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우정
호주에 더 머물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학생 비자로 바꿔서 학교에 다닌다든가, 세컨드 비자를 만든다든가 몇몇 방법 중에서도 선택한 방법은 세컨드 비자를 만들러 가는 거였다. 세컨드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현재 가지고 있는 비자가 만료되기 전까지 나라에서 허가된 곳인, 농장이나 공장에서 88일 일을 해야 했다. 매주 받은 페이 슬립*을 12장 정도 넉넉하게 모아서 제출하면 심의를 거쳐 다음 비자를 얻게 된다.
페이 슬립 : 급여 명세서 (주로 한 주가 끝날 때마다 메일을 통해 받는다.)
세컨드 비자를 만들기 위해 떠난 이들의 기록을 매일 찾아봤다. 작물을 고르는 것부터 농장을 선정하는 것까지. 농공장에서의 생활환경, 조심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찾았다. 1년을 더 머물겠다는 마음을 먹으니, 할 일의 순서가 정해진 듯했다. 다음으로 향하는 듯한 상황이 그간의 불안감을 하나 둘 지워갔다. 매일 놀아도, 매일 재미있는 건 아니었다. 무엇이든 정도라는 게 있었다. 일상의 균형이 잡혀 있어야, 감정들도 제 기능을 할 수 있었다.
방 안에서의 고민은 주변 이들에게 알리면서 점점 자리해 나갔다. 커피 클래스에서 같은 팀을 했던 친구 히로에게, 이미 양파 농장에서 세컨드 비자를 만들고 온 이전의 하우스 메이트, 지예에게 그리고 동거인 서진에게도 말해야 했다. 근래 계속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던 서진은 지친 내색이 가득했다. 언제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지 고민이 됐다. 쉬는 날이 아니라면, 출근 전 점심시간 정도에 얼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린 자주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일을 마치고 조금 일찍 돌아온 서진을 앉혀두고 물었다.
“너 혹시 호주에 1년 더 살고 싶은 생각 있어?”
“갑자기 왜?”
“궁금해서. 또 시간이 꽤 흘렀으니까.”
“비자 끝나면, 학생 비자로 지내고 싶다는 생각 하고 있긴 해.”
너는 어떻냐는 물음에, 세컨드 비자를 생각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거친 생각들과 막연한 계획을 설명하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아무리 충분히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었더라도 서진에게는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제 막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해, 살기 시작했는데 여길 떠나겠다니. 이게 웬 말인가 말이다.
세컨드 비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체로 농장이나 공장을 가야 했기 때문에, 시티에서 사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히나 농장은 시기마다, 지역마다 주된 작물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작물의 일을 하고 싶은지 정한 경우라면, 그 농작물이 자라는 지역으로 가야 했다. 서진은 믿기 어려운 듯 물었다.
“너 집 구할 당시만 해도 1년 이상 있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했었잖아.”
“응.”
“근데 어떻게 갑자기 마음이 그렇게 바뀌어?”
제아무리 이런 결정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생각이 있었대도 서진에겐 배신감을 느끼고도 남을 갑작스러움이었다. 확실한 계기가 있었더라면 이야기해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렇다기엔 이건 너무 단순한 결정이었다. 구직하다 보니 여기 더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눈에 차는 게 많을수록 마음이 커져 나갔다. 자유로움이 좋았고, 사람들이 아침 일찍이 활기를 띠는 게 새벽까지 잠들지 않고 버티던 나와 달라 부러웠다. 영어를 쓸 수 있는 환경이란 게 즐거웠고 익혀지는 거리들이, 지루해지는 일상들이 새로운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조금 더 이런저런 일을 겪어보고 싶었다. 이 커다란 땅을 마음 내키는 대로 더 걸어보고자 1년의 유예된 시간이 갖고 싶었다.
그날 이후, 우리 사이엔 처음 겪는 가장 길고도 낯선 침묵만이 흘렀다. 어쩌면 그것은 조용한 대치였는지도 모른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서진은 울음을 참지 못했고 나는 어쩔 줄 몰랐다. 드디어 편안한 둘만의 세상이 갖춰졌는데. 이렇게나 멋대로 나간다니. 서진은 내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갑작스럽게 멀어진 것처럼 느꼈을 거다. 나를 움직인 어떤 것들에 대해, 그리고 함께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에 대해, 그 모든 상황을 향해 복잡한 감정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선택한 것들이 서진에게는 너무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내가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는 거지?”
