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서 멀리서
“나 호주 갈까?”
친구 수정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고등학교 3학년, 같은 반이었던 수정은 제대로 장단이 잘 맞는 친구였다. 좋아하는 아이돌이 같아, 몇 마디 섞었을 뿐인데 어느새 둘도 없는 사이가 됐다. 수정은 내가 아는 친구 중에서 가장 좋은 감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작은 선물을 하나 할 때도, 누군가한테 노래를 하나 추천할 때도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의 깊이가 달랐다. 한편으로 패션 감각까지 좋아서 수정이 두르고 하고 있는 것들은 전부 본새가 났다.
근래에 막 시작한 일에만 몰두하다 보니, 제대로 된 휴식을 못 가졌다. 숨 좀 돌리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갑작스럽게 온 연락에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진짜로? 혼자서?”
“응. 너만 괜찮으면.”
수정은 긴 휴가를 만들어서 대략 일주일 동안 호주를 여행할 수 있다고 했다. 백수 탈출한 지도 한 달째, 얼마나 휴일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안 된대도 되도록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어떻게든!
호주에 오고 여러 친구로부터 여러 연락을 받았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함께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가까운 나라도 아닌 이곳에 함부로 오라 권하기가 어려웠다. 선뜻 시간과 마음을 낸 수정에게 무척 고마웠다.
장기 비행은 처음인 데다가 혼자 탑승도 처음이라는 수정의 이야기에 은근히 걱정스러웠지만, 철두철미하고 세심한 수정의 성격을 믿었다. 이동할 때마다 연락을 주고받고 드디어 시드니행 비행기에 탑승했다는 말에 집 청소를 마치고 캐리어를 쌌다.
가족도 아닌 친구라니! 그것도 수정이라니! 같이 보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곳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같이 나눌 이야기가 무척 기대됐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중이었다.
“큰일 났어. 멜버른행 비행기 놓칠 거 같아.”
다음 날, 씻고 나와 보니 수정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어쩌다가?!” 바로 전화를 걸었다.
시드니에서 멜버른으로 경유하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시드니행 비행기가 연착되면서 공항에 늦게 도착했고, 이미 멜버른행 비행기는 탑승 마감이 된 후였다는 거였다.
“나 영어도 제대로 할 수 없는데 큰일이다.”
무슨 이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선 카운터를 찾아가려 일러주고서 수정은 다시 전화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눈을 잔뜩 키우고 유심히 둘러보던 수정은 자신과 같은 처지인 사람들처럼 보이는 무리를 발견해 가게 되었다. 수정의 말에 의하면 어느 호주 가족들이 자신을 계속해서 챙겨주었다고 한다. 할 수 있는 말이 ‘땡큐’뿐이던 수정은 그 가족들 사이에서 약간의 챙김을 받으며 따라다녔단다.
평소 수정은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역할이지 챙김을 받는 역할은 아니었다. 큰 키에다가 믿음직한 면을 많이 가지고 있어 주변에 수정을 의지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런데, 그녀가, 오버를 보태서 생애 처음으로 남의 가족에게, 그것도 외국인 가족들 사이에서 챙김을 받다니. 상상만 해도 신기하고 웃겼다. 만나기도 전에 재미난 썰을 가져오는 친구에게 미안하지만 고마웠다.
가장 빠른 비행기로 예약을 잡아달라고 했더니, 다음 날 오전이 가장 빠르다고 했다. 이때부터는 약간 심각해졌다. 이 낯선 땅에서 낯선 언어로 하루를 보내야 할 수정이 걱정됐다.
“여기 한국 사람이 있어. 한국인 언니가 도와준대.”
다행스럽게도 한국인 언니 한 분이 수정에게 말을 걸어왔고 같이 호텔로 이동해, 저녁까지 함께 먹었다고 했다. 또 어떻게든 잘 헤쳐 나온 수정이, 그녀다워서 마음이 놓였다. 어렵사리 만난 수정은 반갑다 못해, 벅차기까지 했다.
“이게 얼마 만이야!”
“잘 왔어. 고생했어.”
