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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적절히

일과 휴식 사이 보이지 않는 선

by euuna







그날은 토핑 포지션이었다. 딸기 프렙을 위해, 딸기 박스를 20 개가량 받았다.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싶지만, 요치에서는 딸기만큼 잘 팔리는 과일이 없었다. 딸기 퍼넷을 열어, 커다란 도마 위에 쏟아붓고 꼭지를 따고 자르기 시작했다. 다질 정도는 아니고 손톱만 한 크기로 만들면 됐다. 그러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타즈매니아 딸기 농장에서 일할 적, 이 한 알, 한 알이 얼마나 귀했던가. 보기 좋은 딸기를 선별해 퍼넷에 일정하게 담아서 패킹으로 넘기던 몇 개월 전의 내 모습이 기억났다.


한국에서는 딸기를 너무 좋아해서, 딸기 철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 열심히 먹었다. 호주에 와서 마트에서 딸기를 사 먹었는데, 무맛이었다. 딸기 향이 나는 무. 농장에서 일할 때면, 푹푹 찌는 더위에 목말라 가끔 뜯어 먹어 버리기도 했는데 역시나 한국에서 먹었던 것만큼 달콤하고 새콤하진 않다. 아직 한국 딸기보다 맛있는 딸기를 먹은 적이 없다. 아무튼, 그렇게 좋아하는 딸기를 호주에 와서 딸기를 잡아 뜯질 않나, 미친 듯이 잘라야 하질 않나. 좋아하는 과일의 생산, 유통, 판매 단계를 거쳐 가는 곳마다 일하고 있는 게 웃겼다.


기분이 묘했다. 빨리 따야 했던 딸기를 이제는 빨리 잘라야 한다. 빨리 포장해야 했는데, 이젠 빨리 포장을 벗겨내야 한다. 흠갈까 봐 조심히 매만지던 걸 작정하고 흠을 내야 했다. 어딘가 인생을 관통하는 듯해 웃음이 났다. 때에 따라, 쓰임에 따라, 역할에 따라 달라지는 게.


- 딸기 프렙


요치에서 일한 지도 벌써 3개월이 흘렀다. 그사이 새로 들어온 워커들도 있었고 말단이던 내가 누군가에게 일을 가르쳐줘야 하는 상황도 생겼다. 그날 저녁에는 요치에서 일하면서 헷갈리거나 , 기억해야 할 것들을 적어 정리해 둔 메모를 읽었다. 첫날의 마음을 다시 새겼다. 어영부영한 듯했던 일에도 탄력이 붙었다.


내가 들어오고 2주 뒤 들어온 히로도 금방 적응했다. 밤마다 패드에 그림을 그려두고 아직 배우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알려줬다.


“다 알아두면 쓸모가 있다. 넌 정말 복 받은 줄 알아. 내가 눈치 봐가며 배운 거야.”라며 으스댔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도 다시 되짚을 수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됐다.






요치는 이벤트가 많아도 정말 많았다. 한국에서 카페, 영화관, 대형 문구점 등 여러 전문점에서 일해 봤지만, 비교가 안 됐다. 주마다 바뀌는 토핑도 있고, 한 달에 한 번씩 회사의 브랜드 제품과 콜라보를 해서 한정으로 판매했다. 그럴 때는 왜 이 토핑을 사용했는지, 어떤 조합으로 먹으면 좋을지, 이 토핑을 제공하는 회사는 어딘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했다.


그 외로 요치 내에서 만든 기념할 만한 날도 있었는데, 그런 날에는 쿠폰을 뿌렸고 어느 시간대에만 저렴하게 판매하기도 했으며, 무슨 요일에만 ‘해피요치블라블라데이’하면서 사람들을 더 불러 모으기도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오면 반값이 된다던가, 지역 스포츠 클럽과 제휴를 맺어서 청소년 스포츠 클럽 할인도 만들고, 또 치 위크라고 해서 학교와 제휴를 맺고 학생들만 할인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이벤트도 있었다. 이 밖에도 굿즈 이벤트나, 색칠 공부 대회 등 여러 이벤트가 많았다.


- 맨날 가져오는 아이스크림은 점점 지겨워지고 ..



