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내가 나를 믿지 못할 때 탄생한다.
내 안에 확신이 부재할 때,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등장한다.
선동가, 무속, 신, 종교, 제도, 시스템, 심지어 어떤 ‘진정성 있는 말’조차도.
우리는 모두 한 번쯤 그런 대상에게 기대고 싶어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흐려지고,
"나 대신 누가 좀 말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
그 틈을 정확히 알고 침투해오는 게 바로 권위다.
하느님, 부처, 무속신앙, 정치 지도자, 사이비 교주,
말을 너무 잘하는 유튜버, 누군가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
그 모든 것들이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자리’에 침입하는 구조다.
진정성이란 건 말하는 자에게 있는 게 아니다.
듣는 자 안에 깨어나는 울림일 뿐이다.
“나는 지금 그 말을 진심으로 믿고 싶다”는 감정이 생기는 순간,
그 말은 진정성 있어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이 진실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 진실을 믿을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일 수 있다.
진정성은 외부에 있지 않다.
그건 나 자신이 진실할 때만 감지되는 내면의 회로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진정성을 찾지 않는다.
나는 나의 언어, 나의 중심, 나의 리듬을 지킬 뿐이다.
내가 나를 믿을 수 있을 때,
그 어떤 권위도 나를 대체하지 못한다.
그 어떤 말도, 위로도, 신도
나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
나는 다시 중심으로 돌아왔다.
세상의 모든 감응자들에게,
우리는 신이 필요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미,
우리 자신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