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변화를 마주하며
아가야,
아빠는 지금 네가 엄마의 안에서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상상하며, 가슴 벅찬 시간을 보내고 있단다. 엄마 뱃속의 작은 우주가 조금씩 커져나갈 때, 아빠의 마음속에도 따뜻하고 신비로운 감정들이 피어나. 마법의 가루가 뿌려지는 그 감정은 아빠를 더욱 '어른'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아. 너도 조금씩 자라지만, 아빠도 너를 따라 성장한다고나 할까.
엄마는 네가 찾아온 후로 많은 변화를 겪고 있어. 엄마가 짊어지고 있는 무게가 얼마나 무거울지 아빠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워. 고된 마라톤의 한 걸음 한 걸음에서 너를 향한 엄마의 깊은 사랑과 강인함을 느껴져. 아침마다 힘겹게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볼 때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지만, 곧이어 씩씩하게 하루를 시작하려는 엄마의 눈빛에서 너를 향한 굳건한 의지를 본단다. 작은 씨앗을 품은 대지처럼, 엄마는 너를 키워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우웩"
엄마를 가장 크게 바꾼 것은 체형도, 피부도 아닌 입덧이야. 정말이지 180도로 바꿔놓았어.
엄마는 커피를 참 좋아했어. 아빠와 엄마는 결혼할 때 12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B사'의 커피머신을 장만해 왔지. 서로의 일과를 끝내고 조용한 밤 거실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한 잔 하며 각자 그날의 에피소드를 공유했어. 성가신 직장 상사에게 분노하고, 동료들과의 재밌었던 하루를 함께 나눴어. 커피머신은 좋은 향의 커피도 만들어 냈지만, 엄마와 아빠의 아름다운 시간들도 함께 만들어주었어.
그런 엄마가 너를 가지고 커피를 끊게 되었어. 8주 차가 지날 무렵, 엄마는 진한 커피의 향에 몸서리치며 고통스러워했어. 그렇게 우리의 커피머신은 아직까지 좋은 커피도, 엄마와 아빠의 감미로운 시간도 만들어내지 못했어. 그런 커피머신을 보며 엄마는 안타까워했지.
“우리 집은 항상 커피 향이 나는 집이었는데..."
“그러게요... 자기 이젠 커피 향만 들이마시면 헛구역질이 나오니까..."
"너무 안타까워요. 자기랑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수다 떨고 하는 게 나에게 정말 큰 기쁨이었는데, 이젠 그럴 시간이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슬픔이 밀려와요."
“금방 끝날 거예요. 아기 나오면, 우리 다시 그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야. 약속할게요."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의 입덧은 조금 나아지고, '디카페인'이라는 선택지도 했지만, 장기간 마시지 않다 보니 커피에 대한 욕구마저도 떨어졌어. 네가 뱃속에 있으면서 카페에 가도 줄곧 카페인이 없는 음료만 시켰거든.
엄마가 임신으로 먹지 못했던 음식이 또 하나가 있는데, 바로 '양념고기'야. 하루는 '남자의 소울푸드'라고도 불리는 제육볶음을 이마트에서 사 왔어. 제육볶음은 엄마가 임신하기 전에 아빠랑도 자주 해 먹던 음식이었지. 이마트에 장을 보러 간 아빠는 그날 '원 플러스 원'에 눈이 멀어 냉큼 집어왔단다. 엄마에게 요리를 해줄 생각에 잔뜩 부푼 채 말이야. 그런데 웬걸? 엄마는 아빠가 조리하는 내내 구역질을 멈추지 않았어.
"우웩... 자기야... 나 냄새가 너무 역해요."
"아... 어떡하지... 방금 굽기 시작했는데"
아빠는 눈앞이 하얘지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났어.
'이 많은 음식들을 버려야 하나? 어떻게 버리지?'라는 생각이 드는 찰나에 엄마는 자신은 괜찮으니 아빠 혼자만 밥을 먹어야 될 것 같다고 하면서 안방 문을 닫고 침대에 누웠어. 아빠는 괜히 내 탓이라는 생각에 머릿속이 멍해져 초점을 잃은 눈으로 제육볶음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어. 그냥 속에 쑤셔 넣었다고 하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아. 흐르는 물에 설거지를 하면서 양념들을 씻어내는데, 마치 내 잘못을 씻어내는 것 마냥 박박 닦아댔지. 그릇은 뽀드득한 소리가 날 정도로 깔끔했지만, 아빠의 미안함은 여전히 남아있었어. 지금 보면 참 후회가 돼. 그 한 팩의 음식이 뭐가 아깝다고, 혼자서 꾸역꾸역 먹고 있었는지.
굳게 닫힌 방문을 여는 것이 마치 엄마의 아픈 마음을 열고 들어가는 것 같아 너무 미안했어. 엄마는 아직 한 겨울 날씨에 창문을 활짝 연채 이불속에 웅크리고 있었어.
"차... 라도 마실래요?"
"고마워요. 나. 괜찮아요. 나도 모르게 자기 식사를 방해했네. 미안해요."
나지막이 속삭이는 엄마의 목소리에는, 고통을 굳건하게 이겨내려는 의지가 담겨있었어. 그런 엄마를 보면서 안타까움보다는 깊은 존경심마저 느껴졌지. 겸연쩍게 엄마에게 사과를 했어.
"너무 미안하네요."
“뭘 미안해요, 자기가 잘 못한 것도 아닌데, 나는 안 그래도 자기는 밥을 먹어야죠. 잘했어요”
“다시는 양념고기는 사면 안 되겠다. 커피에 양념고기에, 자기가 다 좋아했던 건데...”
“그러게요. 그런데 나도 모르게 구역질이 나서, 괜히 당신이 밥을 먹지 못했을까 봐 기분이 안 좋았어요. 그나저나 우리 뱃속의 아가는 생고기를 좋아하나 봐. 아주 유지비용(?)이 많이 드는 아가씨군?"
“하하 그러게요. 우리 아가는 비싼 고기를 좋아하는 아기인가 봐요."
인터넷에 보면 '입덧'으로 고생했다는 임산부들의 고충을 심심찮게 볼 수 있어. 입덧을 완화하게 해주는 신 맛의 음식이나 입덧 캔디 같은 것을 먹기도 한다만, 엄마는 그런 걸 먹지 않았어. 엄마는 자신의 입덧이 그저 네가 '반찬 투정'하는 것 같다며 귀엽게 보기도 했었지. 본인은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면서 말이야.
임신 후기로 갈수록 향이나 냄새로 인한 입덧은 사라졌지만, 양치덧이라는 새로운 복병을 만나서 사실상 엄마는 임신 기간 내내 입덧을 했어. 아빠는 저 멀리 욕실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헛구역질 소리에 눈을 질끈 감은적도 많았어.
그럼에도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견디는 엄마를 보면서 아빠는 새삼 가슴이 뭉클해지곤 했어. 엄마의 사랑과 헌신 덕분에, 우리 아가는 세상에 나올 준비를 건강하게 해나가고 있는 거겠지? 아빠도 더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마음속으로 수없이 다짐하게 된단다. 엄마와 함께 너를 맞이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아빠는 오늘도 엄마의 곁을 든든하게 지킬 거야.
엄마의 모든 변화는, 우리 가족에게 찾아온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의 첫 페이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