“우리 같이 제대로 놀지도 못했는데…” 서진의 아쉬움은 나의 아쉬움과도 같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서진의 마음이 너무 이해되어 그만큼 내 마음이 아프다. 외로운 걸 무척이나 싫어하는 친구였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나 하나 있어 열 친구 부럽지 않다’며 몇 번이고 나를 추켜 세워줬다. 내 일이라면 제 일처럼 기뻐해 주었고, 몸이 아파 병원에 다니던 적엔 나보다 더 슬퍼해 주던 친구. 그런 여리고도 고마운 친구였다.
하루라도 집에 있으면 답답해하는 나와는 달리, 집 안에서의 작은 행복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알고 지낸 세월과 다르게 서로 다른 게 너무나 많은 우리였다.
조금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까 싶다. 더 현명하고 지혜롭게 전달할 수 있었던 방법이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때 나의 최선을 의심하면서 말이다.
호주에서 배운 것 중 또 다른 하나는, 계획한 대로만 가지 않는다는 거다. 모든 상황에 ‘그렇지만, 어떻게 될지 모른다.’라는 마음이 필요했다. 여기는 우리가 나고 자란 한국도 아니었고 누워서, 앉아서, 걸어가며 보는 모든 것들이 새롭게 다가올 때가 있었다. 유연히 사고하고 마음을 열어두는 게 중요했다. 어려운 일임에도 그런 생각을 지니며 사는 게 필요했다. 그런 시간이 쌓여야 세계가 커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일 같이 서진이 슬퍼하고 나또한 쉴 새 없이 흔들리던 그 상황에서는 이렇게까지 하면서, 세컨드 비자를 꼭 만들러 가야 하는 건가 싶었다. 점차 마음이 지쳐갔다. 그렇게나 서진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서 떠나는 것도 편안히 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버렸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말이다.
“나 그냥 마음을 바꿨어. 비자 만들러 가지 않으려고.”
“... 왜?”
왜냐고 묻는 서진의 물음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나 때문이야?” 울먹이며 물었다.
“아니. 그냥 조금 더 생각해 보기로 했어!” 그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커피 클래스에서 같은 팀이었던 히로는 자신도 농장을 생각하고 있다며, 좋은 정보가 있으면 같이 주고받자며 약속했다. 더 이상 같이 찾긴 어려울 거 같아, 미안하단 연락을 했다. 아쉬웠다. 갑자기 길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모든 섣불렀던 판단들이 나의 행동과 따로 노는 듯했다. 서진이 일을 쉬는 날만을 기다렸다. 그동안 섭섭하게 만든 게 미안했고, 서로에게 아직 풀리지 않은 깊은 이야기를 꺼내 정리해야 했다. 다시 또 일자리를 찾고 이력서를 보내며 바쁜 듯 보냈다. 여전히 답을 받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다 서진이 쉬는 날이면 멜버른 근교로 여행을 다녔다.
- 서진의 일 마치길 기다리며 얼렁뚱땅 만든 계획표
매일 같이 시간을 보내며, 곳곳에서 어린 날의 우리를 추억하며 그 시절로 돌아갔다. 어느 날 저녁. 거리에서 예쁜 와인가게를 발견했다. 와인을 한 병을 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랜만에 요리를 해주겠다는 서진을 따랐다.
“생각 많이 해 봤거든.” 빨개진 눈을 하고선 서진이 이야기를 꺼냈다.
“뭘?”
“네가 어떤 마음으로 세컨드 비자를 포기하겠다고 했는지.”
“...”
“나 때문이지. 내가 계속 슬퍼했으니까. 그래서 포기한 거지?”
용기 있는 서진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해야지 하면서도 우리의 관계가 다시 아슬한 빙판 위에 놓일 거 같아 두려웠었다. 곧이어 서진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 서진은 요리를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