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어울려 사는 삶
- 왈라비 • 미어켓 • 토끼 • 쿼카 •강아지 • 웜벳 • 기린
살면서 이렇게나 많이 동물을 본 적이 있었었냐고 생각이 들 정도로 호주에서 지내면서 많은 동물을 봤다. 한국에서는 동물원이 아니면 쉽게 보기 어려운데 호주는 바깥에서도 동물 보기가 너무 쉽다. 그러니까 동물이랑 같이 어울려 지내는 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이고 당연한 일이었다. 자연과 동물이 어우러진 나라, 호주였다.
호주의 동물 사랑은, 여러 법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호주는 웜뱃이나 쿼카, 캥거루 등 야생 동물에 관한 법도 어느 나라보다도 매우 엄격하다. 또한 ‘동물보호법’이 아닌 ‘반려동물법’을 제정해, 4마리 이상 키울 때는 허가를 받아서 애니멀 호더를 규제하고 있다. 동물을 키울 때도 4마리 이상 키울 때면 나라의 허가도 필요하다.
유칼립투스가 많이 난 산길에서는 코알라를 만났다. 날씨가 좋고 운이 따라 주면 깨어있는 코알라도 볼 수 있다는 가이드 말에, 함께 투어를 간 가족들과 사람들 모두 고개를 쭉 빼놓고서는 코알라 찾기에 바빴다. 그러다 슬금슬금 올라가는 코알라를 보고 환호를 질렀다.
블루베리 농장에서 일을 할 때 일이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뒤척이는 소리가 나, 서진이나 히로인가 싶어서 ‘누구야?’하고 물었다. 그런데 웬 캥거루가 아니겠는가. 엄청나게 크진 않지만, 수풀 사이로 쑤욱 하고 나온 캥거루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고 그 자리에서 완전히 굳은 채 캥거루만 빤히 보고 있었다. 자기 딴은 당황스러운지 나를 주시하다 고개를 휙휙 돌리더니 내 쪽으로 점프하며 다가왔다.
헐. 어디서 보니까 캥거루는 힘이 엄청 세서 발차기도 잘하던데… 그런 생각을 하다 정신을 차리고는 제발 오지 말아 달라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귀엽긴 한데, 무섭기도 해. 말을 알아듣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러다 다시 돌아갔고 나는 로우 끝까지 사라지는 걸 바라보다가 다시 쫓아갔다.
거기에는 여러 마리의 캥거루들이 모여있었다. 아마 가족이겠지?
그런데 나중에 컨트랙터에게 들어보니 그건 캥거루가 아니라 왈라비란다. 왈라비는 처음 알게 된 동물이다. 캥거루과에 속한 왈라비는 캥거루보다 훨씬 작다. 캥거루는 넓은 초원이나 사막같이 탁 트인 곳에 산다면, 왈라비는 숲속이나 산악 지역 같은 울창한 곳을 좋아한다고 한다. 작은 캥거루 버전이라 보면 된다.
호주 울굴가에서 살 적, 바다를 보러 가는 길에 커다란 공원이 있었다. 거기도 왈라비 천국이었는데, 아이들이랑 왈라비가 같이 뛰어놀았다. 정말 신기한 광경이었다. 나중에는 나도 자연스럽게 적응이 돼, 옆에서 뛰어다녀도 그런 가보다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냥 너무 많아서 말이다.
농장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블랙 앵거스 소들이 엄청나게 많아서 구경하기도 했다. 그 주변이 풀밭이 많아 소 방목하기에 좋은 환경이라 그런지, 검은 차를 타고 가는 우리 앞으로 너무나 모여들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그렇게 까만 소는 처음이었다.
이 밖에도 도로에서 본 오리 떼, 멜버른 거리에서 본 기마경찰, 집 앞 자주가던 공원에 저녁이면 나타나던 포섬 가족들. 포섬은 주머니쥐로 캥거루나 코알라처럼 새끼를 주머니에서 키우는데 정말 귀엽게 생겼다. 여러 동물을 일상에서 자주 보는 삶이 좋았다.
