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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호주 탐방기 !

채우고 덜어내기, 덜어내고 채우기

by euuna








콜린스 아파트와 1분 거리에는 맥도날드가 있다. 일을 마치고 나서, 땀 콜린스 아파트와 1분 거리에는 맥도날드가 있다. 일을 마치고 나서, 땀 식히려 들리기도 했고 짧은 공원 산책 후 돌아가는 길에도 들렸다. 가서 먹는 건 딱 하나, 0.5불 바닐라 아이스크림콘.


맛집 성지의 골목, 리버풀 거리에 있는 화덕피자 가게는 좁은 골목 사이에서 빨간 벽돌로 된 매력적인 곳이다. 건물로 들어오면 지하라고 말하기 애매한 곳으로 이어지는데, 피자와 치즈 냄새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나는 항상 뇨끼와Calabrese 피자를 먹었다. 뇨끼는 그 때마다 바뀌는데, 어떤 날은 새콤한 토마토 베이스였다가 어떤 날은 고소한 바질 페스토였다. 시켜서 나오는 대로 먹는다. 피자는 종류가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Calabrese. 쫀득한 도우랑 매콤한 소스가 취향에 잘 맞았다. 마지막 한 조각은 꼭 테이블에 비치된 칠리 오일 소스랑 같이 먹었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맛. 어쩌다 한 번 시켜 먹었던 투박한 티라미수는 커피향을 그득히 머금고 있었는데 혀에 닿자마자 녹아내렸다. 여기는 디저트도 잘하는구나 싶었다.




멜버른에서 유명한 카페를 찾는 건 일도 아니지만, 여러 유명한 카페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카페는 Path 카페다. 한적한 노스 멜버른에 있는 이곳은 통유리로 된 새하얀 작은 가게다. 원두 종류도 다양해 취향 따라 핸드드립을 마실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가장 즐겨 마신 건, 콜드브루다. 얼마나 자주 마셨는지. 이걸 어떻게 하면 한국에 가져갈 수 있을지 고민도 했었다. 심지어 같이 마신 히로는 어머니께 드린다며 한 병을 사서 일본으로 가져갔다. 햇살 좋은 날, 우중충한 날,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들렸던, 언제 가도 좋았던 곳이었다.





멜버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멜버른에서 가장 큰 시장 빅토리아 마켓에 갔다. 때는 여름이라, 한창 야시장이 열렸다. 어찌나 사람들이 많던지. 궁금한 나라 음식들을 여러 곳에서 사 와서 친구들과 모여 앉아 나눠 먹은 기억이 난다. 축제의 장으로만 여겼던 빅토리아 마켓은 본격적으로 멜버른에 살기 시작한 후부터 매 주마다 갔다. 가끔 한국에서도 장날이 되면 몇천 원을 들고 나가 누비던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나 자주 가진 않았을 거다. 식재료비를 아끼는 데는 빅토리아 시장 만한 곳이 없었다. ‘원달러, 원달러!’ 외쳐대는 상인들과 붐비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과일과 채소를 골라 담는다. 챙겨온 동전 지갑에서 동전을 탈탈 털어가며 산 것들을 쥐고 양손 무겁게 집으로 돌아갔다. 이 알뜰하고 쏠쏠한 구매가 한 주의 메뉴를 담당했다. 한국에서 지낼 때, 엄마가 장을 볼 때면 메모지에 어디 마트에서 무얼 사야 하는지 적는 걸 종종 본 적이 있다.


“왜 마트마다 사는 물건이 달라?”

“마트마다 잘하는 게 다르거든.”


같은 물건을 팔아도, 같은 가격이라 하더라도 마트마다 잘하는 게 다르다는 게 엄마의 답변이었다. 그러니까 적절히 비교해야 했다. 어떤 곳이 식재료 사기에 좋은지, 어떤 곳이 좋은 생필품을 팔고 있는지. 엄마의 내공이 무엇으로부터 쌓였는지 조금 이해가 됐다.


짧은 2년 생활에도 호주의 여러 마트를 비교할 수 있게 됐다. 여러 곳을 다니다 보니 시골의 로컬이나 작은 마트 사이에서도 어느 곳에서 어떤 제품이 더 나은지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균형 있는 식사와 생활 그리고 예산의 균형을 맞추는 걸 천천히 익혀갔다.


