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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18. 2021
살아보니 학교 성적이 꼭 인생 성적은 아니더구나
부담을 덜고, 편한 마음으로 수능을 보길 빌어봅니다
"철수 씨, 민수 A대 1차 합격했어요 "
수능을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아들이 수시로 지원한 학교 중 한 곳이 1차 서류 합격자를 발표했다. 처음 입학 원서를 쓸 때만 해도 안정권으로 생각했던 곳이어서 아들은 크게 부담을 갖지 않고 당연히 합격을 기다렸던 곳 중 한 곳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도 시간이 지나 1차 합격자 발표일이 다가오자 아들의 초조함은 부쩍 눈에 띄었다. 하루하루 아들의 심리 상태가 눈에 띄게 달라 그날의 상태를 가늠할 수가 없을 정도일 때가 많았다. 어느 날엔 늦은 시간 독서실에서 귀가해서 아내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수다를 떨다가도, 어떤 날은 저녁 먹는 내내 한마디 말이 없이 저녁만 먹고 독서실에 가는 날도 많았다.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 아들이 지원한 대학교 중 한 곳인 A 대학교 수시 1차 서류 합격자 발표가 있었고, 아들은 당당히 1차 합격자에 이름을 올렸다. 가슴을 조리기는 했지만 예년 합격자 평균보다 좋은 성적이었던 아들의 1차 합격은 예견된 일이었다. 그렇게 합격 문자를 받아 든 아들의 얼굴은 한결 편해 보였다. 하지만 잠깐 편해 보이던 얼굴도 면접 준비로 다시 긴장한 빛이 역력했고, 자신감 떨어진 얼굴이 되어 면접 날짜가 가까워오자 다시 심한 부담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늘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이 많았던 아들이 당연히 면접도 잘 치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수시 접수 때부터 알게 된 사실이지만 1,2명 앞에서 면접을 보는 형태의 자리에는 취약하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는 쉬운 일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산 하나는 넘었지만 어찌 되었건 아들의 면접 합격을 위해 뭐래도 도움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아들을 돕기 위해 아내와 난 면접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아들을 우리 앞에 마주 앉혀놓고 생활기록부를 뒤적여가며 가상 면접을 치렀다. 어떤 아이들처럼 학원을 보내 면접 코칭까지 받을 형편은 안되었지만 회사에서 면접관으로 신입, 경력사원 채용 면접의 경험을 살려 나름 신중하게 질문들을 골랐다. 하지만 자식 앞이고, 수험생 면접은 처음이라 몇 번의 질문만 하고 난 입을 닫았고, 오히려 아내가 부드럽고 날카롭게 질문들을 이어갔다. 가상 면접이 끝나고 우린 나름 면접을 복귀하며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마무리를 지었고, 그날 이후 조금은 편해진 아들 얼굴을 보며 면접 당일을 맞았다.
집에서 면접 볼 학교까지는 거리가 있었지만 다행히 이른 아침이라 차가 막히지 않았고, 도착해서도 입실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학교에 도착 후 아들은 나와 함께 있으며 잠시 긴장을 풀고선 면접 고사장으로 들어갔다. 아들이 면접장으로 들어간 후 아들 앞에서 드러내지 않던 초조한 마음이 한 시간 내내 날 괴롭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다 식은 커피의 마지막 한 모금을 입에 털어 넣었을 때 주머니에 넣어뒀던 폰이 진동을 알렸고, 꺼내 든 폰에는 아들 이름이 화면 위에 떠있었다. 서둘러 받아 든 전화 뒤 목소리에는 편안한 목소리가 들렸고, 초조함에 마음 졸이던 나도 전화를 끊고 교문 앞에 있는 아들에게 마음 편히 갈 수 있었다.
"아들, 면접 어땠어?"
