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마치며
2년 간의 호주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 이제서야 거의 1년이 다 되어 간다. 어땠냐는 주변의 질문에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들을 때마다 짧게 망설이곤 했다. 단순히 재미있었다기엔 재미없는 일들도 많았다. 오히려 속상하던 일도 꽤 있었다. 그렇다고 그저 그랬다기에는 고작 해외살이라는 경험 정도라지만, 그저 그런 경험이라기엔 아까운 것도 사실이었다. 다사다난했던 이 시간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에는 어려웠다.
한국으로 돌아와 아빠와 함께 지냈다. 앞으로는 어떻게 할 예정이냐는 물음에 알바 앱을 뒤지던 손가락을 멈추고서는 좀 쉬고 싶다고 대답했다.
“호주 다녀온 거 그냥 흘려보내기 아깝지 않아?” 아빠가 물었다.
그러게. 나만 기억하는 호주가 기억 속에서 잊히는 건 확실히 아쉬운 일일 듯했다. 어쩌면 누군가한테 도움이 될지도 모를, 사실 그저 내 기억을 더듬는 일에 대해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글을 쓰기로 했다. 그 여정에서 나는 많은 도움을 받았다. 기억을 되짚는 일이 지나온 시간 속에서 잠시 살게 했고 그러므로 얻는 배움도 많았다. 물론 짚다 보면서 후회되는 일들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보았고 느꼈고 생각했던 게 다르게 다가오기도 했고, 주변을, 환경을, 그리고 결과적으로 나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돌아오고 나서야 내 세상이 조금 더 커졌다는 걸 느꼈다. 되짚어보고 나서야 깨닫게 됐다.
곰곰이 생각 중에 조금 쑥스러운 단어를 써서, 호주를 사랑이 가득했던 곳이었다고 정의 내리기로 했다. 그러다, 다정함도 많았는데 싶어 제목을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보고 듣고 느꼈던 그 모든 다정함도 모두 사랑이긴 했다.
“호주 다녀오고 나니까 어딘가 여유로워진 거 같아.”
나보다도 나를 잘 아는 미술학원 선생님이 말했다. ‘그래요?’ 하는 내 물음에,
“전에는 힘을 주며 사는 것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유순해진 느낌이랄까?”라며 대답했다.
한국에서의 나와 호주에서의 나는 내가 보기에도 달랐다. 물론 환경이 바뀌었으니, 장소와 상황에 따라 적응하는 건 맞다지만 굳이 비교라는 단어를 앞세워 말하자면 다른 건 많았다. 정말로 내가 바뀐 건지 혹은 환경에 맞추는 건지 모르는 나를 발견할 때면 자주 신기했고 어떤 것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건지 궁금해졌다.
꼬리에 무는 생각들은 결국 내가 보고 들은 것, 그리고 경험한 것에서 온다는 걸 깨달았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사랑이 많은 곳이라 말한 건,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많아진 걸지도 모르겠단 생각 말이다.
어릴 적부터 연애, 결혼, 가정과 같은 단어 아래에 있을 미래의 나를 상상하면 단 몇 초도 가지 않아 번뜩 정신이 들었다. 어린 나는 ‘어쩐지 나는 평생 혼자 살 거 같아.’ 그런 생각도 가끔 했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어떤 경계 안에 누군가를 넣는다는 건, 평생을 약속하거나 영원에 대해 맹세한다는 건 어딘가 이질적인 느낌이 있었다. 가정환경 탓인지 물으면 그것도 잘 모르겠다. 나는 내 가족들을 너무나 사랑하고 이 가정이 마음에 들고 행복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어느 결핍에서 못 헤어 나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아주 조금 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경우일 뿐,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 같은 건 아니었다. 사실 상상력이 별로 없다거나 너무나 먼 미래 같아 그려지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 삶은 아주 긴 기차를 탄 듯하다. 계속해서 달려가고 한 칸씩 걸어가고 어쩌다 돌아가기도 하고.
