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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May 24. 2021

난 가끔 아내에게 뺨 좀 맞는 남자다

아내를 위해 손 내밀고, 귀 기울여 들어주는 건 남편의 몫입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


얼마 전 직장 동료들과 식사하는 자리를 가졌다. 식사 중 평소에도 나를 신기하게 생각했던 여자 동료가 자신의 고민을 내게 털어놨다. 그 동료는 우리 가족의 신기하리만치 행복한 일상을 늘 궁금해했었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내 의견을 물었다.


 "김 부장님은 언니(내 아내)가 이유도 없이 화내고, 짜증내면 어떻게 해요?"

 "어쩌겠어요. 들어주고, 받아줘야죠. 뭔가 힘들고, 짜증 나는 일이 있으니까 그러겠지 하죠"

 "어떻게 그러세요. 전 요즘 회사 스트레스 때문에 집에 고스란히 그 짜증을 가지고 가서 별일 아닌 일로도 아이를 혼내는 저를 가끔 봐요. 남편이라도 있으면 쏟아부을 텐데 이 사람이 일이 많아서 매일 늦으니"

 "많이 힘드시겠어요. 저도 예전에는 아내가 이유도 없이 제게 화내고, 짜증 내는 일을 겪을 때는 많이 힘들었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그런 상황들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 거죠"

 "하하, 저희 남편은 그렇게 짜증내면 바로 따져 물어요. 내가 잘못한 문제도 아닌데 당신이 알아서 풀고, 해결하라고요"


나도 예전에는 그런 상황이 무척이나 힘들고, 이해가 가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아니 정확히는 어떤 이유인지도 모른 채 몰아세워진다는 것이 많이 혼란스러웠다. 특히 아내의 기분이 저기압일 때에는 어김없이 내게 파고드는 송곳 같은 차디찬 말, 시선들이 있었다. 평소에도 그런 분위기를 견디기 힘들어했지만 이런 때에 아내의 지인이나, 친구가 갑자기 전화가 올 때가 있다. 전화를 받는 아내는 어김없이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목소리로 통화하며 웃곤 했다. 이런 아내 모습을 보며 난 종종 인내심의 한계를 느낄 때가 많았다. 결국 인내심이 한계치를 넘은 날은 어김없이 아내에게 따져 물어봤다. 


 '내겐 사소한 문제로도 시비조의 날 선 말들로 차갑게 뱉어내면서 돌아서면 다른 사람들하고는 어떻게 웃을 수 있어요?'


아내는 그럼 누구한테 그러냐고, 자신이 제일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는 거라고 말하곤 했다. 내게 돌아온 이런 아내의 대답은 그때는 정말 이해가 안 가는 당황스러운 답변이었다.


예전엔 굳이 부딪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언쟁이 일어나는 이해되지 않은 상황을 많이 겪었다. 이십 년 넘게 살다 보니 우리 부부는 언젠가부터 싸우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면서 그렇게 서로를 알고, 이해하고, 날을 새우지 않아도 되는 법을 배웠다. 시간이 지나며 아내와의 이런 마찰을 피하거나, 풀 수 있는 노하우가 내게 생기기 시작했다.


보통의 남자들은 아내가 이유 없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면 자신의 잘못이 없음을 이해시키려고 대화를 시작한다. 자신은 어떠한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다는 결백을 증명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결국 이런 결백을 증명하고 난 후에는 '그럼 내게 왜 그래'라는 순서의 전개를 밟는 경우가 많다. 보통의 남자들은 이런 경우 논리 싸움이 아닌 공감과 이해가 필요한 시간임을 알지 못한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결혼한 여성들은 육체뿐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털리는 육아, 워킹맘, 고부 문제 등에서 백 퍼센트 자유롭지는 못하다. 많은 남자들은 이런 문제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공감하지 못한다. 많은 부부간의 언쟁이나 말다툼의 이유는 아주 사소한 문제에서 불거진다. 곳곳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로 자신도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짜증이나 화가 끓어오르기도 한다. 이렇게 힘들 때 결국은 누군가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자신도,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도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이런 문제 해결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인 남편의 몫이다. 그런 날이 자주가 아니라면 접근 방법도 그리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문제로 아내가 힘든 날은 조금은 더 귀 기울여 들어주고, 아내를 이해하기 힘들면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내, 내 아이 엄마의 정신 건강을 비싸지 않은 치료비를 지불하고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는 속담이 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화가 나서 내 뺨을 친다면 뭐 한 대쯤은 맞아주는 것도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큰 그림이 아닐까.


내 아내도 육아 스트레스로 이런 이유 없는 짜증, 화가 많았던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아내를 이해하고,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난 피하지 않았고,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많이 애썼다. 이럴 때마다 아내를 데리고 산책도 나가고, 분위기 좋은 노천 술집에서 맥주 한 잔 하며 아내의 '눈 흘김'을 하트 '뿅뿅'한 시선으로 되받아치곤 했다.


부부 사이도 관계의 문제다. 내 아내나, 내 남편이 어렵고, 힘들어할 때면 손을 내밀고, 말하는 입보다는 들어주는 귀를 상대방에게 더 가까이 둬야 한다. 사소한 문제도 현명하게 서로 풀어가고, 상대방을 이해하면 부부 사이의 문제 되는 일도 점점 더 줄어들지 않을까. 불행은 변화하지 않는 사람의 오늘이고, 행복은 실천하는 당신이 받을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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