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 없이도 충분히 맛있는
집밥을 자주 먹다 보니 식재료 사는 일이 전보다 잦아졌다. 자연스레 물가에 조금 더 민감해졌고, 특히나 채소 가격을 보며 속상해지는 날들이 많아졌다. 애호박이나 오이, 토마토는 거의 늘 냉장고에 있어야 마음이 든든한데, 마음껏 채워 넣기에는 어려워진 너희들... 이런 때에도 부담 없이 내 마음과 냉장고를 든든히 채워주는 아이가 있었으니. 휘뚜루마뚜루의 대명사 양배추!
한 통을 분해하고 분류별로 담아두면 여기저기 요긴하게 쓰인다. 1/3쯤은 채 썰어서, 1/3쯤은 네모네모 볶음용, 1/3쯤은 숙쌈으로 나누어 놓는다. 비율은 그때그때 양배추와 나의 상황에 맞춰 바뀐다. 이렇게 다듬어 놓으면 버리는 것 거의 없이 양배추 한 통을 뿌실 수 있다.
아무튼, 수많은 양배추 활용 요리 중 신박하면서도 호불호가 적을 듯 한 ‘양배추알리오올리오’를 소개한다.
면 대신 채 썬 양배추를 활용하는 요리다.
*재료: 채 썬 양배추 한 줌, 대파채, 새우, 편마늘이나 다진 마늘, 페퍼론치노, 소금, 후추, 치킨스톡(혹은 참치액이나 굴소스)
- 해동시켜 씻고 물기 제거한 새우를 올리브유 두른 팬에 먼저 익혀준다. 80%쯤 익힌 후 그릇에 옮겨놓는다
- 새우 익히던 팬에 올리브유 조금 더 넣고 마늘을 볶는다. 이때 매콤하게 하고 싶다면 페퍼론치노를 약간 넣어 함께 볶는다
- 대파의 알싸함이 조금 거슬린다면 대파 먼저 팬에 넣어 볶아준다. 올리브유 필요시 조금 더 투하
- 대파가 숨이 좀 죽으면 채 썬 양배추를 넣고 숨이 살짝 죽는 정도로 볶아준 후, 소금과 후추 조금씩 넣어준다
- 80%쯤 익혀두었던 새우를 넣고 치킨스톡으로 간을 맞추어 볶는다. 간은 취향껏 맞추면 된다
미세먼지인지 그냥 흐린 건지 모를 꾸정꾸정한 날, 몹시 지친 오전을 보낸 후 오롯이 나만을 위해 준비했던 양배추알리오올리오와 곁들인 와인 한잔. 발치에는 언제나처럼 따뜻한 털복숭이 친구가 있는 오후. 그날의 여러 감각이 뒤섞여 이 한 그릇에 함께 담겼다.
온라인상의 비슷한 레시피들을 보면 팽이버섯을 함께 넣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팽이버섯을 선호하지 않아 제외하고 대파를 넣어보았다. 양배추만 있었다면 심심했을 요리에 대파가 들어가니 살짝 다른 식감과 풍미가 더해져서 풍성해진 느낌이다.
엔쵸비 대신으로 참치액이나 멸치액이 있다면 넣었을 텐데, 둘 다 없어서 치킨스톡을 넣었다. (참고로 까나리액은 별로라고 한다) 치킨스톡을 넣은 양배추알리오올리오의 맛은 아주 괜찮았다. 그러나 이날 이후로 나에게 참치액이 생겼으므로 다음에는 참치액을 활용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