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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Oct 21. 2021

잘 쓰면 좋은 관계에도 도움되네요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다

 "안녕하세요, 이사님. 잘 지내시죠?"

 "네, 잘 지냅니다. 철수 씨는 잘 지내요?"


자주까지는 아니지만 일 년에 몇 번 통화를 하지 않는 지인분이 한 달도 안된 사이에 또 전화를 주셨다. 일로 만난 사이 기는 하지만 20년 가까이를 알고 지낸 사이여서 그런지 1년에 한 번을 보기 힘든 사이임에도 꽤 익숙하고, 불편하지 않다. 사회에 나와 맺은 관계 중에 그런대로 많이 가까운 지인 중 한 분이다. 갑작스러운 전화로 조금 놀라긴 했지만 불편하지 않은 사이여서 평소와 같이 안부를 묻고는 당연히 전화를 한 목적이 있을 듯해서 단도직입적으로 전화한 이유를 물었다.


 "철수 씨, 혹시 이직할 생각 없어?"


내가 한 물음에 돌아온 그의 대답이 또 질문이었다. 갑자기 들어온 이직에 대한 의견이었지만 최근 고민을 하고 있었던 터라 반갑기도,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우선 사무실에서 받기에는 불편한 전화라는 생각으로 자리를 벗어나 사무실을 나왔고, 그의 대답에 잠깐의 망설임 후에 다시 질문으로 대답했다.


 "당연히 늘 생각하고 있죠. 어디 소개해 주시게요?"


그는 마치 내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소개해 줄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답해줬고 다시 질문으로 무언가 뿌듯해하는 마음을 담아 다시 질문으로 응수했다. 현재 연봉이 얼마냐고. 그렇게 그분은 지금 이직하는 회사로의 브리지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물론 이직하는 회사의 대표님도 예전에 일하면서 알고 지낸 지인분 중 한 분이었지만 그래도 브리지 역할을 해준 지인이 없었다면 내겐 여섯 번째 직장은 조금 더 먼 이야기가 됐을 것이다.


얼마 전에 읽었던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에서 주인공 독고의 독백 중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사람들 간의 시작과 끝은 모두 관계에서 비롯되고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통이라는 도구가 필요하다.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이런 관계라는 연결된 선 속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도, 나쁜 관계로 선을 지우거나 끊어버릴 수도 있다. 또한 이렇게 선을 긋고 맺은 관계에서 그 관계를 통해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 선을 그리고, 또 그 선 위에 또 다른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형태이고, 방법이다. 그 선이 조금은 심플하게 그려질 수도 있고, 복잡하게 선을 잇고 그려 그물망 같은 구조의 복잡한 관계 형성을 맺을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살아갈 수는 없다. 작게는 가족부터 시작이지만 학교를 다니면서는 친구들과의 관계에 몰두하고,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관계가 이어질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관계에서 위로받기도 하고, 이런 관계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없으면 외롭지만, 있으면 힘들고 피곤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관계에 대해 득과 실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모든 존재는 이런 관계를 통해서 더 빛이 나고, 힘을 얻기 마련이다. 특별할 것 없는 '나'라는 존재라도 관계를 통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될 수도 있음은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이다. 이런 생각만으로 충분히 관계와 소통은 그 의미가 크다.


얼마 전 새로 입사하는 회사의 입사일을 최종 조정했다. 처음 얘기했던 입사일보다 일주일 이상을 더 미뤄달라고 대표에게 요청드렸다. 흔쾌히 요청을 수락했던 대표가 얼마 전 다시 연락이 왔다. 연락한 주요 목적은 최초 입사일로 결정했던 날에 입사하게 되면 맡아줘야 할 업무가 있었는데 쉬는 동안 하루 정도만 업무를 도와주면 안 되냐는 부탁이었다. 단호히 거절을 할 수 없는 부탁이었고,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 때문에 그렇게 하겠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막상 요청 메일을 받고 확인했더니 내 기대와는 달리 업무의 양은 가늠이 되지 않았고, 십 년 만에 받은 휴식일을 일하는데 반납해야 할 상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서 거절하기로 최종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물론 최대한 예의 있고, 정중하게. 물론 위트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약간의 노력을 보태서 아래와 같이 메일을 써봤다.


 '(메일 내용 중)............. 기왕 쉬고 오라고 하셨으니 마음 편하게 잘 쉬다가 갈 수 있게 해 주시면 대표님에 대한 존경심(?)과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한층 더 커질 듯합니다............. 대표님의 탁월한 이해심과 선택을 기대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고, 전화기 너머로 들린 그의 목소리는 나의 위트와 노력에 보답하듯 밝으면서도 짧고, 불편하지 않게 할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김 이사, 메일 잘 받았고 그렇게 해. 입사하고 보자고"


잠시의 불편한 고민이었지만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잠깐의 노력으로 이전의 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지도 않았고, 한 발 더 나아가 상대방에게 조금 더 좋은 인상을 심어 줄 수도 있다. 물론 말이 아닌 글(메일)을 선택한 이유는 체질상 오글거리는 멘트는 자신이 없었고, 글을 직업적으로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조금 더 실수 없이 정확한 의도나 목적으로 쓰인 글의 힘을 잘 알기에 글을 선택했다. 덕분에 난 퇴사 후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오롯이 쉴 수 있게 됐고, 십 년의 시간 동안 소비되었던 내 몸안의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됐다.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새로운 관계를 그릴 것이고, 지금까지 이어져온 중요한 관계는 소홀히 생각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앞으로는 새로운 관계보다 지금까지 관계를 조금 더 굵은 선으로 덧칠하고 선명한 관계만을 선택하며 집중해야 할 시기라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새로운 관계에서도 앞으로 꾸준히 이어갈 관계인지 아닌지 조심스럽고, 현명하게 판단해 처세해야겠다. 관계도 소통도 어느 정도의 노력은 필요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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