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단다. 주변의 도움과 관심 속에서 우리는 더러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타인으로부터의 관심이 지나치거나 과도할 경우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지.
임산부는 타인의 관심을 받기 쉬워. 커다란 배가 주는 외관 덕분이기도 하지만, 임산부는 사회적으로 배려받아야 할 존재라고 분명히 인식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 이러한 관심이 있어야 네가 안전하게 밖으로 나오지 않겠어?
오늘 얘기하려는 것은 따뜻한 관심이 아닌 조금은 불편한 관심이야.
먼저, 불쑥불쑥 나타나는 손이야. 엄마도 그렇지만 임신 중기가 넘어가고 배가 나오게 되면 임산부는 자신의 배를 공공재쯤으로 느끼게 될 거야. 그만큼 자주 만져지기(?) 때문이지. 커다란 임산부의 배는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 타인과 비교해 '툭 튀는' 외관에 신비롭기 그지없어. 저 커다란 배 안에 소중한 아기가 잠자고 있을까 생각하면 마치 그 큰 배가 '성역'처럼 느껴지기도 해. 그런데, 간혹 그러한 성역을 굳이 깨고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있지.
"여보, 나 오늘 회사에서 조금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어요."
엄마가 밥을 먹다 말고 수저를 내려놓고 얘기했어. 사뭇 진지한 표정을 보니 범상치 않은 일이라는 것이 느껴졌기에 아빠도 긴장한 채 듣고 있었어.
"응? 무슨 일인데?"
"심각한 건 아닌데요. 나랑 같은 사무실에 일하는 분이 계시는데, 오늘 여자 화장실에서 그분이 갑자기 내 배를 만지는 거예요."
"응? 밑도 끝도 없이 당신 배부터 만졌다고요?"
"아 그런 건 아니고, '어머! 벌써 배가 나오기 시작했네' 하면서 배에다 손을 올리고 문지르시는 거예요. 갑자기 툭! 나는 너무 당황해서 뭐라 말 도 못하고"
"엑? 남의 신체를 그렇게 막 만진다고요? 아무리 동성지간이지만 그건 좀 이상한데..."
"그렇죠? 그분은 절대 나쁜 뜻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좋은 뜻으로 관심 가져 주시는 건 알겠는데..."
"에이, 아무리 그래도 허락은 받아야 하지 않아요?"
"맞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만져봐도 돼?라고 하고 물어보고 만지는 건 더 웃긴 거 같기도 하고요. 이럴 때 참 난감해요. 뭐라고 해야 할지..."
엄마는 동료의 행위에 대해 좋다 나쁘다를 규정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았어. 아니 그렇게 양분해서 규정하고 싶지 않아 보였어.
"그래도 여보, 가족도 서로의 신체를 조심하는데, 재밌는 사람이네요. 어린 친구예요?"
"아니에요. 나이도 꽤 있으신 걸요."
"그럼 옛날 분이셔서 그런가 봐요. 당신 말대로 악의는 없을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다음에도 또 그러면 딱 잘라서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네, 그럴게요."
가족의 경우 이 '성역'을 더욱 쉽게 뚫고 들어와. 아빠의 여동생이자 네 고모도 그렇고, 네 외할머니도 엄마의 배를 보더니 기쁜 마음에 손부터 올리고 보았지. 엄마는 그래도 가족이 만지는 것이기에 특별히 싫은 기색을 보이진 않았지만, 어쨌든 타인의 '스킨십'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는 것 같았어. 임신 초기에는 네 외할머니와 엄마가 서먹서먹하게 지낼 때였는데, 엄마의 '임밍아웃'에 외할머니는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엄마를 얼싸안고 배부터 만지셨었거든. 아빠는 외할머니가 기뻐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다가도 엄마의 난처한 모습에 대놓고 웃을 수도 없었어. 외할머니의 거친 손길(?)에 엄마는 그대로 '얼음'이 되었거든. 아마 직장동료가 배를 만졌을 때도 비슷한 표정이었을 것 같아.
그다음엔 과도한 관심, 아니 지적이야. 이건 전자와 달리 너무나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것 같아. 아무런 대응을 안 하기엔 우리 기분이 나쁘고, 적극적으로 받아치자니 엄마와 너에게 영향이 갈 수도 있으니 어찌하기도 힘들었어. 얼마 전에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데 이런 일이 있었지.
"아이고~ 애기 엄마인가 보네요", "얼마나 됐어요?
임산부의 배가 점점 나올수록 이런 질문들을 받을 가능성은 높아져. 엄마는 처음엔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 것에 대해 다소 어색해하고 겸연쩍어하긴 했지만 나중엔 또 능숙하게 대처하더라고. 물론 지하철에서 많은 질문을 받을 때에는 다소 피곤하긴 했지만 말이야. 그래도 많은 분들이 덕담도 해주고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셨지.
다만 간혹, 엄마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 너의 배불뚝이 아빠와 엄마는 가끔 '배뽀뽀'라는 걸 해. '배뽀뽀'는 우리가 지은 이름인데, 서로의 배를 뽀뽀처럼 톡 하고 스치듯 가볍게 치는 애정표현이지. 아빠의 뱃살(?)을 네가 느꼈으면 하기도 해서 우리만의 '태동 자극 놀이'기도 했지.
어느 날 지하철에서 '배뽀뽀'를 하는데, 우릴 보고 있던 어떤 아주머니가 갑자기 손가락질을 하며 나무라기 시작했어.
"아니 임산부의 배를 그렇게 치면 어떡해요?"
엄마와 아빠는 둘 다 황당하여버렸어. 배뽀뽀의 시간은 엄마와 아빠가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기분 좋은 시간이었는데 한 순간에 무너진 느낌이었어. 엄마는 가뜩이나 다한증 때문에 긴장을 하면 손에서 땀을 주르륵 흘리곤 했는데, 그 상황에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엄마를 보고 있자니 아빠로서는 너무 걱정이 되더라.
우리가 왜 이 모르는 아주머니로부터 큰 소리를 듣고 지적을 받아야 하는 걸까? 정말 걱정이 된다면 조금 더 조용히 말해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혹은 '애기가 지진난 줄 알고 놀라는 건 아닐까요?' 같이 유머러스하게 표현을 해도 되고 말이야. 대화는 기술이라고 한다던데, 저렇게 큰 소리부터 듣자 하니 뭐라고 대꾸하기도 어렵더라. 그저 겸연쩍게 웃어넘겼지. 거기서 우리 생각을 우겨봤자, 엄마의 불안과 스트레스만 늘어나고 그게 다시 너에게로 갈 테니까.
불편해진 엄마의 심기를 위로하며 아빠는 지하철을 내리자마자 한 마디를 해주며 조용히 안아줬어.
"여보,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잖아."
"맞아요. 생각 안 하려고요. 우리 아기의 심기가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