- 빅토리아 주의 군중 통제나 행사 관리를 돕는 기마경찰
- 주머니 쥐, 포썸
퍼스에 왔다면, 한 번쯤은 무조건 가 봐야 하는 곳 ‘로트네스트 아일랜드’. 로트네스트섬은 웃는 동물로 유명한 쿼카를 만날 수 있다. 쿼카는 로트네스트섬의 상징적인 동물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동물이라고도 불리는데, 만지거나 먹이를 주는 건 불법이라 아무리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해도 절대, 절대 만져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쿼카가 로트네스트섬에서만 살고 있고 섬 전체가 자연 보호 지로 지정되어 있어서 동물이나 식물, 바다 생태계 보호가 철저하게 관리된다고 한다. 그래서 관광객 수도 일정 부분 제한을 한다.
이 섬은 이름 유래가 특이한데, 로트네스트(Rotte nest)는 네덜란드 어로 ‘쥐 둥지’라는 뜻이다. 처음 네덜란드 어느 선장이 이 섬을 발견하고 쿼카를 커다란 쥐로 오해했다고 한다. 섬에 쥐가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쥐 둥지라는 이름을 붙인 거다.
히로와 나는 퍼스에 오기 전부터 로트네스트에 대한 환상을 품었다. 쿼카의 섬이라니. 어떤 동물이 당당하게 섬 앞에서 이 섬을 대표하는 수식어로 자리할 수 있을까? 쿼카보다 더 한 게 있겠어? 아침 일찍부터 항구도시, 프리맨틀로 가, 페리를 탔다. 대략 3~40분이면 도착한다.
로트네스트 아일랜드는 차 없는 섬이라 우리는 자전거로 돌아다니기로 했다. 에메랄드빛의 바다와 뽀얀 모래사장, 해안 길과 숲길 조성이 잘 되어 있어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정말 좋을 거 같았다. 자전거 대여 신청 전, 여러 블로그를 통해 정보를 찾아봤었는데 모두가 한사코 일반 자전거만큼은 안 된다고 말리고 있었다. 하지만 히로와 나는 이미 전기 자전거는 꽤 오래전에 예약이 마감됐다는 사실을 듣고 ‘에이 뭐 얼마나 힘들겠어.’하고 일반 자전거를 빌렸다. 그날 정말 죽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잊을 수 없는 섬에서의 광경과 시원한 바람을 맞던 감각은 선명하다. 그러니까 다음 날 걷는 내내 게 다리 춤을 추긴 했어도 다시 하래도 할 만큼 좋았다. 숲길에서 중간중간 발견한 쿼카와 사진을 찍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안가를 달리고 내리막길에 다다르면 맘 놓고 발을 떼며 속도를 즐겼다.
( 쿼카 사진은 아래에 )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예쁜 바다를 보면 길가에 세워두고 발이라도 꼭 담갔다. 퍼스에 산다면, 로트네스트로 가벼운 휴양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날 듯했다. 뻘뻘 흘린 땀 탓에 옷이 다 젖고 머리까지 핑 돌아 어지러웠다. 근처 마트로 가 수박과 이온 음료를 사, 히로와 벤치에 앉아 말도 없이 먹었다. 잠시 앉아 있으라던 히로는 한동안 사라졌다. 혼자 쿼카랑 귀여운 사진이라도 찍으러 갔나 싶었다.
“내가 진짜 멋진 곳 찾았어. 같이 가자.”
그러면 당장 가야지 하고 일어설 나지만, 정말 엉덩이뼈도 허벅지도 터져나갈 듯해,
“얼마나 멋진데…?”라고 희한한 질문으로 되물었다.
히로가 찾았다는 멋진 곳은 정말, 정말 눈부신 곳이었다. 바다면 이 햇살을 받으니 온통 반짝거렸다. 윤슬이 눈뜨기 힘들 정도로 부셨다. 사람들도 많았다. 페리에 오르기 전 각자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나라의 더 자유롭고 더 자연스러운 섬이라니. 동물이 어딜 뛰어다녀도, 어디서 등장해도, 섬까지 점령해도 낯설 거 하나 없는 이곳이 아름다웠다.
- 정말 너무 너무 너무 귀여웠던 쿼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