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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셋으로

새로운 길로 가자

by euuna








서진은 사과했다.


“세컨드 비자 만들러 가. 나는 나대로 잘 지내볼게.” 다짐한 듯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일어날 일이 두려워, 아무런 말을 꺼내지 못한 나를 대신해, 서진이 먼저 긴 침묵을 깼다. 자신이 슬픔에 빠진 사이, 내가 포기해 버리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했다. 울먹이며 나를 끌어안고서는 연신 미안하다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조심스럽게 등을 몇 번 쓰다듬으며 나도 눈물을 훔쳤다.


무거운 공기 속 서진은 아프기만 하진 않았던 거 같다. 여리다고 걱정스레 여겼던 나의 친구는, 커다란 세상을 천천히 넘어가며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다.


호주에 와서 서진과 지내며, 부딪치는 일은 종종 있었다. 새로운 서진의 모습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들이 많았다. 내가 알던 친구가 맞는지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내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날은 대견하게 느껴졌고 어떤 날은 실망스럽게 여겨졌다. 그런 날이 무수히도 많았다.

여기서 생활은 알고 있던 것들을 전부 부수는 일처럼 느껴졌다. 생활도, 습관도, 옳다 여기던 것들도, 맞다 생각하던 것들도. 나의 판단을 통해 오는 것들이 ‘나’를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를 거쳐 나를 겪고 온 것들은 이미 사실 여부를 떠나 있었고 옳고 그름을 따질 수도 없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 누군가에게 이해받는 일이 보이지 않는 원리 속에서 작용한다는 걸 어렴풋이 알아갈 때쯤 나도, 나의 주변도 한 뼘 자라 있었다.


우리는 밤을 지새워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서진은 대치하던 그날을 계기로 자신도 이곳에서의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고 했다. 확실히 1년 더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생겨 자신도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이르렀다고 말했다.


“같이 갈까?” 한 번 더 물어보고 싶었다.

“아니.” 이전의 답과 같았지만, 다른 얼굴이었다.


당시에는 코비드 비자가 있었다. 코비드 기간 급격하게 줄어든 노동 인구를 보충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자로 정부가 지정한 업종에서 일하고 있다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었다. 서진이 생각하고 있던 건 코비드 비자였다.





그날 이후 이력서를 넣을 만한 농공장들을 찾았다. 히로에게 다시 연락해 세컨드 비자를 만들기로 확실하게 마음을 다잡았단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는 서로의 정보를 아낌없이 나누었다. 하루가 멀다고 카페에서, 공원에서, 집에서 정보들을 열심히 모았다. 그러다 보니 서진도 매일 히로를 만났다.


일과의 마무리로는 히로를 불러, 일을 마치고 돌아온 서진을 맞이하고 서진이 싸 온 스텝밀을 먹거나 요리하며 시간들을 보냈다. 지친 하루에 관해 이야기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새롭게 알게 된 서로의 문화에 대해서, 살아온 환경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공유하며 지냈다. 나이도 국적도, 성별도 뒤로하고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마치 남매처럼 말이다.


“이러다 얘 우리 집 하숙생 되는 거 아니야?” 서진이 우스갯소리로 물었고

“바닥 좀 쓸어봐.”라는 장난스러운 나의 말에

“나 이제 갈게.”라며 슬그머니 일어나는, 자연스럽게 한국어가 늘어버린 일본인이었다.


- 둘이서 셋으로



그날도 어김없이 서진의 퇴근을 기다리며 농장에 보낼 이력서를 수정하고 있었다. 현관문 소리에 ‘왔어?’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 건지 아무런 대답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 많이 힘들었어?” 축 처진 어깨 뒤로 붉게 열이 오른 얼굴이 걱정돼 물었다.

“씻고 올게...” 대답 없는 서진은 화장실로 향했다.


조용히 옷을 갈아입고 나온 서진은 곁으로 와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한참을 울먹였다.

“왜 그래... 불안하게.” 눈물을 뚝뚝 흘리는 서진을 보고 참다못한 내가 물었다.

“얘들아.”

“나 코비드 비자 안 된대.”


코비드 비자는 몇 개월째 없어진다는 소문이 무성한 비자였다.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거의 끝물인 셈이라 불안정한 건 사실이었다. 서진은 가게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어려울 거란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 이제 어떡해?” 내가 물었다.

“어쩌긴... 세컨드 따러 가야지…” 깊은 한숨을 내쉰 서진이 말을 이어갔다.

“나 좀 잘 부탁해...”




공장보다는 농장 일을 구하는 것이 확실히 쉬워 보였다. 공장도 종류가 많이 있지만, 대체로 육가공을 많이 가는 듯했고 그 일은 맞지 않을 듯했다.

다음으로는 어떤 작물을 선택할 것인지가 고민이었다. 농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작물을 따는 ‘픽킹’과 수확한 작물을 포장하는 ‘패킹’으로 나뉜다. 듣기에도 패킹이 더 수월할 듯해, 처음에는 패킹 업무만 찾았었지만, 패킹 공고 1개 올라오면 픽킹 공고는 10개 이상씩 올라오곤 했으니 확실히 픽킹 일을 구하기가 쉬웠다.