이렇게나 익숙한 곳을 떠난다니. 여전히 실감 나지 않았다. 곧 떠난다 하더라도 다시 꼭 돌아올 것만 같은 기분.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낯설었다. 미묘하리만큼 시원하고 후련하면서도 아쉽고 먹먹한 기분이었다. 그런 복합적인 마음 덕에 나는 지금 어떠한 상태라고 형형하기 어렵게 했다. 그렇게 멜버른을 떠났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가보지 못한 곳을 여행하고자 했다. 첫 여행지로는 ‘골드 코스트’였다. 서퍼들의 천국이라는 서퍼스 파라다이스로 향했다. 오랜 꿈 서핑. 서핑의 ‘서’자도 모르지만, 전날 예약해 둔 서핑 레슨에 종일 서핑 영상을 찾아봤다. 수강생들과 광장에 모여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두 명씩 짝을 이뤄 꽤 무거운 롱보드를 들고 해변으로 갔다.


리쉬(서핑보드와 발목을 연결하는 줄)를 차는 방법부터 기본자세와 엎드린 자세 그리고 파도를 잡는 법, 해들링(서핑 보드 위에서 팔로 물을 젓는 동작)에 대해서 익혔다. 저 멀리서부터 오는 파도를 우선 눈으로 점 찍은 후, ‘내가 올라탈 녀석이다!’ 싶으면 과감하게 보드에 오르면 된다. 모래사장 위, 보드를 올려두고 재빠르게 몸을 엎드렸다가 펴는 연습을 수도 없이 했다.

드디어 실전. 저 멀리서 가이드가 외쳤다.

“저거다 싶으면 잡아타!” 말이 쉽지. 몇 번이고 코 박고 넘어지기 일수였다.


연습한 건 전부 어디로 사라졌는지 덮쳐오는 파도에 힘없이 딸려 떠내려갔다. 그렇게 계속해서 엎어지고 고꾸라지고 가라앉길 반복했다. 바닷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목구멍은 따갑고 귀는 먹먹했다. 가이드는 쫄딱 젖어 헤롱이는 나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모든 연결이 부드러워야 파도를 즐길 수 있어.”

“긴장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올라타.”


주위를 둘러보니 전부 나 같은 사람들뿐이었다. 저 멀리 즐겁게 파도를 타는 이들도 몇몇 보였다. 더도 말고 저 스릴 딱 한 번만이라도 느껴봤으면! 동작이 여유 있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러 차례 시범을 보여주고 계속해 코치해 준 가이드 덕에 드디어 그 스릴을 경험했다.


정말 순간이었는데 시원하고 자유로웠다. 바다 위에 서다니! 이 맛에 서핑하는구나.


처음으로 오른 파도 위에서의 성취감과 짜릿함은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냥 잠시, 아주 잠시 너무 재미있는 걸 맛보기 숟가락으로 재빨리 먹은 기분. 오로지 파도 위의 내 몸에만 집중하는 느낌. 물결과 같이 흐르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파도와 함께 점차 모래사장 가까이로 밀려왔다. 안전한 착지 후, 가이드의 박수를 받았다.


“자- 이제 더 빠르게, 제대로 설 수 있겠어?””


다음은 디테일이다. 더 정교하게 균형과 자세를 잡는 코스였다. ‘정교’라는 단어 덕에 처음 성공했던 법도 잊을 뻔했다. 좋은 자세를 잡으려면 순간을 박차고 올라야 했다. 그래서 더욱이 나를 믿고 몸을 내던져야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파도 타는 게 익숙한 서퍼들처럼 쭉쭉 뻗은 모양새를 만들어 내기에 몇 시간은 내게 턱없이 부족할. 듯했다. 근육들이 땅땅하게 곤두선 채 긴장하고 있었다. 또다시 거듭 실패를 경험하고 드디어 섰다. 제대로! 그래, 이 정도면 됐다.




퍼스에서 지낼 때였다. 우기로 접어들던 중이라 늘 맑기만 하던 퍼스 날씨가 오락가락하던 때였다. 스카로보 비치 근처에는 샌드위치 가게가 있는데 샌드위치가 웬만한 사람들의 얼굴보다 컸다. 가끔 그 투박하고 거대한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 바다로 향했다. 그날도 샌드위치를 먹는데 방금까지 맑던 하늘에 성난 먹구름이 잔뜩 껴 있었다. 먹다 남은 샌드위치를 포장하고 해변 근처의 정류장으로 뛰어가는데, 해변에 사람이 있었다. 카이트 서핑을 하러 바다로 들어가는 서퍼였다. 긴 다리를 휘적이며 롱 보드를 안고 파도로 향하는 중이었다. 금세 파도 위에 오르더니 시원하게 바다를 가로지르는 거다. 그때 먹구름 사이로 햇빛 한 줄기가 일직선으로 파도를 쭉 내리쬐었다. 신기하고도 멋진 광경이었다. 그날 나는 호주를 떠나기 전, 한 번이라도 좋으니 호주 바다의 파도를 꼭 한번 타보고 싶다는. 꿈을 꿨다.


그깟 먹구름쯤이야. 싶어 보이는 서퍼가 부러워서 말이다.




