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출발지
기대되면서도 걱정스러운 기분. 농장을 구하고 나서는 매일 그런 상태였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됐으니, 살고 있는 이 아파트를 정리해야 했다. 두려움에도, 기대감에도 사로잡혀 있을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이 아파트를 구하기까지 얼마나 긴 여정을 지났던가. 좋은 집에 한 달 살아보기를 하고 나가는 기분이었다. 집을 생각하고 있으면, 이대로 나가야 한다는 게 참 아쉬웠다. 그러다 집에 붙어 있는 걸 그렇게나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집착하는 내 모습이 웃기게 느껴지기도 했다.
세입자를 구하는 글을 써 여러 사이트에 올렸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스펙션을 보러 왔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누군가의 집을 보러 다니던 우리가, 집을 보여주는 날이 오다니. 하지만, 주인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대부분 호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이라 설명해야 할 것들이 넘쳤다.
집을 둘러보기보단, 질문만 하다 가는 사람도 있었고 이전 셰어하우스에서 불합리한 일을 당해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온 사람도 있었다. 모두가 사기당하고 싶지 않은, 대책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왔다. 우리와 같았다.
- 좋은 추억만 가득했던 윌리엄 내 방
하나둘 정리하며, 멜버른에서 만났던 친구들과도 작별 인사를 했다. 호주의 첫 정착지, 멜버른을 떠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으면서, 친구들과의 작별에서는 어딘가 끌려가는 사람처럼 굴었다. 언어를 넘어, 국경을 넘어, 이렇게 만난 인연들 모두가 무척이나 그리울 것만 같았다. 그때는 서둘러 비자를 만들고 돌아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언젠가 기필코 다시 꼭 만날 수 있기를 바랐다.
이전의 하우스 메이트, 지예와 은선과도 인사를 나눴다. 멜버른에서 가장 큰 수확은 이들이었다. 덕분에 힘을 냈고 용기도 많이 얻어, 조금 더 용감해질 수 있었다.
“잘 다녀와”
“무슨 일 생기면 그냥 돌아와.”
관계라는 건 참 신기한 것 같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생판 남이었던 우리가, 누군가를 진심 어린 마음으로 걱정해 주고 잘 되길 빌어준다는 게 말이다. 많은 이들로부터 격려와 응원받고 나니 실감이 났다. 정말 멜버른을 떠나는구나.
짐으로 엉망이 된 집을 청소하는데, 갑자기 히로로부터 연락이 왔다. 살고 있던 집 계약이 당장 내일 끝난다는 거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그는 이전에, 비행기 날짜를 맞추려면 멜버른에 더 머물러야 해서, 집주인에게 계약기간을 조금 더 연장할 수 있는지 대화를 나눴다. 당시에는 집주인이 흔쾌히 괜찮다며 수락해, 믿고만 있었는데 어디선가 새로운 입주자를 찾았는지 원래 계약했던 날짜에 맞춰 나가 달라는 연락을 받은 거였다.
하필이면 그날이 당장 내일이었다. 부랴부랴 짐을 싸며 단기로 머물 수 있는 곳을 알아봤지만,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이 셰어생이라 신세 지기 어려웠고 단기 호텔이나 숙소는 터무니없이 비싸, 결국 우리에게까지 연락하게 된 거였다.
그의 사정을 듣고 서진과 나는 고민을 시작했다. 아무리 어려도 남자앤데. 그렇지만 매일 같이 우리 집에 살다시피 하고 있고. 이런 상황을 모른 척하기에는 우리도 홈리스 시절이 있었던 지라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일단은 불러 앉혔다.
“너, 앞으로 우리 집 청소 담당이야.”
“... 왜?”
“여기서 살고 싶다면.”
“진짜?!”
우리는 우리가 본 히로의 모습을 믿기로 했다.
- 잘 먹고 잘 놀던 시간들
- Welcome to William !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서진을 위로하고, 어눌한 한국어로 ‘힘이 들었어?’하는 모습을. 성가신 장난에도 맞춰주며, 우리 집을 제 집처럼 청소하고 정리를 곧잘 돕던 스무 살을. 매일 노래방 앱으로 열창하는 우리 뒤로, 부끄러운 듯 손을 흔들며 즐기던. 일본에서부터 챙겨 온 한국어 사전을 읽어가며 우리의 대화를 유심히 들어두었다가 따라 해 보이는 열정적인 모습을.
그렇게 히로는 멜버른에서 제일 처음으로 구매했던 자신의 애착 이불을 챙겨 와 바닥 생활을 하며 살았다. 매일 같이 나가는 우리를 대신해 집을 지켰고, 환기부터 시작해, 청소와 설거지 가끔은 요리도 척척하며 살림을 도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진과 보냈던 조용했던 시간이 활기를 되찾았고 우리는 그렇게 돈독한 우정을, 윌리엄에서 마지막이 될 추억을 쌓아갔다.
