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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언제까지 소설 쓸래?

by 하린 Feb 25. 2025

"너 언제까지 소설 쓸래?"

어릴 때 초가집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하면 친구들은 소설 그만 쓰라고 이야기한다. 남들이 소설이라고 이야기하는 삶을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어서 좋다. 비교 대상이 없는 곳, 나무, 꽃, 자연이 때로는 부모이고 친구였던 추억이 있어서 좋다.


 오빠와 저녁에 호롱불 밑에서 교대로 숙제했다. 호롱불은 주위만 밝아서 조금 떨어지면 잘 보이지 않았다. 내 차례, 네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이 불행하다고 느껴본 적 없다. 반찬이 없어서 물에 간장만 넣고 밥 말아먹어도 좋았고, 김치에 보리밥만 넣고 끓여 먹어도 꿀맛이었다. 엄마가 칼국수를 만드는 날이면 오빠와 둘이서 턱을 괴고 엄마가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마지막 조금 남긴 꼬랑지를 불에 구워 먹기 위해서다. 불을 지펴 구워 먹는 그때의 맛은 지금은 찾을 수 없다.


아버지 51세, 엄마 43세에 경북 흥해에서 태어났다. 큰언니 82세, 작은언니 71세, 오빠 66세, 우리는 나이 터울이 많다. 태어날 때부터 큰언니는 결혼해서 부산에서 살았고, 작은 언니는 우리 집 경제를 책임져야 했기에 큰언니 집에서 함께 지냈다. 오빠는 내가 중학교 때 대학교에 다니기 위해 서울로 갔다. 아버지는 한 번 나가시면 거의 들어오지 않으셨지만 그나마 초등학교 2학년 때 이 세상에 계시지 않았다. 엄마는 행상을 했기에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집 바로 뒤에 산이 있었다. 초가집이었기에 태풍이 오면 산으로 인해 집이 무너질까 봐 밖에서 쪼그리고 지낼 때가 많았다. 우리 마을은 7~8가구뿐이었다. 뒷산에 가면 오토바이 모양의 나무가 있다. 틈난 나면 나무 위에 올라앉아 놀았고 진달래, 산딸기, 칡, 소나무 껍질이 주식이었다. 전기가 없으니 TV, 라디오도 없었다. 책이라고는 한참 떨어진 상가에 만화 보는 것이 다였다.


중학교 시절, 초가집에서 논에 지은 가건물인 스레트집으로 이사했다. 자랑하고 싶었다. 친구 몇 명 초대했다. "너희 집 이렇게 못 살았나?" 친구 한 명이 입을 쩍 벌리고 다물지를 못했다.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됐다. 한참 뒤 친구 생일이라고 초대했다. 친구 집은 지금 아파트처럼 거실도 있고 수세식 화장실이었다. 수세식 화장실 사용법을 몰라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의 방문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가난에 대한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고 도시락 반찬도 소시지 아니면 안 되었고 밥 위에는 계란후라이를 올려야 했다. 무엇을 하든지 친구보다 좋아야 했고 뒤지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마음이 예전처럼 편하지가 않았다. 친구가 파란 잉크를 쓰면 나도 파란 잉크를 사야 했고 핑클 파마를 하면 나도 했다.


365일이 모자라도록 술마시는 남편이지만 불만이 없었다. 아버지처럼 때리지도 않고 외박은 가끔 하지만 꼬박꼬박 들어오는 남편이 좋았다. 자랑하며 다녔다. 새벽 2~3시에 들어와도 기다렸다가 같이 잤다. 모두가 나처럼 사는 줄 알았다. 결혼 생활 16년쯤 지났을 때 우연히 친구 집에 가게 됐다. 큰 방에 싱글 침대가 2대 있었다.


"부부가 떨어져 자도 돼?"

"당연하지. 난 잘 때 답답하면 못 자"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면 결혼을 왜 해?'

친구 집 방문 이후 부부생활이 완전히 바뀌었다. 늦게 들어오면 안방 문을 잠겨버렸다. 부부는 무조건 같이 자야 하는 줄 알았던 내 생각이 깨졌다. 부부 사이가 금이 가기 시작했고 10년 가까이 쇼윈도 부부처럼 살았다.


"걱정 따위 지우고 비교 따위 버리니 암 걸릴 일도 독 퍼질 일도 없더라. 물론 근배에게 산다는 건 걱정거리로 가득했고 사람들의 하대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시선에서 나온 비교였고, 비교를 거부하자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불편한 편의점 2> 중에서 나오는 글이다. 비교 거리가 없던 시절에는 나무 하나만 있어도 되었고, 배 채울 칡 한 뿌리만 있어도 행복했다.


 어떤 삶을 살든 행복을 위해서는 자신만의 소중한 능력을 돌보고 키워나가면 된다. 5만 년 전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에 출연한 후 태어난 인구수는 1,080억 명이다. 많은 인원 중에 나와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초가집, 호롱불, 스레트집의 소설은 나를 슬프게 하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내 삶의 활력소이자 나를 지탱해 주는 디딤돌이다. 지금도 소설을 떠올리면 입꼬리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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