함께 일하는 친구 중에서도 마음이 잘 맞는 친구가 생겼고 새로 온 매니저도 다정하고 친절해서 재미있는 나날들을 보냈다. 여전히 출퇴근이 힘들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시간이 맞을 때마다 데려다주는 친구들에게는 고맙고 미안한 마음만 커졌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티아나와 세레나와 애슐린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씻고 방으로 들어와 앉아 쉬는데, 아무래도 방음이 잘 되는 문이 아닌지라 소리가 넘어왔다. 세레나의 스트레스에 관한 이야기 중이었다. 몇몇 책임감 없는 10대 워커들 때문에 골머리를 싸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독 몇몇은 일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미루고, 넘기고, 무시하고. 거기서 오는 책임은 전부 팀리더나 매니저들 그리고 전체를 총괄하는 매니저인, 아네사가 물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팀 리더나 매니저가 가끔 우리 집에 와 신세 한탄을 하기도 했으며 이렇게 가족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일상이 됐다.


어디에 있어도 들리는 이 이야기를 무시하는 건 힘들었다. 모르는 척하기도 했지만, 가끔 조용히 히로와 나에 관한 이야기도 해서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까 가끔은 눈치가 너무 보여서 무리하기도 했다. 시킨 일을 하지 않는 워커를 보면서, 뒤처리하기도 했고 갑자기 대타를 요구할 때면, 열에 아홉 번은 나갔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몇 시간 전 대타 요구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끊이지 않았다. 단체 채팅방에서는 여러 사정과 사람을 구하는 글이 난무했다.


시기상 학생들이 시험이 많기도 했고 과제나 일 때문에 할 수 없는 이들도 있었지만, 최소한의 예의도 없던 친구들도 몇몇 있었다. 갑자기 그냥 나오지 못한다는 경우 말이다.


티아나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히로와 내게 찾아왔다.

“오늘 누가 못 나온다는데 네가 가는 게 어때?”

“지금 대타가 필요 하대. 아직 버스 있으니까 갈 수 있지 않아?”


물론, 시급이 센 이 나라에서 일은 많이 하면 할수록 좋고, 그게 또 다른 워커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란 걸 알기에 될 수 있으면 한다고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경우라는 게 있었다.


마감이라, 일 마치고 돌아와 밥 먹고 나니 벌써 12시가 넘어 있었다. 그래도 내일은 11시 출근이라 조금 여유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티아나가 나오는 거다.


“히로는 아직 아파?”

“응 오늘도 몸이 안 좋다고 하네.”

“일하기 어려운 정도야?”


어제 일이 마치고 히로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다 잠들었다. 아마, 오늘도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그럴 거 같아. 어제 일 다녀오고 나서 너무 힘들어 보였어.”


히로가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나왔다. 티아나와 세레나 그리고 애슐린에게 짧은 인사를 건넸다. 티아나는 히로를 빤히 쳐다보다, 내게로 와 물었다.


“히로 사실 일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니야?”


아마 티아나는 그렇게나 진지하게 하는 말은 아니었을 거다. 장난치듯 한 말일 수 있다. 세레나와 애슐린도 티아나에게 왜 그러냐는 듯 그녀를 불러 세웠고, 티아나의 장난스러운 말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히로, 오늘 일 할 수 없는 거야 정말?”

“아, 배가 아파서…”


이럴 땐 정말 난감해지는 거다. 히로는 휴일이라 아팠지만 다행이었다. 곧이어 티아나는 오늘 애슐린이 시험이 있는 날이라, 히로가 대신해서 일을 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곧 출근이라 대타를 할 수 없었다. 히로는 나보다 더 체력도 좋고, 돈도 좋아하는 친구는 확실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날도 있었다.


“미안해. 어려울 거 같아.” 히로는 힘이 없는 듯 말했다.

“한 번 할 수 없어? 오늘 애슐린한테 정말 중요한 시험이란 말이야.”


그때, 애슐린은 일을 할 수 있는 친구를 찾았다며 괜찮다고 말했다. 다행이었다. 가끔 이렇게 대타에 대한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그래도 그건 서로 조율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런 날이 오기까진 말이다.


