는 "삐"소리를 내어주지 않아요. 기계 대신 뒤로 줄지어 있는 사람들이 긴 한숨으로 "삐"소리를 대체합니다. 이 광경을 옆에서 바라보는데 얼마나 떨리고 긴장되는지 몰라요. 


나는 꼭 한 번에 통과하겠어..!! 다짐을 하고 맘을 다잡다 보면 몽롱했던 정신도 드는 아침이에요.


이상

2024. 10. 17


ps. 서로 약속하고 합의한 것도 아닌데, 당연하게 만들어지는 리듬감이 저는 좋아요.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고 편안한 느낌이 들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끔 이 박자가 빠른 분들도 있겠지요? 그런 분들에게 여유로움을 줄 수 있는 마음도 가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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