떠나기 이틀 전, 돌아온 서진의 생일날이었다. 친구가 된 이후로 거의 매년 빠지지 않고 함께 생일을 보냈는데, 머나먼 나라로 와서도 함께 보낸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어릴 적부터 끈질기게도 붙어 지내서, 키가 비슷하던 때에는 쌍둥이라는 소리도 자주 들었었다. 그럴 만도 한 게, 머리나 옷 스타일을 물론, 책가방까지 똑같았으니. 혼자 쑥쑥 자라 버린 친구는 나와 머리 하나하고도 더 차이가 나지만, 여전히 우리만의 세상 속에서는, 용돈을 모아 같은 필통으로 맞추던, 하굣길에는 단골 떡볶이집에서 간식을 사 먹던 그때와 다를 게 없었다.
새삼 이곳까지 날아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게 기적처럼, 너무 큰 행복처럼 느껴졌다. 길다면 긴, 짧다면 짧을 이 여정에서 우리가 많은 것들을 배우길, 또 한 뼘 자라나길 바라고 또 바랐다.
- 히로와 준비한 서진의 생일 파티
떠날 날은 다가오는데 서진 방에 들어올 세입자를 구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 우리는 서진의 방에 창이 없고 거실에 가구가 없는 걸 결점으로 여겼고, 자신을 살려준, 이 집이 마냥 좋은 히로는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열과 성을 다했다. 그는 일본 사이트와 SNS에 제 집처럼 게시글을 올렸다. 그렇게 끝까지 서진의 방에 입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한 채로 떠나야 하는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내 방에 새롭게 입주하게 될 사람에게 서진의 방에서 지낼 사람을 구하지 못한 사정에 관해 이야기하고 인스펙션을 부탁드렸다. 별일 아니란 듯 허락해 주셔서 덕분에 마음을 한결 내려놓고 짐을 쌌다. 아무리 정리하고 옮겨 담아도 정말이지 너무 많았다. 이 짐들이 다 어디 숨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엄청났다. 안 되겠다 싶어, 마트로 가, 3개에 90불을 하고 있는 캐리어를 샀다. 밤이 꼬박 새워가며 하루 종일 짐만 정리했다. 미룬 자들의 최후였다.
- 대책 없는 짐싸기
다음 날 콥스 하버로 떠나기 위한 비행기를 탔다. 호주에서 두 번째 비행이었다. 시드니에서 멜버른으로 온 날, 그리고 멜버른에서 콥스 하버로 가는 오늘. 우리나라가 아닌 곳에서 지역 이동을 위해 비행기를 타는 게 처음 있는 일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그러고는 이 커다란 땅에는 내가 이렇게 비행기를 타 볼 일이 얼마나 있을지 그런 막연한 생각도 했다. 안겨 있던 걱정이 비행기와 같이 붕 날아 흩어졌다. 마냥 설렘만 남았다.
컨트랙터와의 연락은 주로 내가 하고 있어서, 친구들이 알게 모르게 나를 의지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더 잘하지 않으면, 겁먹은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겁나는 일이 아니라 느꼈던 건, 서진과 히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아직 시간이 충분했고 잃을 거라곤 30킬로짜리 캐리어뿐이었다. 무슨 일이 생겨서, 도망칠 때 몸만 챙겨 떠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멜버른에 남겨진 짐만큼 무언의 무게도 덜어진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일 앞에서는 조금 풀어져도 괜찮다. 어떤 기대도, 어떤 걱정도 전부 풀어둬도 괜찮다. 그런 생각을 했다.
제 마음은 조절할 수 있었지만, 아무리 곁에서 떠들어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서진과 히로가 걱정스러웠다. 서진과 히로는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생각에 잠긴 채, 드디어 콥스 하버에 도착했다.
- 너무 작아서 신기했던 콥스하버 공항
"안 와 있는 거 아니야?"
무척이나 작은 공항에서 재빠르게 짐을 찾고는 한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을 찾았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도 온통 외국인뿐이었다. 뒤늦게 폰을 켜 보니, 컨트랙터의 부재중이 떠 있었다. 연락한 컨트랙터가 사정이 생겨 다른 사람을 보낸다는 메시지였다. 도착하면 연락 달라는 번호와 함께.
“문제없어. 괜찮아 괜찮아.”
저 멀리 손을 흔들며 맞이하는 픽업 오신 분을 찾았다. 짧은 인사 후, 차에 짐을 싣고 출발했다. 약간의 긴장이 풀린 서진과 여전히 사색인 채 조용한 히로의 등을 몇 번이나 쓸었다. 그는 한국어만이 난무한 상황에서 멋쩍은 웃음만 날리고 있었다.
히로는 여전히 사기일까 봐 걱정하는 듯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젠가 서진과 대화를 나누던 때였다. 사기는 일본어로도 사기인데 그걸 몰랐던 서진과 나는 히로 앞에서 함부로 뱉었다.
“사기?! 사기가 왜 나와?”라며 놀라는 히로에게
“너 사기 알아?” 우리도 놀라 대답했다.
갓 스무 살이 된 이 친구에게는 사기꾼일지도 모르는 한국인들이 당연히 걱정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뱉었던 말이 후회했다.
긴 지붕의 커다란 집 앞에 캐리어와 함께 내려진 우리는 약간의 두려움과 설렘을 끌어안은 채 들어갔다. 거실에 놓인 커다란 소파에 풀썩 앉아, 조용한 적막 속에서 셋 다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하루가 너무 길었다. 다른 나라에 온 것처럼.
- 임시 셰어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