그날은 히로와 내가 일을 마치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둘 다 비슷한 시간에 마쳐 오랜만에 택시를 탔다. 택시는 왕복 3만 원이 조금 넘었는데, 매일은 힘들어도 가끔 히로와 나눠 타면 탈만 했다. 그때였다.


“지금 대타 가능해?” 티아나와 세레나가 나와 말했다.

“우리 방금 왔는데?”

“그래도 너네가 하고 싶다면 할 수 있어.”


내가 방금 왔다는 건, 일을 이중으로도 할 수 있냐는 물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티아나와 세레나는 두 번 일하는 것도 가능하게 해주겠다며 문제없다고 덧붙였다.

“아니. 힘들어서 안 할래.” 이해를 못 한 거 같았으니, 둘러 표현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다른 친구에게 태워달라고 부탁해 둘게.”

“아니. 집에 오는 문제가 아니라 또 출근하는 게 피곤해.”

하루 두 번 출근을 요구한 적도 몇 번 있었다. 히로와 나는 점점 힘들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대타를 거절한 날은 집에서 쉬기도 불편했다. 아무래도 같이 지내는 거다 보니, 눈치 보이는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거실에서 그들끼리 나누는 대화 속 대타 요구가 끊이질 않는다거나 대타를 너무 하지 않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쩐지 찔리는 기분도 어쩔 수가 없었다.



- 휴게시간에 매일 가던 카페



처음에는 너무 많은 상황을 고려해 줬다. 영어를 잘 못하는 것도, 차량이 없다는 것도, 일자리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도 이렇게나 고마운 사람들이 없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제대로 말도 잘 못 알아듣는 우리가, 어떻게 호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게에서 트라이얼도 없이 바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단 말인가…. 티아나와 세레나의 도움이 정말 컸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들에 놓여 있는 게 내가 너무 큰 흠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도 했다. 부정적이게도, 부족하고 결점이 많으니까, 오는 문제처럼 느껴졌다. 마치 약점에 잡힌 사람 같기도 하고 큰 빚을 진 기분이기도 했다. 갑자기 단호해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이대로 전부 들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이런 문제는 출근해서도 종종 부딪쳤다. 친해진 비아는 귀엽고 사랑스럽긴 했지만, 말괄량이에다 좋고 싫음이 분명한 성격의 친구였다. 자신의 역할이 FOH로 배정된 날은, 제발 바꿔 달라며 사정을 했다. FOH는 누구나 피곤하게 여기는 일이긴 했다.


이해하지만, 비아가 부탁하는 경우는 너무 잦았다. 나와 스케줄이 겹치는 날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겹치는 날은 무조건 바꿔 달라며 떼를 쓰곤 했다. 몇 번 바꿔주다 보니, 비아랑 제발 스케줄이 겹치지 않는 날을 바라게 됐고, 이거도 이거 나름 문제다 싶었다. 단호하게 거절해도 딱 잠시였다.


“비아! 너 오늘 토핑바 아니잖아!” 매니저가 말했다.

“으응 그래도 하고 싶은데 어떡해~”


그러니까, 자기가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도 토핑바에 들어오곤 하는 거다. 나름의 능력이었다.





쌓이고 쌓이다 보니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좋은 손님을 만나거나 워커와 재미난 시간을 보냈다면 하루 일을 마치고 뿌듯함을 안은 채 집으로 돌아가는데, 집에 다다르면 다시 출근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운되기도 했다. 그러면 하루에 택시만 무려 4번을 타는 일도 생긴다. 가까이 살면 좀 나으려나 싶어 가까이에 집도 알아보기도 했지만, 번화가라 그런지 집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아 보였다. 다른 일을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기껏 넣어줬는데, 완전히 줄행랑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을 듯했다. 아마 맞겠지만 말이다.


일주일에 가장 많이 시프트를 받은 사람을 조회하면, 나와 히로는 빠지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나는 누군가의 두, 세 배로 일하고 있기도 했다. ‘일 복이 터진 거구나’ 생각하면서, 농장에서 일하던 때와는 다르게 나빠져 가는 몸의 상태가 느껴졌다. 생리 주기도 벗어나고 늦은 밤에 저녁을 먹으니, 위도 자주 아팠다. 몸 망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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