"응, 나쁘지 않았어요. 면접 대기실에서는 좀 떨렸는데 면접장 가서는 편하게 면접 봤어요"
내색은 안 했지만 면접 전까지 많이 긴장했을 아들 생각에, 그리고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면접을 보고 나온 아들을 보며 왠지 모를 뭉클함이 가슴 깊이 아래에서부터 올라왔다. 합격도 아닌데 아들에게 오버한다는 얘길 들을까 싶어 올라오던 감정은 냉큼 누르고 나서 우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가기 전 난 아내에게 연락해 오랜만에 네 식구 밖에서 외식을 제안했고,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즐거운 오후를 밖에서 함께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면접 결과 발표일이 다가왔고, 평일 오후 3시 발표였지만 오전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긴장이 돼서 빨리 결과가 나왔으면 했다. 그렇게 시간이 더 흘렀고, 잠시 급한 일처리로 업무를 보다가 시계를 보고 발표시간이 지난 걸 알게 됐다. 퍼뜩 전화기를 들여다보자 읽지 않은 카톡 메시지가 있었고, 아내의 메시지임을 알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대화창을 열었다. 긴장은 됐지만 기대감을 갖고 열었다. 하지만 대화창의 메시지에는 생각해본 적 없는 결과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현실감마저 잊고서 '멍'하는 순간이 계속됐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확인했고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아쉽게도 합격란에 예비 순번이 적혀 있었고, 조금은 들떴던 기대감도 마음 깊은 곳으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제일 실망했을 아들 생각에 가라앉았던 마음을 추스르고 괜찮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아들에게 톡을 보냈다. 시간이 꽤 지나도 답이 없는 걸 보니 실망이 큰 듯했다.
스마트폰의 시계가 6시를 넘겼고, 난 상실감이 클 아들을 위로하기 위해 퇴근을 서둘렀다. 집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아들은 표정이 나쁘지는 않았고, 아들에겐 평소와 다른 특별한 위로보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면 충분해 보였다. 난 아들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고 수고했고, 괜찮다는 말을 해주고 방을 나왔다. 방을 나오는 내게 아들은 평소와 같지는 않지만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내 마음의 무게를 덜어주었다.
"네~, 아빠"
그렇게 다시 며칠이 지났고 아들은 수시로 지원했던 다른 학교 1차 합격 통보를 또 받았다. 아직 면접이 남아있긴 했지만 조금 마음이 가벼워진 아들은 거실에서 한참을 며칠간의 자신의 심경과 친구들 얘기를 했다. 자신 주변의 친구들 중에서도 수시에서 불합격을 이유로 실망하는 부모님들이 많다고 했다. 말은 안 했지만 아들 또한 아내와 내가 그런 내색을 보일까 걱정을 한 듯 느껴졌다. 마음의 짐을 덜어낸 아들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수능일까지 남은 며칠을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안정을 찾은 듯했다.
당장 내일이면 수능일이다. 정시가 아닌 아들에겐 수시 지원 학교 중 수능 최저가 조건인 교과 전형을 위해 선택하는 몇 과목만 잘 치르면 된다. 물론 부담감과 긴장으로 실력 발휘가 생각처럼 잘 안될 수도 있지만 그간 준비해온 과정도 있거니와 모의고사 때 나왔던 성적을 고려하면 좋은 성적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성적은 나오리라 생각한다. 남은 건 오늘 하루 컨디션 조절 잘하며 잠이라도 꿀잠을 잤으면 하는 바람이다. 잘 자고 난 수능일에 좋은 컨디션으로 시험에 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아들, 부담이야 크겠지만 최대한 마음 편하게 평소처럼 보면 돼. 아니 평소보다 조금만 더 시험 잘 보자. 그럼 그걸로 된 거잖아. 그리고 아빤 좋은 대학 나온다고 모두가 성공하고, 행복한 인생을 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살면서 배운 거지만 학교 성적표가 꼭 인생 성적표는 아니더구나. 오늘 너의 하루를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할게'
