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oke Jun 25. 2020

엄마는 내 글을 보고 울지를 못한다.

그렇지만 새는 알을 깨트려야 해요.

"엄마! 나 글 썼어.

브런치 심사에 낼 건데 한 번 봐줘."


나는 글을 써보는 것이 처음이다. 브런치 작가 심사를 기다리면서 서 내 글이 통과될 수 있을까, 의도가 잘 반영되었나, 주제가 명확한가, 읽기 지루하진 않은가 평가를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공교롭게도 내 글은 친구들 앞에서 꽁꽁 숨겨왔던 나의 과거, 나의 생활, 이를테면 가난한 생활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폭로 글이었으니 그 평가를 친구들이나 지인에게 맡길 수 없었다. 유일하게 엄마만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엄마에게 글을 보여준 건 그 역할만을 염두에 두고 서였다. 엄마를 속상하게 할 의도는 정말 없었다. 거기까진 생각도 못했다.


"어디 보자."


그동안 꽁꽁 감추어만 왔던 아픔을 털어놓은 글을 엄마와 함께 내려 읽는 동안 내 눈에는 눈물방울이 고였다. 이렇게 터져 나오기까지 얼마나 괴로웠던가. 그리고 내 아픔들은 아직 완벽히 치유되지 않았다. 글을 쓰면서 한 번, 다 쓴 글을 읽으면서 한 번 씩 울컥하는 이유가 그것이리라. 여리고 감수성 많은 엄마도 마찬가지이겠거니 하고 글을 다 읽은 엄마 눈을 살피는데, 엄마는 울지를 못한다. 엄마의 눈동자는 회색이었다. 영혼이 사라진 눈동자.


"나는 왜 눈물이 나지... 엄마는 눈물 안나?"

"엄마는 울 수가 없어. 엄마는 지금 죄인이야."


그렇다. 내가 피해자임을 자처함과 동시에 엄마를 피의자로 만들고 만 것이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으나 엄마 스스로 그렇게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남부끄럽지 않은 환경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가난과의 전쟁 최전선에서 진두지휘하는 여장군으로써 전쟁에 몰두하는 동안 잊어왔던 죄책감을 내가 다시 상기시킨 것이다. 나는 "가난 때문에, 그리고 이 환경을 창피해하는 나 자신 때문에 힘들었다"라고 말하는 건데. 엄마에게는 "엄마 때문에 힘들었어"로 들리는 것이다. 미처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독자들은 내 글이 가난 타령이라고, 진부한 신파극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가난밖에 할 이야기가 없냐고. 그런 우울한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는 없냐고. 미안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브런치에서 할 이야기는 그것밖에 없다. 다른 이야기들은 블로그나 인스타로 충분히 할 수 있다. 나는 현실에서, 나를 아는 사람들이 득실득실한 블로그나 인스타에서는 하지 못하는 말. 그렇지만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는 그 말들을 하러 브런치를 찾는다. "저 되게 화목한 가정에서 잘 큰 것처럼 보이시죠! 좋은 직업에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는 것처럼 보이시죠! 사실 아니에요! 저희 집 가난해요! 그게 부끄러웠답니다! 그래서 잘 사는 것처럼 포장해왔어요, 속으신 것처럼! 그런데 이제 가짜 연극에 진절머리가 나요! 저는 사실 이런 사람입니다!"


잘 사는 것을 플렉스 해야 하는 세상. 인스타에는 명품 립스틱, 명품 지갑과 가방, 차와 레스토랑, 호텔과 해외여행이 난무한다. 난 못 사는 것을 플렉스 해보련다. 왜, 그건 플렉스 하면 안 되나? 못 사는 덕분에 그 나이에 겪지 않아도 되는 상황들을 겪었고, 그 나이에 지지 않아도 되는 책임을 나눠졌고, 홀로 남겨져 '이제 네가 가장이다' 하는 신의 계시를 받아봤고, 영화 속 주인공처럼 쏟아지는 비에 홀딱 젖으며 주저앉아 펑펑 울어도 봤으니 더 많이 살았다고 자신한다. 많이 가진 것보다, 많이 살아본 게 중요한 거 아닌가? 이제는 그것을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고 그림으로든 글로든 표현하려는 것이다. 가난이 부끄러워 피할 궁리만 하던 어린 소녀가 성장한 것이다. 가난을 똑바로 바라보고 소재로 삼아 글을 쓸 만큼.


그래서 가난으로 글을 써보자 했을 때는 사실 신이 났다. 연예인이 프로그램에 나와서 넓고 광활한 집을 소개하는 것처럼. 나도 우리 집을 소개해보리라. 작은 여자 둘이 사는 작은 집도 쓰고(https://brunch.co.kr/@booke/1), 오르막을 가지 못하는 자동차도 쓰고(https://brunch.co.kr/@booke/10). 내 샌들과 겨울 코트도 쓰리라(https://brunch.co.kr/@booke/3). 이렇게 쓸게 많다니! 신이 났던 게 분명하다. 그리고 글들이 이제는 엄마의 가슴으로 날아가 비수로 꽂힌다. 나의 글이 엄마를 단죄한다. 엄마는 속상해서 울지를 못한다.        





      

"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 



작은 집과 오르막을 못 가는 자동차를 쓰면서 자책하고 속상해할 엄마가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글은 계속되어야 한다. 약 30년을 웅크린 새가 이제야 알에서 나오려고 버둥대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금을 놓치면 나는 또 얼마나 웅크려 있어야 할까. 잘 꾸며진 껍데기가 아닌 나 자신으로 일어서기 위해서. 나 자신을 찾기 위해서. 나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기 위해서. 나 자신 속에서 한 발 앞으로 가기 위해서. 나는 엄마라는 세계, 우리 집이라는 세계를 깨뜨려야만 한다.


엄마의 가슴은 무너져 내릴 거고 그 점이 나도 참 속상하다. 하지만 딸의 운명은 항상 엄마의 희생을 요구하듯이. 이번에도 엄마에게, 깨지는 세계를 견뎌내는 희생을 부탁한다. 여태껏 그래 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엄마는 너그럽게, 희생을 견디겠다고 했다. 딸이 자아를 찾아가는 길이라면, 기꺼이. 우리 엄마는 이런 사람이다. 가난 속에서도 고고한 영혼. 나는 이런 사람의 딸이다. 그래서 내가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가슴이 도려진 엄마의 핏빛 응원을 받으며 나는 이렇게 글을 한 편 더 썼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