농장 일을 구하는 방법은 직접 컨택을 해, 농장의 직속 직원으로 들어가거나 농장과 워커를 연결해 주는 컨트랙터를 통해서 갈 수 있다. 직접 컨택은 구직 사이트 공고를 통해 지원할 수 있었는데, 이 또한 연락받기까지 꽤 시간이 필요했다. 나중에는 보이는 족족 지원한 탓에 중복 지원도 여럿 했었다. 그러면서도 단 한 통의 연락을 받지 못한 우리는 결국 컨트랙터를 찾기로 결심했다.

호주에서 지내며 깨달은 건, 우리나라는 커뮤니티가 굉장히 잘 되어 있다는 거였다. 어딜 가든 한인 사회가 잘 구축되어 있었다. 타국에서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도와주는, 어느 나라 부럽지 않을 만한 그런 정이 있는가 하면, 반대의 상황도 있었다. 한국인은 한국인만 조심하면 된다는 말 같은 일 말이다. 장단점이 확실했다.

컨트랙터에 대한 정보를 찾다 보니 한인 컨트랙터는 무조건 걸러야 한다는 글이 수도 없이 많았다. 다른 외국 컨트랙터와도 여러 번 연락했었지만, 차량 지원이나 숙소 제공이 되지 않는 곳이 많았다. 물론 구하고자 하면, 오일 셰어*나 셰어하우스를 구할 수 있었겠지만, 우리는 가능하면 세 명이 이동하고 싶었고 해외 면허가 없어, 운전하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그렇게 한인 컨트랙터와 연락하기로 했다. 모두가 나쁘지만은 않을 거라 믿으며.

*오일셰어 : 차량을 같이 이용하는 사람끼리 기름값을 나누어 내는 것






- 가끔은 고맙게도 자리가 없어 미안하단 메일도 왔다.



- 호주 농장을 볼 수 있는 지도 어플을 구매했다 !



컨트랙터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들어가기만 해도, SNS에 농장이라 검색만 해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여러 컨트랙터와 연락하며 신중을 기울였다. 어떤 작물인지, 처음인 사람도 적응할 만한지, 차량이나 숙소 지원은 가능한지, 일은 한 주에 얼마나 할 수 있는지, 돈은 얼마나 받는지, 잘릴 위험이 있는지 등.

어떤 작물이 우리에게 좋은 선택일지에 관해 결정하고 나눈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선택지를 좁혀 나갔다.

아무래도 블루베리가 괜찮을 듯했다. 돈을 잘 벌 수 없는 작물로 유명했지만, 농장 일을 처음 해보는 우리에게는 상대적으로 쉬워 보였다. 이제부터는 블루베리 농장에 대한 게시글만을 추려 나갔다. 좁혀지는 선택지에서도 따져야 할 것들이 많았다. 숙소 상태나, 차량비 그리고 주급. 농장 일은 ‘능력제’와 ‘시간제’에 따라서 주급도 달라졌다. ‘능력제’는 무게나 양에 따라 자신이 일하는 만큼 버는 것을 뜻하고 ‘시간제’는 능력과 관계없이 근무 시간에 따라 돈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경험 하나 없는 우리가 일을 하자마자 ‘시간제’로 주급을 받는 건 무리가 클 듯했다.

며칠 동안 재고 따지며 연락하는 하루들을 반복하다 보니 점점 집중력이 흐려져 갔다. 그러던 중, 자주 들락거리는 사이트에 새로 올라온 게시글이 하나 있었다. 현란한 문장 하나 없는 명료한 글이었다. 블루베리 농장에서 픽커를 모집한다는 제목에, 처음에는 능력제로 시작하지만, 실력이 올라가면 주급을 시간제로 받을 수 있는 농장으로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바로 연락했다. 연락하기에 앞서 각자 궁금한 것들을 적은 질문을 앞에 두고서.

긴 통화를 끝으로 다시 연락드리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마쳤다. 친구들은 궁금한 듯 물었다.

“어떤 거 같아?”

연락한 컨트랙터는 다른 곳들과 달리 그냥 심플했다. 오시기만 하면 된다며 두 팔 벌려 환영하는 것도 아니었고, 몇몇 컨트랙터처럼 무심히 툭툭 뱉는 말들도 없었다. 군더더기 없는, 필요한 정보만 정리해 둔 곳 같았다. 그게 제일 큰 장점이었다. 한국어로 한 번, 영어로 한번 서툰 손짓발짓 써가며 설명을 마친 나는 친구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괜찮은 거 같은데...”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친구들은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면 여기로 가자.” 더 이상 비교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잠시만, 사기면 어쩌지?” 서진이 물었다.

“사기면, 도망가자.” 젊은 히로가 대답했다.

가게 될 농장의 위치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북동부에 있는 콥스하버였다. 비행기표 비교 앱에 들어가 가장 저렴한 날을 찾아 비행기를 예약했다. 한시름 덜어낸 기분이었다. 이미 가겠다는 연락은 마친 상태였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지금은 그저 잘 되길 비는 수밖에 없었다.



- 동생이 보내온 블루문과 대신 빌어준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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