부둥켜안고서 빙빙 돌다 곧바로 이동했다. 일주일이어도 짧은 시간, 하루까지 사라져 버렸으니 더 바쁘게 움직이고 열심히 말해야 했다. 하나씩 했다. 좋아하는 카페로 가서 따뜻한 플렛 화이트를 마시고 공원으로 가 걷고 앉고 눕고 파란 하늘 보면서 어쩌다 우리가 여기 호주에까지 와서 지난날에 대한 추억을 되새겨 보는지 신기해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짝지였을 때 일이다. 작가가 꿈이라는 내게 이런저런 이야깃거리를 가져다주면서 드라마라면 어떤 배우였으면 좋겠는지, 소설이라면 어떤 분위기의 작품이었으면 하는지 수정이 자주 운을 띠워주었다. 혼자 해왔던 상상을 옆에서 거들어 두 배로, 아니 몇 배로 키워가며 놀았다. 그 덕에 학교 가는 게 재미있었다.
‘오늘은 또 가서 어떤 이야기하면서 보내지.’
‘어떤 이야기 만들지.’
수정은 내가 가져온 이야기라면 담백하지만 충분한 호응을 해 주었고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네가 쓰는 이야기면 다 재미있을 거 같아.”
“나는 진짜 네 글 너무 기대돼. 나한테도 꼭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줘.”
진지하고도 깊은 눈을 하고서 이런 말도 했다. 크고 작게 내 꿈을 빌어주고 응원해 주고, 어떤 날은 제 말이 조금이라도 무게가 될까 싶어,
“그렇다고 부담 느끼면 안 돼. 네가 준비되고 보여주고 싶은 글이 생기면 보여줘. 나는 기다릴 수 있어.“
하고는 마음 놓이는 말까지 하는 거다. 그런 친구가 장차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걸려서 호주까지 날아와 주었다.
수정은 초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한 반에 40명이 넘는 데다 12개나 되는 반. 모두와 친해질 수 없었고 다시 같은 반 되기도 어려웠다. 같은 반이었어도 제대로 말도 섞어본 적 없는 수정이랑은 이름만 아는 사이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만났다. 학생 신분의 시작과 끝을 함께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전히 우리는 잘 지낸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가고 싶은 카페에 가서, 공원에서 흘러가는 계절을 느끼면서. 호주에서도 한국에 있는 것 같았다.
- 고3 시절 톡
수정이 가고 한 달이 지났다. 슬슬 멜버른을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나는 한국에서 중고 거래 앱을 열심히 애용했다. 사는 것보다는 팔거나 나눔을 많이 했었는데, 나에게는 더는 필요 없는 게 누군가에게 쓰임이 된다는 그 재미가 있어서 매일 갖다 날랐다. 하루에 3~4번도 물건을 싸는 나를 보면서 아버지는,
“살림살이 다 갖다 팔아서 부자 되겠다.”라며 농담도 던졌다. 팔다 팔다 더는 팔 게 없어서 친구나 가족의 처치 곤란 물건들도 팔아주었다.
호주에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나의 가구들과 여러 물건도 전부 팔고 나눔을 했다. 책상, 의자, 옷걸이, 행거, 옷, 협탁, 무드등, 가방 등. 많은 물건이 나왔다. 끝까지 깨끗하고 말끔히 정리하고 나올 수 있었다.
익숙한 물건도 좋았던 집도 이제 정리할 때였다. 올 때는 캐리어에 몸 하나뿐이었는데 갈 때는 왜 이리도 짐이 많은 건지. 나의 미련인 건지 추억인 건지 긴가민가했다.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사고 친구들과 나눌 것도 챙기고 앞으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갈 여행의 항공권을 끊었다. 여행을 생각하면 빨리 가고 싶은데 호주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시간이 더디게 가길 바랐다.
어쩌다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을까. 마지막 쉬프트를 받고 워커들과도 작별 인사를 나눴다. 마지막까지도 좋은 인연을 만들고 가서 행복하고 그럼에 감사했다. 시원하면서도 아쉽고 그런데도 뿌듯한 기분. 이렇게나 복합적인 감정은 아마 이 짧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거 같았다.
- 마지막 하우스, 콜린스도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