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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un 18. 2021

아내가 딸이고, 제가 사위라니요

두 친구를 잃은 아버지를 위한 우리 가족의 응원

 "그래 내게도 날 늘 걱정하는 자식들이 있다는 걸 잠깐 잊었나 보다. 아빠 힘낼게"



얼마 전 아버지가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오셨다. 어머니가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고 남은 가족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아버지의 건강을 더 신경 쓰는 눈치다. 아버지 당신께서도 예전엔 나라에서 하는 건강검진을 한 번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부쩍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실 생각으로 꾸준히 건강관리를 하는 듯싶다.


동생이 재직 중인 회사는 부모님의 건강검진까지 회사 복지에 포함되어 있다. 올해는 작년에 코로나로 받지 못했던 아버지 건강검진을 일찌감치 예약해 놓았다. 아버지는 동생이 얘기한 대로 금주와 금식으로 속을 비우고 내시경 검사까지 모두 받으셨다. 다행히 일흔이 넘으신 나이에 받아보는 첫 대장 내시경임에도 아주 작은 용종만 발견되어 3년 뒤에 다시 검사받으면 되겠다는 의사의 소견만 들었다. 아버지는 이틀간 동생집에 머물렀다 건강검진을 받고서는 우리 집에 오셨다. 아버지 한 번씩 서울로 올라오시면 이렇게 동생집과 우리 집을 번갈아서 며칠씩 머물고는 다시 집으로 내려가신다. 아마도 건강하실 때 한 번이라도 자식들 곁에 머물고 싶어서인 듯싶다.


아버지는 작년 어머니 제사 때 오셨다가 얼마 전까지 오시지 못했으니 정확히 6개월 만이었다. 건강검진받은 날은 좋아하시는 술도 드시지 않으시고, 식사 양도 적당히 조절하시는 눈치였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 내외와 술을 한잔 하는 내가 괜스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동생 내외가 돌아가고 그날 오후 조용히 TV를 보던 아버지가 덤덤하게 친구분 얘길 꺼냈다.


아버지에게는 아주 오래전부터 만나오던  명의 친구가 있다. 아버지를 통해 얘기를 자주 들어서 나도 아버지 친구의 이름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편찮으실 때도 아버지 친구분들은 어머니 병문안을 자주와 밖에서 식사도 함께 하시고, 술도 가끔씩 했었다. 아버지가 술 드시던 걸 싫어하던 어머니도 두 분 친구들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는 아버지가 술을 드셔도 싫은 내색을 일절 하시지 않으셨다. 그만큼 오래된 친구고, 좋은 친구라는 걸 어머니도 잘 아셨때문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도 아버지께 가장 힘이 돼주었던 친구들이다. 아무리 자식이 있어도 함께 살지 않는 자식보다는 같은 지역에 살면서 자주 찾아오는 친구가 아버지께는 더 힘이 되고, 응원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최근까지 함께 자주 만나던 친구들이 두 분 다 건강을 이유로 더 이상 만남을 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철수야, 니 수철이 아저씨 기억 하제? 왜 있잖아. 아버지 하고 제일 친한 친구. 올 초에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친구 말이다"

 "네, 알죠. 안 그래도 여쭤보려고 했는데 수철이 아저씨는 조금 괜찮아지셨어요?"

 "한 동안 코로나 때문에 계속 카톡만 주고받았는데. 한 동안 연락을 해도 카톡을 안 보더구나"

 "가족분들이나 다른 친구분들과는 연락해 보셨어요?"

 "그 친군 가족이랑 연락 안 하고 산지 꽤 됐어. 그래서 혹시나 다른 분이 보면 연락을 달라고 카톡을 보냈지"

 "그래서요? 아저씨나 주변 지인분들 연락이 되셨어요"

 "나도 4월에는 바쁜 일 때문에 신경을 못썼는데..."

한참을 입을 떼다 말다 하시던 아버지는 어두워진 낯빛으로 다시 말씀을 이어가셨다.

 "니들 집 올라오기 며칠 전에 알고 지낸 형님한테서 연락을 받았는데 수철이가 죽었다고 하더구나. 그것도 한 달이나 지났다고 그러더라"


한 동안 아버지는 차오르는 감정 때문에 말씀을 잇지 못하셨다.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조금 진정이 되셨는지 나머지 친구분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나머지 친한 친구 한분도 요양병원에 계신데 그리 긴 시간이 남지 않았다고 하셨다. 덤덤하게 뱉은 말에 아버지가 지금 얼마나 힘이 드신 지, 마음의 무게가 얼마나 크신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께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라서 그 순간만큼은 조용히 아버지 옆에서 TV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아내는 조금은 무겁다 못해 어색해 보이기까지 한 우리 부자에게 외출을 제안했다. 외출의 목적은 아버지의 여름옷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어머니 생전엔 아버지 옷은 어머니가 모두 봐주고 함께 쇼핑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혼자되시고 나서는 근사한 옷은 고사하고, 새로 산 옷조차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더욱 아버지가 입고 오신 오래된 셔츠와 바지가 아내 눈에 밟혔나 보다.


그렇게 찾아간 의류 매장에서 아내는 아버지에게 어울릴법한 셔츠와 바지를 골라 입어보실 수 있게 권했다. 세일을 한다고 해서 통 크게 재킷까지 골라 아버지에게 권했고, 마지못해 재킷을 입으신 아버지에게 잘 어울린다고 한껏 부추기기까지 했다. 아무리 세일이라고 하지만 이름 있는 브랜드였고, 셔츠 두벌과 바지에다 재킷 까지다 보니 가격 또한 만만치 않았다. 금액을 알고서는 아버지가 거절하려고 했지만 이미 막무가내인 아내를 아버지도 말릴 수가 없었다. 이런 아내와 아버지의 실랑이(?)에 계산을 하던 아버지와 동년배쯤 되어 보이는 의류 매장 사장님이 아내와 아버지 사이가 너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너무 좋으시겠어요. 따님이 너무 아버지에게 잘하시네요. 사위도 이렇게 함께 와서 장인 옷 고르는 게 쉽지 않은데"

 "저희 애들이 저를 좀 많이 신경 쓰는 편입니다. 그나저나 여긴 제 딸이 아니고 며느립니다"

 "네? 하하, 어쩐지 사위라고 하기엔 아드님이 선생님을 너무 닮은 것 같더라고요"


그날 저녁, 조금은 기분이 가벼워진 아버지가 가볍게 맥주 한 잔을 하면서 아내와 내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아버지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따뜻한 눈빛과 함께.


 "그래 내게도 날 늘 걱정하는 자식들이 있다는 걸 잠깐 잊었나 보다. 아빠 힘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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