맑은 날의 휴양지로 유명한 골드 코스트가 내내 흐렸다. 흐리고 바람이 꽤 불어서 순간 서핑을 걱정했다. 먹구름이 가득찬 하늘을 보다 문득, 내가 언제 호주에서의 서핑을 꿈꿨었는지 생각이 났다. 이보다 더 심한 날씨였을. 때였는데 말이다. 퍼스 날씨와는 비교되지 않는, 조금 흐린 날이지만 그런 날에 보드에 올라탄 경험 정도는 생겼다.






다음 날, 브리즈번으로 이동했다. 브리즈번에서 지낸다는 서진과 짧은 만남을 약속했는데 서진에게 사정이 생겨 결국 만날 수 없게 됐다. 그렇게 우리는 또 아쉬운 인사를 나눴다. 함께 호주에 와서 같이 돌아가겠거니 싶었는데 우리는 이제 너무나 다른 각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럼에도 언제 어디서든 서진을 응원하는 마음만큼은. 변치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길 바랐다.


브리즈번의 어느 공원에서 쉬다가 GOMA미술관으로 갔다. 미술관에는 신기하게도 연필과 스케치를 할 수 있는 종이, 그리고 드로잉 보드가 곳곳에 비치돼 있었다. 어린아이부터 돋보기안경을 쓴 할머니까지 자유분방히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작품을 보도 따라 그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이들도 있었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이 나라의 자유가, 이곳의 평화로움이 얼마나 좋았는지. 나도 잠시 앉아 짧은 스케치를 했다. 그리고 잔뜩 여유를 부리다 나왔다.



브리즈번에서의 마지막을 Moreton Island(모턴 아일랜드)에서 스노클링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생애 첫 스노클링이었다. 페리를 타고 한 시간 조금 넘게 이동했다. 날씨는 최상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과 뜨거운 햇살. 예약해 둔 투어에는 카약과 패들보드도 탈 수 있다고 했다. 스노클링만큼 기대되는 건 없었지만 짧게 카약을 탔다.


사실 수영을 할 줄 몰라서 수영할 줄 모르는 사람도 스노클링할 수 있는 건가 싶었다. 수영을 잘하는 히로에게 부탁해, 전날 부랴부랴 수영을 배웠지만 몸치에다 운동치인 나는 주구장창 꼬르륵 가라앉기만 했다. 인내심 가득한 히로 덕에 물에 몸을 띄우는 것 정도 가능해졌다. 그렇게 둥실둥실 뜨는 감각을 익혔을 때쯤 녹초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래, 뜨면 됐지 설마 죽기야 하겠어.’하는 심정으로 연습을 마쳤다.


모턴 아일랜드에는 15척의 난파선이 있다. 1960~1980년대에 이 섬 주변에 파도와 조류가 너무 강해서 정부에서는 노후된 배 15척을 가라앉혔다고 한다. 난파선을 방파제처럼 사용해, 작은 보트들이 정박할 수 있게 하려고 말이다. 그렇게 가라앉은 난파선은 인공 암초 역할을 하면서 물고기나 산호, 여러 해양 생명체의 집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다이버나 스노클링의 포인트가 되었다고 한다.





입구와 함께 맞닥뜨린 난파선은 생각보다 큰 크기에 깜짝 놀랐다. 물에 들어와서 확대돼 보이는 걸까. 정말 커다랗고 부식되고 녹이 슬어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그리고 곳곳에는 무성한 산호와 수많은 물고기가 넘실거렸다. 마치 아주 잘 꾸며진 커다란 어항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물고기랑 스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는데, 그건.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해졌다. 저 아래 발밑으로 가오리와 거북이가 지나가는 것도 봤다. 인어공주 OST는 머릿속에서 내내 재생되고 둥둥 뜨기만 하던 나는 어느새 서툰 방식으로 수영 비슷한 걸 하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기필코 수영을 배워야지. 그래서 숨조차 멈춰야 하는 이곳에서 유유히 유영해야지.’ 그런 결심도 했다. 그렇게 호주에서의 여행을 마쳤다.





멜버른에서 골드코스트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골드코스트에서 브리즈번으로 향하던 버스 안에서, 그리고 마지막 숙소 안에서 나는 틈틈이 한국에 보낼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편지를 썼다. 해외에서 보내는 마지막 편지. 어쩌면 내가 더 먼저 한국에 돌아갈지도 모르지만, 떠나는 여정에서 도착할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호주에서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썼다. 일본으로 떠난 친구들에게도, 한국에서 볼 친구들에게도, 사랑하는 동생에게도. 그렇게 여러 곳에서 여럿에게 안부를 묻고 글을 쓰던 때가 참 좋았다. 덜어내고 채워가며 호주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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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