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는 우리 부부에게 온 첫째 아이라 무척이나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부모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아들 녀석은 아기 때는 꽤나 심한 잠투정으로 우리의 밤을 많이도 괴롭혔다. 어릴 때는 고집이 너무 강해서 아이가 고집을 피운 날이면 아내는 에너지 소모가 극심했고, 퇴근해서 이런 아내의 얼굴을 보면 '나 힘들어요'하고 쓰여있을 정도로 너무 피곤해 보일 때가 많았다. 오죽했으면 아내는 그 나이 또래의 훈육은 대부분 엄마들이 했지만 아들을 정작 혼낼 일이 있으면 아이를 내게 전적으로 맡기고는 했었다.
아들은 무언가 틀어지거나 내키지 않으면 더 이상 우리와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듯 입을 닫아버리거나, 아니면 말도 안 되는 말 트집을 잡아서 인내심을 극한으로 몰아세우고는 했었다. 어떤 날은 유치원을 등원해야 하는 시간에 틀어져서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고, 유치원 버스가 픽업 오는 집 앞 골목까지는 어떻게든 구슬려서 데리고 갔지만 유치원 버스를 타려던 순간에 아들의 마음이 바뀌었는지 결국은 버스를 타지 않으려고 버텼다. 앞에서는 유치원 등원 담당 선생님이 끌고, 뒤에서는 아내가 미는 우스운 그림이 나올 때도 있었다. 그날 더 웃겼던 사실은 어른 둘이 이리 밀고, 당겨봤으나 7살짜리 사내아이의 버티는 힘을 이기지 못해 5분간의 실랑이 뒤 결국은 등원을 포기하고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난 가끔 '사랑의 매'를 들었다. 훈육을 이유로 매를 들었지만 아이와의 이런 힘겨루기는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좋지 않은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있다는 걸 알고 이런 훈육 방법을 포기했었다. 아들과 내게도 이런 훈육은 그리 큰 도움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까지도 내게는 아들 녀석을 훈육하면서 들었던 '사랑'이라는 이름의 매가 상처로 남아있고, 가끔 그 순간은 아들의 기억에서 잊히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얼마 전에 돌아가셨던 어머니도 비슷한 말씀으로 눈물을 떨구셨던 적이 있다. 그리 어린 나이도 아니었던 난(당시 13살) 오락실에서 2시간을 넘게 집에 가지 않고 놀다가 어머니에게 붙들렸고, 그때 장사를 하셨던 어머니는 가게문을 닫고, 겁먹은 날 데리고 집에 갔다.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어머니는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고, 난 어머니의 화난 얼굴에 놀라 꼼짝없이 집에 끌려 들어갔다. 집에 가서 어머니는 사정없이 매를 드셨고, 어른이 되고도 그 순간은 잊히지 않았다. 암 투병으로 몸도 마음도 힘이 드셨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 그때 이야기를 했었고, 많이 후회하고 또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셨던 기억이 난다. 마음이 아팠지만 당시 난 그날의 어머니가 이해도, 용서도 되지 않았다. 물론 돌아가신 지금에는 훌훌 털고 가셨으면 하는 마음뿐이지만.
세상에 사랑의 매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훈육을 가장한 폭력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내가 하는 훈육은 사랑의 매라고 착각하는 분들이 있다. 난 아이들의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아이들과 대화하고, 아이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아이들의 눈높이로 가르쳐주면 아이는 조금 더 부모와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하며, 하루하루를 성장해 나갈 것이다. 아이는 어른이 아니다. 아이들은 어떻게 성장하느냐에 따라 좋은 어른도, 나쁜 어른도 될 수가 있다. 이건 단순히 아이만의 몫이 아닌 이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우리 어른의 몫이기도 하다.
난 나와 아이들에게 주어진 매 순간마다 따뜻한 행동과 행복한 말을 건네려고 노력한다. 이제는 어엿한 고등학생으로 장성해 예쁜 여자 친구도 있고,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에게 인기도 좋은 요즘 말로 '인싸' 캐릭터로 성장한 아들이 대견하다. 하지만 이렇게 다 큰 아들도 입시의 무게에 어깨가 처져있을 때면 나는 아직 어린 날의 아들이 생각난다. 마음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 어제를 기억한다.
공부하느라 지치고, 피곤해 보일 때면 어떻게라도 조금 더 쉬었으면, 더 잤으면 하는 안쓰러워하는 부모 마음으로. 18살의 아들은 어느새 고집을 부리며 버텼던 그 작았던 7살 아들로 오버랩되며 눈이 시려온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많은 우리아이들에게 아직은 더 내어줄, 더 해주고 싶은 부모 마음이 더 간절히 들 때가 많다. 과거의 하루하루가 소중했던 만큼 아이들에게도 오늘 그리고 다가올 내일의하루하루가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걸 잊지 않으면 좀 더 좋은 부모, 좋은 어른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