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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훈 Mar 0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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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그리고 한없는 숨으로    


태어나서 괴로워하고. 사랑하다가 죽는다. 너는 이제 막 말한다.

우렁차게 울어대며 때로는 환하게 웃으며. 무엇인가 시작되었다고.

그러다가 짐짓 웃으며. 때로는 슬픈 표정으로. 너는 눈부터 자라나고.

세계는 열렸고. 사물은 떨렸고. 너에게도 희망이란 게 있느냐고.

점잖은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들으면서. 너는 운동장 한쪽에서 모래를 찬다.

발에 부러 충격을 주었다. 더 많은 길을 걷겠다고. 그때는 그랬다.

그러나 너는 손부터 자라고. 손이 있는 자리에는 세계가 있어야 했고.

그러므로 너의 눈 속에는 너의 손부터 들어왔고. 영문 없이 괴로워하면서.

손이 하는 일을 눈이 모르지 않게 해야 했고. 어떤 밤에는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

하루라는 작은 돌담을 그냥 건너지 못해. 죄책감과 부끄러움으로. 

푸르게 떠오른 달에 꼭 베일 것 같아. 과거는 잔뜩 비겁해져 있잖아.

순간은 써지지 않았고. 너는 가린다. 기다린다. 어떤 빛이 어둠 뒤로 사라진다.

천변을 뛰어다니면서. 너는 또 하루를 살리고. 즉사시키고. 소생하고.

무언가에 역습을 당하면서. 그만 생을 놓친 것 같다고. 끝없는 허상의

연속으로. 유감스럽게도. 그것. 삶의 무의미함에 일그러지면서.

너는 삶을 생각하지 않았고. 못했고. 겉은 푸르렀고. 시커먼 기도를 올리면서.

손을 비비면서. 다시 여기를 느끼면서. 죽음까지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냐고.

실컷 대수롭지 않아 했던 것들이 아름다운 효험으로 다가올 때.

너는 너의 무얼 도려낼 수 있겠냐고.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두려울까.

너는 말할 수 없었고. 왜냐하면 살아있었고. 용서를 구걸했다. 모욕이라는.

궁핍한 심장을 만지면서. 옆에서는 부쩍 늙은 누군가 코를 골았고. 

어떤 밤. 너는 문득 외롭고 울적하다. 잔털이 솟구치며 일어난다.

분명히 멈춘 상태에서. 너는 전속력으로 멀어진다. 눈을 뜰 수도 감을 수도 없이.

너의 손 하나. 눈의 눈 하나. 너의 형상. 어떤 흰 연기가. 너의 어귀에서.

머뭇거리며 내려앉을 곳을 찾는 깃털처럼. 희미하게 묻히고. 너는 잠 밑으로 떨어진다. 

세계는 있었다. 단지 조금 살아있었고. 많이 죽었을 뿐이었고. 

모순과 모호함의 장막이 드리우는 순간. 햇빛에 바랜 핏빛을 하고. 

어둠 속으로 스며들면. 가장 먼저 숨의 기운부터 느껴진다. 미지근한 숨.

그래. 단지. 불온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그 미지근한 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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