한참이나 아이의 얼굴에 눈을 떼지 못하는 어떤 아빠를 보다가 나의 아빠가 생각났고, 잔디밭에 앉아 엄마가 흥얼거리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아이를 보다가 우리 엄마가 생각이 났다. 어쩌다 가끔 보는 가족 같았는데 돌아보니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그런 가정이 무수히도 많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 깊은 생각에 빠지고 이상한 바람으로 남았다. 세상 모든 이들이 끝끝내 모두가 사랑받고 자랐기를, 누구나 그런 사랑이 있기를 바라게 됐다.
어느 특정한 곳에서만도 아니었고, 가족뿐만 아니었다. 바다에서, 근처 공원에서, 길을 걷다가도, 급하게 탄 트램 안에서 수많은 사랑을 엿보았다. 그냥 아주 사소한 것들 말이다. 예를 들면, 유모차와 함께 타려는 사람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눈을 떼지 않는다거나, 손을 내밀고 보는 모습이라던가 길거리의 노숙자에게 도시락을 건네주며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라던가, 주인 따라 수영하는 여러 강아지, 고양이나 토끼마저도 공원에 나와 쉰다거나, 어느 커플이 붙어 누워 독서한다거나 그런. 아주 사소하고도 평범한 장면 말이다. 그런데 아마 한국에서도 그런 장면은 많았을 거다. 그땐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거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본 사랑은 어쩐지 처음 마주하는 듯했다. 이런 자유롭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고 있을 때면 한국에서 무언가에 쫓기듯 산 내가 생각났고 일에 치여 지내는 엄마가 생각나고 헬스를 끊은 친구가 살기 위해서 운동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러다 나는 내 눈에 들어온 사랑과 다정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여유가 있는 사람, 다정한 사람,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다시 말해서, 마음의 어느 부분에는 늘 여유가 한 움큼 있어서 누군가 들어오고 받아들여지고 나가고 하는 것에 연연하지 않으며 가까이서든 멀리서든 다정한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욕심이려나? 그래서 글을 썼다. 적어두면 잊어버리기에는 쉽지 않을 테고, 나만 보는 글이 아니니 누군가에게 약속한 거 같고, 그러다 잊더라도 다시 찾아와 마음을 새기고 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어쩌면 단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주 큰 맹세를 한 듯 자신을 높이 사는 듯, 오바하는 양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부끄럽고 쑥스러운 단어를 계속해 뱉는 이유는 여태껏 사랑이나 다정 같은 단어가 무거워 잘 쓰지 못한 게 어리석은 거 같아서 단어의 무게를 줄이려 한다.
그래서 가족처럼 아꼈던 멀어진 친구와 함께할 수 없는 사랑했던 연인과, 배신당한 이들에게서, 후회되는 인연들과도, 받은 것만 많아서 미안한 이들에게도, 긴 시간을 함께했던 사람과, 아주 스치듯 만났던 사람과도, 떠올리고 또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담아 보내고 싶다. 행복이 오길, 사랑을 주고 나눌 수 있는 일이 자주 생기길, 다정한 순간들을 자주 마주치길.
그렇게 빌면, 내 안에서 무언가 가득 차는 듯하고 홀연히 빠져나가는 듯하다. 나 좋자고 하는 일일지도 모르는 마음가짐이 서로 좋은 일이 되길 바란다.
- 호주로 가기 1년 전, 서진이 예약해둔 메시지 그리고 자주 요리해주던 서진의 곰돌이 카레.
- 학원 다닐 때 싸주던 히로표 도시락. 이른 아침부터 인기 빵집 웨이팅해서 사온 제일 좋아하던 빵.
- 호주에서의 마지막을 행복하게 장식해 준 친구네와 내 동생
길고도 짧았던 호주에서의 여정. 이 글을 읽을 누군가가, 혹은 언젠가의 내가 살다 보니 놓쳤던 것들을 다시 둘러보는 시간을 한 번쯤 가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지나쳐 온 순간에도, 앞으로의 길에도 곳곳에서 다정과 사랑을 찾을 수 있길!
<이유있는 방랑>을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보내는 하루에, 이 글이 잠시라도 여유를 주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