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 많이 등장하는 대사 중 최고로 믿기 어려운 명대사(?)이지 않을까 싶다. 어머니들이 집안에 며느리를 처음 들이면서 이런 말씀을 종종 하신다. 이런 시어머니의 마음이 정말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할까 하는 궁금함이 나만의 합리적 의심일까.
집마다 다르겠지만 요즘같이 하나 아니면 둘이 전부인 자녀를 키우며 당신이 애지중지해서 키운 아들을 생판 남인 며느리에게 내어 주면서 먼지 털듯이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는 어머니는 없다. 이런 감정을 최대한 누그러트리고 정리해서 자식 마음 편하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한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물론 정말 며느리가 예쁘고, 하는 행동이 기특해서 그 순간만큼은 진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 배 아파서 낳은 자식보다 더 자식 같은 남은 있을 수 없다.
아내는 어머니를 항상 어려워했다. 결혼 초부터 자신의 아들도 거뜬히 이겨내는 시어머니가 편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 편하게 친정 한 번 다녀온다는 얘기하기도 두려워했고, 안부 전화를 이틀만 거르면 어머니와 통화가 끝날 때까지 내내 걱정하는 표정이 얼굴 한 가득일 때가 많았다. 어머니 당신은 아들 전화는 그렇게 기다리지 않으면서 며느리가 이틀만 전화하지 않아도 대뜸 뼈 있는 무거운 말씀을 하시곤 해서 아내를 찬 바람 씽씽부는 한 겨울 날씨와 같이 몸과 마음을 얼려버리곤 했다.
"어, 그래. 난 이틀 넘게 전화가 안 와서 너희 집에 무슨 일 있나 했구나."
뭐 이런 식이 었다. 매일 드리는 전화가 당신께서도 귀찮을 법한데 아내를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길들이기라도 계속하는 건지 한 번을 마음 편하게 해주지 않았다. 매번 이런 모습은 아니었지만 변하지 않는 어머니의 태도에 아내는 좀처럼 오래된 고부간의 익숙함도 없이 편안함을 갖기는 더욱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에게 찾아든 큰 병환, 아무리 좋아진 의학 기술이라고 하더라도 전이가 된 4기의 암은 정복할 수 없는 영역이었고, 그래도 우리 가족은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어머니는 항암 목적으로 짧게는 2주에 한 번, 길게는 8주에 한 번씩 우리 집에 올라오셨고, 이렇게 올라오신 부모님은 길게는 일주일, 짧게는 3~4일을 머물렀다 가셨다.
아내는 그리 불편했던 시어머니가 미울 법도 한데 항암 치료 중인 어머니를 위해 좋은 음식, 입맛에 맞는 음식을 열심히 준비했고, 철 바뀔 때마다 어머니 옷 한 벌 사드리려 애썼다. 어머니 심심하지 않게 말동무도 잘해드리며 늘 어머니의 곁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15년이 넘은 며느리의 내공(지금은 19년 차)도 한몫했겠지만 말이다. 자식들이 채우지 못하는 정성과 애정을 며느리에게서 받는다는 생각을 하셨는지 돌아서는 차편을 탈 때면 늘 아내에게 '이번에도 고생했고, 고맙다'라는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어머니가 마지막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시던 날, 어머니는 병원에서 치료 중단 선언을 받았고, 담당교수는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두려운 이야기를 했다. 물론 어머니에게는 그 누구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당신께서도 무언가 직감을 하신 것 같이 표정이 많이 어두웠었다. KTX를 타기 위해 서울역으로 모셔다 드렸을 때 열차가 출발하기 전 때마침 어머니 전화로 아내가 전화를 했다. 통화를 끊을 때 즈음 어머니는 마치 그동안 고생했던 아내의 마음을 위로하고, 작별 인사를 미리 하는 것 같은 말씀을 주셨다.
"그래, 영희야. 고생 많았다. 엄마 이제 내려갈게... 영희야, 안녕..."
평소와는 다른 작별 인사를 해서 난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아내 말로는 이 통화를 끊고 나서 자신도 무척이나 울었다고 했다. 어머니 당신은 뭔가 직감을 하셨었는지 아내에게 따뜻한 마지막 인사를 했고, 18년이 넘게 딸 아닌 며느리로 지낸 아내에게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하고, 아픈 인사를 건넸다.
그리 내려가셔서 영영 다시 우리 집을 오시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마지막은 병환이라는 긴 터널에서 자유로워졌고, 영원히 아프지 않은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라고 우리는 지금도 생각한다. 당신의 남편도, 딸도, 아들도 아닌 마지막을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던 어머니. 18년간 아내가 당신을 어려워했었던 걸 아셨는지 가시는 길에 아내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