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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ug 24. 2020

이제 얼굴 성형만 하면 되겠네

내 첫 직장에는 부러운 동료가 있었다

"철수야, 우리 집 강남 아니고, 서초라니까."


내가 첫 사회생활을 하는데 큰 힘이 되고, 버팀이 되었던 건 친구 같은 직장 동기들 때문이었다. 중소기업 공채로 세 명이 함께 입사하면서 우리의 직장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두 동기는 나보다 한 살 어렸지만 나이는 정말 우리들에겐 숫자에 불과했다. 오늘은 두 동기 녀석 중 한 명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녀석은 누가 봐도 배경이 완벽했다. 집은 강남이었고, 부모님이 건물도 있어서 형제는 좀 있었지만 돈에 얽매이는 성격은 아니었다. 대학도 좋은 학교를 다녔고, 영어까지 네이티브 수준이었다. 게다가 성격까지 초긍정 마인드에 착하기까지 다. 사람 사귐에 거침이 없었고, 매사에 걱정이 없는 성격도 직장에서 빨리 적응하는데 한몫했다. 있는 집 자식인데도 있는  ''을 하지 않아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난 이런 동기가 너무 부러웠다.


  혈기왕성하고, 거칠 것이 없을 것 같았던 20대의 끝자락이었지만 입사해보니 대부분의 선배들이 까마득해 보였고, 그나마 말이라도 붙일 수 있는 존재가 동기란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서로  존칭을 써가며 동기들끼리 말을 건넸지만 한 달이 체 안되어서 우린 서로 말을 놓고 편하게 이야기하는 사이가 되었고, 이내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전우가 되었다.  


  서로의 이야기를 하며 난 동기에게 좋은 학교에, 영어 성적도 좋은데 왜 이렇게 작은 회사로 입사했냐고 물었고 동기의 대답에 조금은 어이없었고, 녀석의 천진난만한 성격에 그만 ''하고 터지고 말았다. 그 당시 동기가 포기했던 회사 중에 외국계 기업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형호야, 학교도 H대 나오고, 영어 토익도 점수가 그렇게 좋은데 왜 지금 회사에 입사한 거야."

 "응, 입사 결정 난 곳이 몇 군데 있는데 이 회사가 집에서 제일 가깝거든. 자전거 타고 20분도 안 걸려."  


  우린 한 팀에서 오랫동안 같은 일을 했고, 녀석은 전문지식에서는 조금은 허술한 면을 보였지만 유들 유들한 성격에 능숙한 영어실력으로 부족한 많은 부분을 매우는 듯 보였다. 특히 동기가 남들이 생각지도 못하는 아이디어나 기발한 이야기를 할 때면 옆에서 듣는 나조차도 '어떻게 하면 저런 생각을 할까' 싶을 정도였다.


  같은 팀에서 같은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좋은 점도 있지만 의도치 않은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길 때도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준비성이 철저하고, 꼼꼼한 성격인 난 동기와 비교하여 전문적인 지식이나 문서 정리 능력은 좋았다. 하지만 내가 가지지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거나, 어떤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는 성격, 뛰어난 영어실력까지 서로가 너무 달랐기에 우리에겐 의도하지 않게 비교의 대상이 될 때가 있었다.


 '김 대리하고, 박 대리는 둘이 섞어놨으면 좋겠어.  달라도 너무 달라'

 '이번 말레이시아 출장은 박 대리가 같이 가는 걸로 해. 영어를 잘하니 함께 가는 우리가 편해'

 '이번 프로젝트는 김 대리가 마무리 해. 꼼꼼하게 업무 처리 잘하니까 이번 업무 마무리도 잘할 거라 믿어'  

  우리의 성격과 업무 능력에 맞추어 관리자가 업무를 할당하는 건 당연했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멘트들도 곁들이는 문제 때문에 아주 가끔은 서로에게 질투나 시기심이 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그리 자주 오지 않았고, 긴 시간을 함께하며 서로의 장단점을 잘 알고 협업하여 좀 더 친해진 계기가 되었다.


  4년 6개월, 긴 시간 동안 한 팀에서 일하며 우린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첫 직장에서의 사원, 대리 시절을 함께 했다. 그렇게 계속될 것 같았던 우리의 첫 직장 생활은 동기의 이직으로 끝이 났다. 동기가 떠난 후 6개월이 체 안되어서 나 또한 다른 회사로 이직하게 됐다. 이렇게 끝날 것 같았던 우리 인연은 처음 이직하고 적응에 고생할 때쯤 한 동안 뜸했던 동기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전화를 받고 점심을 함께 하자는 녀석의 제안이 너무도 반가웠다. 동기는 내가 근무하는 회사의 위치를 물어보고서는 11시 40분에 데리러 가겠으니 회사 건물 앞에 나와있으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시간은 어느덧 동기약속시간이 다 되었고, 난 약속한 대로 큰길에 서있었다. 약속 시간이 다 되어서 갑자기 내 앞에 매끈하게 잘 생긴 BMW 한 대가 정차했고, 조수석 창문이 내려가며 자연스레 고개를 숙인 난 동기의 밝은 모습이 눈에 들어와 깜짝 놀랐다.


 "철수야, 얼른 타. 밥 먹으러 가자."

 "오, 이거 새로 뽑은 거야?  멋진데."

 "뽑은 지 얼마 안 됐어. 그냥 구경 갔다가 계약해버렸지 뭐야. 크크."

 "역시 넌 강남의 아들이야. 대단해. 망설임이 없어."

 "하하, 돈이 많이 모자랐는데 엄마가 돈 주신다고 해서 덜컥 계약했지 뭐야. 그리고 나 강남 아니고, 서초라니까."


  그렇게 난 동기의 새 차에 몸을 밀어 넣었고, 회사 사람들이 보란 듯이 창문을 열고 차는 힘차게 출발했다. 뒷 이야기지만 이날 BMW에 타는 날 보고 '쑥덕쑥덕' 거리는 이야기들이 회사 여기저기에 있었다고 한다. 아마 지금으로부터 15년도 더 된 일이니 그때만 해도 직장인이 BMW 타고 다니는 친구가 있으면 조금은 가십거리이지 않았을까 싶다.


  동기가 그 차를 타고 다닌 이후로 선배들과 OB모임을 할 때면 다들 비슷한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고는 한다.  


 "형호는 좋은 직장에, 대기업 부럽지 않은 연봉에, 집도 강남이고, 차도 외제차를 장만했으니 하나만 갖추면 되겠네. 성형으로 얼굴만 딱 하면 완벽해."


  우리 동기들은 각자의 일상과 바쁜 육아 등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소식을 전하고, 가끔은 얼굴을 본다. 물론 서로의 경조사에는 당연히 참석을 하려고 애쓴다. 직장생활에서 동기애는 빼놓을 수가 없다. 그것도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만났던 첫 동기는 더 그런 듯하다. 자주 연락은 못하지만 다들 오래오래 회사 잘 다니고, 건강하길 조용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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