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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pr 26. 2021

너무나 소중한 아내의 첫 월급

아내가 좋아하는 일을 앞으로도 꾸준히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고마워요. 영희 씨. 이제 지금 하는 일 그만할 때까지는 이 가방 메고 다니면 되겠네요"



지난달부터 아내는 18년 만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다시'라는 말이 어색할 만큼 아내는 꽤 오랜 기간 아이들의 엄마, 내 아내로만 살아왔다. 결혼 초까지 의류 회사 본사 영업직으로 일했던 게 마지막이니 오히려 지금 하는 일이 '처음'이라는 표현이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아이들이 커가면서 조금씩 미뤄왔던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했다. 그러더니 얼마 전 자신이 준비해 오던 일을 시작했다. 꿈꾸던 일을 위해 몇 달간 농협 대학교를 다니며 기본 원예 과정을 수료했고, 또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세 달이 넘는 시간을 실습과 수업을 병행했다. 


자격시험을 보는데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원예 관련 자격시험이라 일반 자격증 시험처럼 고사장이 많이 분포되어 있지 않았다. 시험을 보기 위해 아내는 고양시에서 경기도 광주가 아닌 전라도 광주까지 시험을 보러 가기도 했었다. 물론 시험 접수를 늦게 해서 경기도권과 서울은 모든 시험장 인원이 차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이렇게 자신의 새로운 도전위해 한 발, 한 발 내딛던 아내가 드디어 일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 맡았던 일은 김포시 도시관리공단 사업 부분 공원 장미 전정 작업이었다. 장미 가시에 여러 군데 찔려 아픔도 있었지만 일을 끝내고 돌아온 아내의 표정만은 파란 하늘빛처럼 밝았다. 이 일을 시작으로 서울식물원, 부천 시청 꽃 식재까지 바쁜 나날을 2~3주간 보냈다. 처음엔 18년이나 일을 하지 않았던 터라 긴장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한다는 설렘에 체력도 약한 아내는 일을 다녀와서도 피곤해 하기는 했지만 너무도 씩씩했다. 


 "철수 씨, 오늘 갔던 서울 식물원 작업은 너무 좋았어요. 배울 것도 많은 것 같고, 해 놓고 나니 근사하더라고요"

 "그래요? 사진 찍어 놓은 거 있으면 좀 봐요"

 "잠시만요. 응, 여기 있네요. 많이 찍지는 못했어요"

 "우와, 근사하네요. 멋진데요. 다음에 서울 식물원 한 번 함께 가봐요. 영희 씨 해놓은 작업 직접 보면 너무 좋을 거 같아요"

 "네, 그나저나 지금처럼 일이 이렇게 매주 , 번씩만 있으면 딱 좋을 것 같아요. 더 자주 하면 애들한테도 미안하고, 몸도 버티기 힘들 수도 있고요"

 "그러게요. 일주일에 딱 번이 영희 씨 몸 생각해서도 딱 좋은 거 같아요"


하지만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아내는 그렇게 일을 시작하고 3주 동안은 기대했던 것처럼 꾸준히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 후 2주가 넘는 시간 동안은 일이 들어오지 않았다. 회사 말로는 진행되는 일들이 지방일이 많아서 아내와 아내의 동료가 있는 팀에게는 할당할 일이 없다고 했다. 처음 일을 맡을 때부터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도 있고 해서 지방 일까지는 어렵다는 얘기를 미리 했었다. 그래서 아내는 지금 2주간 일이 없는 건 회사 차원의 배려라고 좋게, 좋게 생각하고 있다. 아내는 당장 다음 주에 일이 잡혀 있기는 하지만 2주간 일을 쉬었더니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새로 시작한 일이 더 이상 진척이 되지 않거나 계약한 회사에서 일을 주지 않을까 봐 조금 걱정하고 있었다. 일이 들어오지 않아 고민하는 아내에게 조금은 여유를 갖고 기다리라는 의미로 난 농담을 하곤 한다. '영희 씨가 일이 없다고 먹고살기 힘들 정도는 아니어서 참 다행이에요'라고. 조금은 편하게 마음먹고 기다리라는 말이지만 듣는 아내에게는 얼마나 와닿을지는 아내의 웃는 표정만 봐서는 아직 모르겠다. 


그렇게 일을 시작한 지 4주가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내가 갑자기 내게 보고 있던 스마트폰 화면을  밀었다. 갑자기 눈에 들어온 화면에는 남성용 백팩이 화면 가득 있었고, 아내는 내게 어떠냐고 물었다.


 "이거 어때요? 너무 심플한가. 우선 이것부터 봐요. 철수 씨"

 "갑자기 가방은 왜요? 나야 심플한 게 좋죠. 내 가방 사주게요?"

 "응, 내가 일 시작하면서 월급 받으면 철수 씨 가방 사주려고 했었어요. 오늘 월급 들어왔거든요"

 "와우, 정말요? 에이, 첫 월급인데 영희 씨 사고 싶은 거 사요. 일도 많이 안 해서 급여도 많지 않을 텐데"

 "아뇨. 애들 책가방 사줄 때 괜히 철수 씨한테 미안하더라고요. 애들은 비싼 브랜드 가방 백화점에서 사줬는데 우리 신랑 가방은 이마트에서 사줘서요. 그것도 벌써 매고 다닌 지 4년은 넘어서 가방 바닥도 낡았더라고요"

 "고마워요. 영희 씨. 근데 이 브랜드 비쌀 텐데 괜찮겠어요?"


난 그렇게 아내가 골라준 가방을 구매하기로 결정했고, 며칠 뒤 가방은 집으로 배송이 되어 왔다. 아내가 18년 만에 처음 받은 월급. 그 소중한 돈으로 내게 가방을 선물했다. 평소에 필요한 옷이나, 가방을 살 때와는 기분이 많이 달랐다. 가드너라는 직업이 밖에서 몸을 쓰며 일하는 직업이다 보니 아내는 그 돈을 벌기 위해 며칠을 구슬땀을 흘렸을게 뻔했다. 안 그래도 좋지 않은 허리를 숙였다 폈다를 반복하며 꽤나 고생하며 일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4주가 되는 동안  몇 번 일이 잡히지 않아 계약직인 아내에게 들어온 돈도 얼마 되지 않았을 듯하다. 그런 와중에 많은 돈을 내 가방 사려고 지출했을 생각을 하니 받은 가방의 무게가 꽤나 무겁게 느껴졌다. 아내가 첫 월급으로 사준 가방을 메고 난 오늘도 출근한다. 가방 가득 아내의 마음을 함께 싣고서 말이다.



 "할아버지, 사람은 힘들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행복할까요? 아니면 자신이 잘하는 일을 좋아하며 하는 게 행복할까요?

 "고진고래(苦盡苦來)라고 했다. 고생 끝에 또 고생 온다고. 기왕 힘든 거 자신이 좋아하는 일하며 힘들며 행복한 게 낫지 않겠냐"


얼마 전 즐겨보는 드라마 한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과 할아버지가 나누던 대화가 기억난다. 사람의 대화에서 많은 부분 공감되고, 이해돼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런 고민은 우리도 모두 알고 있지만 쉽게 실천이 안 되는 게 현실이고, 그래서 쉽지 않은 게 인생인 듯하다. 그런 점에서 아내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몸이 힘들고, 고된 것이니 그 고됨도 잊을 만큼 무척 행복한 사람이지 싶다. 


2주간 일이 없어서 쉬었던 아내는 이번 주에는 오랜만에 일을 나간다. 이번에도 서울 식물원을 예쁘게 꾸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내가 작업한 식물원을 찾아 행복하길 바라며 오늘도 아내의 출근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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